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 와인
매주 화요일 오후 와인 수업을 듣는다. 매주 다른 나라의 와인에 대해 배우고 맛을 본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칠레, 호주 등 매주 한 나라씩 정해 와인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 배우고 2가지 종류의 와인을 맛본다. 선생님은 와인에 맞는 간단한 요리도 만들어 오시는데 그게 참 맛나다. 수업을 듣게 된 계기는, 면세점에서 산 ‘몬테스 알파’ 와인이 너무 맛있어서 내가 와인에 대해 알면 내 삶이 좀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와인은 수업을 들을수록 역사와 전통이 담겨 있고 나라나 지역에 따라 다양한 맛을 가지고 있어서 알면 알수록 더 즐길 수 있는 술이었다.
선생님은 와인의 종류는 워낙 많기 때문에 많이 접해보면서 배워야 하니까 백화점에 가면 설명도 들어보고 구경해보라고 하셨다. 마침 백화점에 들릴 일이 있어 지하 식료품 코너에 들렀다. 와인 코너는 식료품 매장의 분위기와 달리, 조명이 은은하고 와인 병들이 차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손님보다 매장 직원이 더 많아 보여 왠지 들어가가기가 망설여졌다.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티가 나면 어쩌지… 너무 비싸면 사지도 못할텐데…’ 고민하다가 쉼호흡을 한 번 하고 매장에 들어섰다. 안에 들어가니 나라별로 코너가 나누어져 있었다. 그 주에 수업에서 배운 스페인 와인이 떠올라 스페인 코너로 갔다. 와인 라벨을 봐도 필기체가 낯설어 한 눈에 읽기도 어려웠다. 머릿 속에 ‘스페인 와인 등급은 어떻게 나누더라? 프랑스는 A.O.P이 좋은 등급이었는데…’ 라는생각이 떠오르는 찰라 직원이 “어떤 와인 찾으세요?” 라고 물었다. 그 주에 배운 나라인 스페인과 기억하고 있는 품종을 조합하여 “스페인 쇼비뇽 블랑을 찾아요.” 라고 대답했다. 점원이 갸우뚱하며 어떤 맛을 선호하냐고 물어서 “저는 살짝은 달고 새콤한 화이트 와인을 좋아해요.” 라고 했다. 점원은 호주, 뉴질랜드 코너로 안내하며, 행사 중인 와인 세트로 몬테스 알파의 쇼비뇽 블랑과 뉴질랜드의 화이트 와인을 추천해 주었다. 이미 나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어서 좀 있다 다시 들리겠다고 하고 매장을 나왔다. 나중에 선생님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박장대소 하시며 스페인에는 쇼비뇽 블랑 품종을 잘 재배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농담으로 ‘ 어디가서 저한테 배웠다고 하지 마세요.’ 하셨다. 순간 나도 웃음이 터졌다. 오히려 아는 척 하지 말고 솔직히 잘 모르지만 선호하는 맛에 대해 이야기 해주면 좋았을텐데 생각하며 나는 그 와중에 이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글로 남겨야겠다고 마음속으로 흐뭇하게 생각했다.
얼마전에 선물받은 칠레의 까베르네 쇼비뇽 와인을 친구들과 만날 때 가지고 가서 맛있게 마셨다. 멋있게 와인을 살짝 돌려서 따라 주려다가 오히려 더 흘리니 친구가 휴지를 와인병에 묶어 주었다. 우리는 모두 낄낄대며 즐거워했다. 나중에 상자에 있던 와인링을 발견하고 병목에 끼웠더니 흐르는 것을 흡수해 주어서 편리했다. 이미 저녁을 배불리 먹은 뒤라 간단한 안주와 함께 와인을 즐겼다. 와인수업에서 같이 먹어봤더니 와인과 궁합이 잘 맞았던 크래커, 치즈, 달달한 과일잼,, 견과류를 준비해 갔는데, 간단한 크레페를 곁들이니 더 맛있었다. 수업시간에 했던 것처럼 어떤 향이 느껴질까 상상하니 와인 한 모금이 더 설레었다. 와인을 마시며 잇몸을 죄어오는 탄닌과 코를 넘어오는 타바코향을 느끼며 흐뭇했다. 사실 타바코향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와인선물을 받으면 손이 안갔는데 이제는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와인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즐겁게 만들어 주어서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