회사를 관두려는 부하직원, 당신에게는 붙잡을 '용기'가 있습니까?
한동안 바쁘기도 했고, 우똘이 사라진 이후 평화를 되찾아서 글을 쓸 일이 딱히 없었기도 하고, 이래저래 무난하고 평범하면서도 가끔은 바쁘기도 했던 시간들을 보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하다가 기억에 남는 팀원이 있어 그 친구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이 직원은 공교롭게도(?) 우똘(우리회사 또라이)에게 당한 가장 큰 희생양이었다.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지옥을 방불케 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거의 두 달여를 사무실에 발길조차 하지 못한 채 파견근무를 나갔었다. 지옥이라는 단어를 빌린 것은 그 파견근무에 앞서 언급했던 우똘과 함께 파견 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업무의 과중도 이유였겠지만 무엇보다 그 직원을 힘들게 했던 건 단연 우똘의 지분이 가장 컸고, 결과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상황까지 벌어졌으니 애지중지 막내를 키워보고자 했던 나의 원대한 꿈이 무너진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우똘때문에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욕구가 강하게 솟구치기도 했었다.
상황은 이렇다.
우리 회사는 그리 크지 않은(사실 작은 편인) 중소기업이다. 음.. 소기업이다. 그렇다 보니 늘 인력난에 시달리기 일쑤였고, 공들여 뽑아놓고 가르치던 직원들이 우똘때문에 여럿 그만두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퇴사하는 이유에 대해 우똘의 문제를 지적하는 장문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고, 한 친구는 대표님께 직접 이 사실을 고하다 눈물을 쏟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원 한 명 한 명이 굉장히 소중했었다. 그러던 중 잘 키워보겠다 다짐한 막냇직원이 돌연 퇴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장 인력 보충이 시급했던 나는 다른 친구를 추천받아 채용시켰지만 그 친구 역시 우똘에게 치이다 결국 권고사직으로 회사와의 인연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입사 후 똑같은 상황을 몇 차례나 겪은 나는 결단을 내리기로 한다. 모 아니면 도! 어떻게 해서든 담판을 짓고 싶어 대표님 방문을 두드려 면담을 하기에 다다른다. 다행이었던 것은 당시의 대표님 또한 내 입장을 이미 충분히 공감하고 계셨던 상황이었고,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어떤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신 후였다. 바짝 마른 장작에 나의 건의가 기름 친 불쏘시개가 되어 화덕에 불을 지른 것이다. 결국 우똘은 회사를 떠나게 되는데, 문제는 '나만' 남겨지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나 혼자라니?! 아무리 작은 소기업이라지만 밀려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던 나는 한 가지 묘책을 제안하게 된다. 우똘때문에 그만둔 그 친구를 다시 불러들이자는 것.
조심스럽고 자연스럽게 퇴사한 그 친구의 안부를 묻고, 아직도 우리 업계에 관심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무엇보다 우똘이 퇴사한 이후부터 출근하면 된다는 달콤한 밑밥(?)을 깔고 말이다. 두세 차례에 걸친 입사제의에 결국 그 친구는 재입사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고, 단 한 명의 충원만으로도 전략기획팀은 순풍에 돛 단 듯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일 년 여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회사는 전에 없던 또 다른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물리학을 전공한 학생에게 생물학 논물을 쓰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할 수는 있지만 분명 뒤따르는 어려움이 눈 앞에 UHD급으로 그려지는 그런 프로젝트들 말이다. 어느덧 직장생활 10년 차인 나는 '그까이꺼 뭐 대수라고!'라는 심정으로 프로젝트를 부여잡았지만, 그렇다. 이것은 나의 욕심이었다. 함께 더 재밌는 프로젝트를 하자는 말로 꼬셔놓고 정작 재미없는 일들만 하는, 나는 그런 양치기 소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어떤 결과에는 한 가지 이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마치 나비효과처럼 혹은 연쇄, 중첩 등을 이유로 도미노 쓰러지듯 넘어지는 것이다. 그 친구를 흔들었던 이유 중에는 일도 일이었겠지만 친구, 미래비전, 급여 등 다양한 것들이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딱 그 나이 때에 있던 내가 했던, 내 인생의 최고의 경험이었던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이야기했더랬다. 흔들리는 그 친구를 붙잡았어야 할 내가, 또 불쏘시개가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친구는 마음의 결정을 내린 지 단 두 달여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를 향해 날아갔다. (사실 나는 퇴사를 결정하고 한 달 만에 날랐다. 하! ) 그렇게 그 친구는 호주 어딘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인생을 즐기며 배우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결과에 대해서는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 손발이 척척 맞는, 어느 회사라도 탐낼 것 같은 직원을 떠나보낸 건 너무나도 속상했지만, 내가 그 친구와 같은 나이일 때 호주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었던 모든 것들이 오늘의 나에게 너무나도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 친구의 선택에 박수를 쳐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해보지 않은 경험이었다면 어떤 이유로든 그 친구를 회유하려 했겠지만, 그 시간들이 주는 경험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그 말의 의미를 오롯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붙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떠난 지 몇 달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그 친구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막냇직원이 그만둘 때 흔히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걔가 아직 사회생활을 모르네." "뭣도 모르니까 그만두는 거야. 사회의 쓴맛을 겪어봐야 알지." "막내 말고 지금 있는 직원들부터 잘 챙겨." "회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마. 의미 없어." 하지만 이 말들이 모두 맞는 말이었을까? 막내 직원 성격이 어떤지, 얼마나 잘 어울리고, 집중 잘하고, 도움이 되고, 발전 가능성이 있었는지 전후사정도 제대로 모르는 채 그저 '막내는 쥐뿔 아무것도 몰라'라고 무시해 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씁쓸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물론 내가 완벽한 직원을 뽑았던 건 아니다. 상사를 뛰어넘는 꼼꼼함이 있었지만 가끔은 그게 걱정인형으로 돌변해 멀쩡했던 나까지 힘들었던 적도 있었고, 쉬운 길을 굳이 돌아가려는 모습에 어드바이스를 해주어도 고집부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들 첫 사회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돌이켜 보면 당장 나 자신도 초년생에 저질렀던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가득했는데, 그때 회사의 누군가가 '쟤는 막내니까 신경 쓰지 말고 무시해.'라고 했다면 나 역시도 그 회사를 단번에 떠났을 텐데. 일로 만난 사이 이전에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장단점을 발견하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사의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라떼는 말이야~' 라며 커피 타령이나 늘어놓는 일부 답답한 상사들 때문에 오늘날의 사회 초년생, 막냇직원들이 고생 아닌 고생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입사지원이 참 편리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미리 써놓은 이력서와 자소서를 선택해 클릭 몇 번으로 지원하고, 첨부파일을 열어보며 서류평가를 마치고, 그리 길지 않은 면접으로 구직자와 취업자의 길이 극명하게 갈리는 시대. 그렇다고 사람까지 간편하게 볼 필요는 없다.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조촐한 팀이라도, 대단한 직급이 아니라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에는 인연이 따르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관계를 추구하는 그런 회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웃으며 반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웃으며 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
수고했다고, 덕분에 고마웠다고,
최고의 인사를 건넬 수 있고,
그런 인사를 받을 수 있는
멋진 직장인이 되자.
#제목과 다르게 지금 떠오르는 곡은 TIM의 '고마웠다고'라는 노래인 이유는 왜일까?
#타이틀 사진 출처 : Photo by Pro Church Medi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