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에 휩쓸린 오뉴월의 생존담

추부 +day2 : 다테야마 (알펜루트)

by 미니덴



다테야마 (알펜루트)
Tateyama
2023. 5. 1


고원의 기상은 불안정했다. 다이칸보를 넘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쪽빛 하늘에 볕이 들었는데 순식간에 먹구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사방이 흐릿하게 번지더니 눈 덮인 산과 구름 낀 하늘이 원래 하나의 색인 것 마냥 경계가 모호해졌다.

산을 조금만 오르면 연못이 나온다길래 서둘러 길을 나섰다. 가시거리가 짧았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보여서 안심하고 입산했다. 기상악화에도 연못을 꼭 봐야겠다는 욕심이 컸던 걸까. 뿌옇게 보여도 따라갈만했던 등산로에 돌풍이 일면서 때아닌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처음에는 눈 싸라기에 불과했던 것이 천둥을 동반하고는 몸집을 단단히 부풀렸다. 땅을 겨냥해 쏘아대는 우박이 밖으로 드러난 살갗을 무자비하게 휘갈겼다. 안 그래도 상기된 볼이 뺨을 맞은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어쩐지 주변에 자란 나무들이 솟아있지 않고 누워있더라니. 변화무쌍한 날씨를 견디지 못한 모양새였다.

길가에 세워진 이정표는 분명 연못을 가리켰지만, 눈보라가 시야를 가로막는 바람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만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그야말로 ‘설상가상’인 상황에 발이 묶였다. 등산로에 표식처럼 남아있던 발자국 위로 눈이 새로이 쌓이면서 길이 사라지고 있었다. 띵. 머리가 얼었다. 오뉴월에 눈보라에 휩쓸릴 줄이야.

조난 위기에 닥치자 오로지 ‘살고 싶다’는 본능만이 몸을 작동시켰다. 방향을 모르니 낮아지는 경사를 발로 감각하며 땅을 짚어갔다. 정신없이 피신하는 길목에서 산새 한 마리와 마주쳤다. 날지 못하던 새는 꼿꼿하게 서서 빙판 위를 버티고 있었다. 악천후를 겪는 와중에도 작은 몸집으로 중심을 잡으려는 자태가 무언의 격려를 보냈다.

안간힘을 끌어모아 죽기 살기로 두 다리를 움직였다. 10여 분의 질주 끝에 산장이 나타났고, 무탈히 하산에 성공했다. 붉은 뺨과 충혈된 눈. 질질 흐르는 콧물. 찝찝하게 젖은 신발과 외투. 누가 봐도 산에서 험한 꼴을 당한 사람의 행색이었지만 건강상의 이상은 없었다. 몸을 가다듬다가 비듬마냥 털 모자에 박혀있는 우박을 탈탈 털어냈다. 하얀 덩어리들이 바닥에 닿아 투명한 물기로 변했다. 언 몸이 녹았다.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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