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수다가 끊이지 않는 그런 신기한 단톡이 있습니다
다년간, 다수의 직장생활을 하며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난 적도 있고, 대놓고 왕따를 당했던 경험도 있었다.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 거 알지만, 나를 왕따 시켰던 그 직원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부러졌더랬다. 인과응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했던 내가 나빴다. 인정) 건축사, 연예기획사, 홍보 제작사, 프레젠테이션 기획사, 그리고 지금의 회사에 이르기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어떤 인연은 끊어지고 또 어떤 인연은 계속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 인연이라는 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면서도 뭔가 운명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기에 이번엔 아직까지도 인연을 잇고 있는 과거의 직장동료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속한 단톡방은 업무를 제외하고 몇 없다. (그래서 더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하는거지만서도...) 그 단톡방 중 한 곳의 방제가 무려 '과거의 단상들'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재직했던 회사의 같은 팀이었던 사람들 중 5명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하게 된 단톡방으로, 그 단톡방의 기원이나 시작 따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겼고, 없어지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채로 매일매일 굉장히 버라이어티 한 주제들로 대화를 이어 나간다. 어느 날은 사업 얘기를 하기도 하고, 단톡방 내의 사람들끼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갑과 을이 되었다가 소비자와 판매자가 되기도 하고, 금융 전문지식을 공유하거나 게임 이야기를 나누고, 신세한탄을 하거나 인생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이 단톡방의 사람들과는 사실 '군번'이 꼬여있다. 총 5명 중 내 나이가 제일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팀원에서의 직급은 서열로 두 번째였다. 하지만 하나 둘 각자의 인생과 업을 찾아 떠나가고 지금은 오빠 형 동생 혹은 아저씨나 유부녀로 불리며 그렇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시작은 모두가 솔로였으나 지금은 4명의 유부들과 1명의 미혼자로 이루어진 나름 특색 있는(?) 그런 단톡방이 되어있다.
가끔 이 단톡방의 존재와 역할, 대화 내용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적잖게 놀라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전 직장 동료들과, 그것도 회사를 그만둔 지 7년이나 지난 사람들과 한 단톡 방에 들어있다는 것에서 놀라고, 누구 하나 문제나 말썽 없이 지낸다는 것에도 놀라며, 심지어 가끔은 일도 같이 한다는 것에서도 놀란다. 사람들의 직위나 역할을 듣고도 놀란다. 보통 공공의 까임 대상(?)이 되는 팀장님부터 중간급과 말단(?)까지 고루고루 단톡 방에 들어있다. 이 사람들이 수년을 같이 일했던 건 아니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0여 년째 그때의 그 회사를 아직까지 같이 다니고 있는 (현업에서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흥밋거리가 되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마도) 이기적인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 하나 완벽하지 않았고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어야만 하는 팀원들이었지만 그 사람들이 똘똘 뭉쳐 함께했을 때를 떠올리면 웃고 즐거웠던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 이 관계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늘 대표님께 불려 가 혼났지만 농담에도 잘 웃어주고 팀원들을 잘 웃겨주고 잘 받아주시던 사람 좋은 팀장님과, (2)나이는 막내인 주제에 연차가 많다는 이유로 존칭으로 불렸던 사람과(이게 나다), 관련 전공자는 아니지만 (3)학벌이 말해주는 빼어난 박학다식으로 감탄사를 연발케 했던 사람, (4)뭔가 제멋대로인 듯 하지만 할 땐 확실하게 하고 결과로 보여줬던 사람, 그리고 (5)왜 기획팀에 입사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늘 큰 도움을 받았던 디자이너까지 총 다섯 사람이 모여 그저 그런 평범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가끔은 내가 봐도 신기하기도 하다. 말 그대로, 누구 하나 모나고 이기적이지 않았으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소유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난 그 와중에서도 부정적이고 엇나가는 캐릭터로 늘 사건과 사고를 몰고 다녔다.)
이렇게 오랫동안 좋은 영향력을 주는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데는 단연 뭉칠 땐 제대로 뭉쳤던 에피소드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원도 적었고, 회사에서의 입지마저도 늘 불안했던 팀이었지만 그래도 뭉칠 땐 확실하게 뭉쳤던 기억이 난다. 어느 해의 추석 연휴 전날에는 독립해 살고 있는 팀원 집으로 다 같이 놀러 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밤새 술을 마시기도 했고, 회식이 있는 날이면 팀장님의 권위 따윈 잊고 친구처럼 꿀밤을 때리기 일쑤였으며(이것도 받아주니까 가능했던...), 생일인 직원이 있을 때엔 각자 성의대로(?) 돈을 각출해 전액 1,000원짜리로 바꿔 두둑한 현금 봉투를 건네며 웃기도 했고, 퇴사 소식에 송별회를 하며 눈물 콧물을 쏟아냈던 적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 틈에서의 직장생활이니, 일이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출근이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함께 하면 즐겁고 유쾌한 사람들이 있으니 출근이 어찌 즐겁지 아니했겠는가! 하물며 모든 직장인에게 선택 장애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심시간 메뉴 정하기마저 보드게임으로 퉁치는(?) 사람들이었으니, 직장동료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고 자부한다.
물론 팀이 규모가 달라지면서 최악의 팀원을 만났던 적도 있었다. 전무후무 유일한 최악의 캐릭터였던 한 팀원은 자신의 눈 앞에 없는 사람의 뒷담화를 신랄하게 해댔고, 결국엔 속칭 '나가리'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단톡방의 다섯 명 이외에도 한 팀을 꾸렸던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출근한 지 반나절만에 퇴사한 사람도 있었고, 사내연애로 결혼에 골인한 사람도 있다. 아예 다른 지역의 사무실이라 한 팀이어도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인수합병(?)으로 갑자기 한 팀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지금 단톡방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실상 팀의 존재가 회사에 부각되기 시작할 초창기의 멤버들이라 아마 유대감이 더 끈끈해서 살아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쓰다 보니 약간 팔불출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만둔 회사의 팀원, 동료들을 이렇게까지 미화(?)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었던가 싶다. 주로 일보다 사람이 힘들어서 회사생활이 힘들었다는 얘기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 전 직장 동료들을 이렇게나 각별하게 생각하는 나 같은 케이스도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좀 오버스럽긴 하다.
주절주절 이야기가 많았지만 사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인연을 소홀히 여기지 말자는 것이다. 물론 미운점, 모난 점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 한없이 미워지는 것 또한 사람이지만 미워하기보다 보듬어주고 이해해주고 함께 으쌰 으쌰 해본다면 같은 직장 동료라도 사뭇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한다. 운이 좋게 마음이 맞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 아니라, 팀원들 한 명 한 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대했기 때문에 나의 직장생활이 행복했던 게 아닐까 한다.
무한 경쟁 시대에, 팀 내에서도 치열한 눈치싸움과 실적 싸움이 만연하다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다정다감(?)한 사람들을 또 어디서 만나겠느냐 싶겠지만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해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 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한 명 한 명의 팀원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함께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고 제대로 실천해 나가는 그런 팀장이 되어야겠다.
오늘도 이런 신박한 다짐을 한다, 내가.
천둥벌거숭이 같던 막내가, 어른이자 선임이 되어가고 있다. FIN.
# 타이틀 이미지 출처 : Photo by Ben Duchac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