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두 번째 리스본 한 달 살기
#1.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 고래군
빌라 프랑카 데 시라(Vila Franca de Xira)는 리스본에서 떼주 강을 따라 북동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며칠 전 코임브라에 다녀올 때, 산타아폴로니아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 와중에 마을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오늘 딱히 할 것 없으니, 함께 다녀오는 것이 어떠하냐. 그곳에는 근사한 공립도서관도 있다고 한다. 너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도서관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찾아둔 정보이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그녀가 나를 설득하기 위해 건넨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대충 이와 같다. 동굴 같은 집의 문에 달린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자, 파아란 하늘에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알파마 언덕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다.
이번 여행에는 여러 목적들이 있었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어머니를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나를 위해 그녀가 기획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 리스본에 도착하고 나서도, 나도 모르게 우두커니 앉아서 멍하니 있는 상태가 종종 찾아왔다. 내가 그런 상태라는 것을 나 자신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대신 그녀가 걱정스러운 말과 표정으로 나를 일깨워주면서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기는 하다.
문득 이번 여행은 오직 나만의 여행이 아니라는 점이 떠올랐다. 함께 온 것이니까. 그냥 언덕 꼭대기 동굴 같은 집에 처박혀 있을 수만은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거잖아. 어떻게든 일어나서 돌아다녀야만 해. 바깥에 저렇게 눈부신 햇살이 넘쳐흐르고 있잖아. 나가자. 어디든.
산타 아폴로니아 역(Estação de Lisboa-Santa Apolónia)에서 기차를 타러 언덕을 내려갔다. 얼마 전 코임브라에 갈 때 전광판이 고장 나서, 사실 내가 밍기적 거려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그녀에게 다부진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기차 어디서 타는지 내가 물어보고 올게요!”
“됐거든? 저번에 탔던 그거 타면 되거든? 아 맞다, 재핑 카드로 다녀올 수 있냐고 좀 물어봐줘요. 나는 카드 충전 하고 있을게.”
#2. 작고 조용한 마을의 아름다운 하루- 고래군
아잠부자 선(Linha da Azambuja) 열차를 타고 한 20분쯤 달리자, 그녀가 말했던 장소가 나타났다. 내가 ‘빌라 프랑카 데 시라’에 대해 받은 첫인상은, 아담하고 아름다운 기차역 건물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선로가 떼주 강을 따라 올라가며 나 있기 때문에, 기차역(Estacao CP Vila Franca dr Xira) 역시 강이 흐르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적갈색의 지붕 아래 하얀 벽으로 지어진 기차역 건물은, 작지만 잘 지어진 시골의 저택처럼 소박하고 정갈했다. 기차역의 벽에는, 포르투갈의 다른 수많은 기차역들이 그러하듯, 마을이나 도시의 역사나 특색 등을 표현한 아줄레주 장식들이 붙어 있었다.
우리는 먼저 선로 위 고가다리를 포함하는 개찰구에서 동쪽에 있는 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떼주 강을 따라 길쭉하게 공원이 있고, 요트 등을 정박하는 마리나(Marina)도 있었다. 공원을 둘러본 다음에는 고가다리를 통해 기차역의 서쪽 입구로 나서자, 기차역 앞 광장이 나온다. 그곳에서부터 근처 한두 블럭 정도가 ‘빌라 프랑카 데 시라’의 번화가이다. 우리는 남쪽으로 길게 난 길로 접어들었다.
번화가라고는 하지만, 마을이 워낙 작고 아담해서 그런지 음식점들을 비롯한 가게들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게 전부이다. 휴대폰 매장이 보이고, 화장품 가게도 있고, 음식점들도 군데군데 보이는 그런 정도이다. 걷다 보니 길 왼편으로 스테이크가 괜찮은 가게로 유명하다는 “150 Gramas”도 보인다. 건너편에는 슈퍼마켓 미니프레쏘(Minipreço)가 꽤 큰 규모로 자리를 잡고 있다. 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니,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만든 기찻길 건너편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가 달린 고가다리가 나타났다. 그 다리를 건너 강가를 향해 나아간 곳에서, 그녀가 나에게 보여주려 했던 공립도서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Fábrica das Palavras - Biblioteca Municipal e Equipamento Cultural”라는 이름의 공립도서관은 작은 마을의 크기와는 다르게 꽤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1층의 카페에 머무는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홀로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인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강가를 향해 마련된 발코니 같은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 그녀와 함께 앉았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만약 우리가 포르투갈에 와서 살게 된다면, 여기에 사는 것도 좋겠다. 리스본도 가깝고, 조용하고, 이렇게 좋은 도서관이 있어서 작업하거나 책을 읽기도 좋고.”
“이제는 오빠도 여기 와서 살고 싶다는 말이 나오네?”
미소 띤 묘한 표정으로 그녀가 나를 바라본다. 강을 따라 흘러가는 바람이 우리를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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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여기저기 헤매다 우리 앞에 나타난, “Tradicional Receita”라는 이름의 멋진 식당이 기억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슈퍼마켓 미니프레쏘에서 샌드위치와 감자칩을 사서 배를 채운 상태라서,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여기 살게 되면 단골 가게가 될 것 같은 그런 가게라서, 나중에라도 다시 오게 되면 그 가게에서 한 번쯤은 식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남겨두고 돌아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