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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Nov 21. 2018

오늘 하루 리스본 관광객처럼

2018. 두 번째 리스본 한 달 살기


 

#1. 비온 뒤 맑음- 고래군     


지난 밤 늦은 시각까지도 쏟아지던 빗줄기는 사실 꿈이었다고 말하는 듯, 오늘은 정말 맑고 맑은 아침이다. 하늘의 파란 색을 배경으로 한없이 넓게 펼쳐진 지평선 위로 하얀 구름이 웅장하거나 혹은 아기자기하게, 때로는 러그처럼 펼쳐지거나 크로와상처럼 뭉게뭉게 높게 솟아오르기도 한다. 투명하고 눈부신 햇살을 만난 그녀는 이미 반쯤은 바깥으로 뛰쳐나간 것만 같다.     


“어디 가? 오빠 우리 어디 가요?”

“근교? 아니면 근처?”

“떼주 강 따라 산책하듯 걸을까? 아니면 어디 근처라도 갈까?”

“우리 나가서 북마크도 팔아볼까? 나 꼭 하나만 팔았으면 좋겠어.”     


비바람 때문에 걸렀던 지난 토요일 도둑시장이 못내 아쉬웠나보다. 그녀의 속내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녀의 디자인이, 직접 그리고 만든 그녀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지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다음에 도둑시장에 나갈 때는 좀 더 준비를 잘 해서 나가야 할 듯하다. 우리의 엽서는 직접 그려서 만든 것이라고, 우리의 북마크는 캔버스 재질이라 더욱 특별하다고 말이다.     


늦은 아침을 챙겨먹고 길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집 앞 전망대에 잠시 멈춰, 그녀와 함께 리스본의 오늘 모습을 눈에 담는다. 이제 오늘의 여행을, 오늘의 삶을 시작한다.          






#2. 흐르는 떼주 강Rio Tejo, 흘러가는 걸음- 고래군     


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던 것 같지만, 리스본의 동쪽과 남쪽을 둘러 흐르는 커다란 강이 하나 있다. 떼주 강(江)Rio Tejo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강은 리스본 북동쪽까지는 그래도 일반적인 너비로 흘러내려오다가 리스본을 만나는 순간 급격하게 폭이 넓어지면서 바다를 만날 준비를 한다. 지도에서 보면 마치 만(灣, 물굽이)처럼도 보이는 리스본 남쪽이, 사실은 떼주 강 하류인 것이다.     


우리는 꼬메르시우 광장Praça do Comércio으로 걸어 내려가 떼주 강을 만났다. 강 건너편으로는 아스라이 세투발Setúbal 지역이 보인다.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태양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강물이 있었다. 왜 시구詩句에서 간혹 보는 표현처럼 ‘눈부신 햇살 아래 반짝이는 물비늘’이 테주 강 위에 흩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오늘 따라 유난히 사람이 많은 것 같지 않아요?”

“그러네? 오늘 무슨 날인가?”

“우리 진짜 잠깐 장사 좀 할까?”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저 멋쩍게 웃기만 했다. 가방에 넣어둔 엽서와 북마크만 꺼내 팔기에는 별다른 준비도 없는 것이 괜히 마음에 걸리고, 또 그러다가 아무도 안 사가면 그녀가 실망할까 걱정도 되고 했다. 그런 내 어색한 미소를 본 그녀는 별다른 말이 없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카이스 두 소드레Cais do Sodré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치즈와 프로슈토를 끼워 넣은 바게트 샌드위치를 사들고는 강가에 앉았다. 비둘기와 갈매기가 빵부스러기라도 떨어질까 싶어 우리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풍경과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작년 우리가 리스본에서의 한 달을 모두 채우고 떠나는 날을 앞둔 어느 날 보고 걸었던 것이다.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물었고, 나는 그녀에게 그냥 이렇게 동네를 함께 걷자고 했던 그 때 말이다. 일 년 하고도 칠 개월이 지나고 나서 다시 이렇게 흐르는 강물을 따라 흘러가듯 걷는 일은, 그 때만 해도 상상에만 그치는 것이었다.     

그녀의 표정이 리스본에 쏟아지는 햇살을 닮아 간다.          






#3. 언제 집에 가나- 고래군     


“우리 오늘 관광객 모드!”

“뭐가? 왜?”

“우리 걷는 곳들이 오늘 수많은 관광객들이랑 같잖아.”     


바이후 알투Bairro Alto의 전망대로 걸어 올라가는 길에, 그녀가 문득 ‘관광객 모드’라고 외쳤다. 어쩌다 보니 정말 그녀 말대로 우리의 발걸음이 향하고 있다.     


바이후 알투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알파마Alfama 언덕 바로 서쪽에 있는 또 하나의 언덕의 이름으로, 대충 우리말로는 ‘이웃의 높은 동네’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주로 머무는 곳이기도 하고, 밤이 되면 클럽과 바Bar들이 문을 열고 리스본의 밤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관광객 모드’라는 그녀의 말이 맞는 셈이다.     



이곳에 올 때면 항상 우리가 쉬어가는 전망대가 있다. 19세기 중반 경 완성된 아름다운 공원, ‘알칸타라의 상 페드루 정원Jardim São Pedro de Alcântara’의 전망대가 바로 그곳이다. 두 개의 단으로 구성되어 동쪽의 알파마 언덕과 그라싸 수도원, 상 조르쥬 성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을 향해있으며, 특히 아래쪽 단에는 다양한 조각상도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이다.     

그녀와 앞뒤로 서서 건너편 알파마 언덕을 바라보았다.     


“오빠! 저기 우리 집 앞에 있는 전망대 나무다!”

“응. 나도 방금 발견했었어. 저기 저거 맞지?”

“아니아니, 그거 말고 그 옆.”

“응 저거.”

“아니라니까!”     



알고 보니 내가 그녀 뒤에 서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그녀가 선 지점에서는 다른 곳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이윽고 우리는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난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우리 저기까지 언제 또 걸어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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