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쿠바 ::: 아바나
#1. 크리스마스 선물 - 미니양
아바나로 돌아와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해도 그닥 특별할 것은 없지만...
한국에 있었다해도 그저 고래군이랑 술 마시는 수많은 날 중에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거다. 그치만 연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락도 할 수 없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분은 묘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해서 아바나가 들썩거리는 분위긴 아니었으니, 외로운 기분도 상대적으로 덜 들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도 통화가 되지 않으니, 그저 '잘 지내겠지?' 하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쯤 목이 빠지게 연락을 기다릴 고래군을 생각하면, 줄을 오래 서서라도 인터넷을 이용해볼까 했지만 나에겐 CUC이 모자라서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연인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혼자 내버려두고, 연락도 못하는 여자친구의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아바나클럽 1병을 샀다. 아바나클럽을 받아들고 눈가 주름이 만개할 고래군의 얼굴이 그려져 슬며시 웃음이 났다.
아바나클럽이 담긴 봉지를 덜렁거리며 까사로 돌아가는 길, 내 손에는 나를 위한 쿠바 로컬 맥주 한 캔이 들려 있었다.
#2. 쿠바와 '안녕' 할 시간 - 미니양
뜨리니다드를 떠나 다시 돌아온 아바나는 두 번째라서 그런지 마음이 놓인다고 할까? 마치 어릴 적 살았던 집에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다. 요안나 까사에 다시 짐을 풀고, 그냥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아바나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길거리 음식을 입에 물고,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쪼개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러다 간판도 없는 바에서 쿠바노들과 생맥주도 한 잔 하고, 크리스마스라고 이름 모를 성당에 들어가 잠시 앉아 있기도 하고, 북적이는 큰 쇼핑센터에도 들어가 보고. 내 두 다리로 만나는 아바나가 즐거웠다.
아바나에서의 이틀이 지나면 난 쿠바를 떠나야 한다. 꽤나 많은 도시들을 여행했지만, 왜 이렇게까지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마약처럼 나를 이끄는 매력들이 쿠바에는 있는 것 같다. 어쩌면 2006년 인도를 떠나올 때의 느낌이랑 닮아있는 것도 같다. 쿠바에서의 마지막 날, 말레꼰에 한참을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 뒤돌아서는데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레노 빙하처럼 압도하는 풍경이 있는 것도 아닌데... 쿠바를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저 아쉽기만 할 뿐이다.
#3. 그녀는 실종? - 고래군
마지막으로 그녀와 교신한 것이 언제였더라? 이제 내 머리 속은 혼돈의 심연. 만약의 사태에는 직접 찾아가봐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니야, 연락 힘들 거라고 했으니까 잘 있겠지. 그런데 언제 쿠바에서 나온다고 했더라?
제발 무사히 돌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