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고래 May 18. 2020

말을 몰라도 할 수 있는 일

리스본에서 공연보기

이번에 여행을 떠나면서도,

리스본에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하지는 않았다.

그냥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공기를 맡으며 쉬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호시우 광장을 걷다보면 꼭 만나게 되는 건물 하나가 있다.

그 건물은 바로 국립극장(Teatro Nacional D. Maria II).



건물 멋지다 생각하며 지나 다니기만 했는데,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걷다말고 극장을 보면서 실실 웃는 내게 고래군이 물었다.


"또 왜?"

"응? 뭐가?"

"왜 또 그렇게 웃어?"

"아니. 그냥 재미있는 생각이 나서..."

"재미있는 생각이 뭔데?"

"여기서 공연을 보는 거야! 어때?"

"여기서 공연을 본다고? 어떻게 알아들으려고?"

"응. 저거는 우리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가리킨 건 국립극장에 붙어있던 연극포스터,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면 포르투갈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각색을 했다고 해도 어떤 내용인지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와 고래군은 공연 동호회에서 만나게 된 공연덕후들이었으니만큼, 우리에게 공연을 본다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아파트에 돌아와 홈페이지(https://tndm.bol.pt/)를 통해 예매를 했다. 다행히 영문 사이트가 있어서 어렵지 않게 예매를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못 알아들을 테니 뒤에서 전체적인 무대 분위기를 보기로 했다.

티켓 가격은 2층 맨 앞줄이 9유로. 거기에 수수료 같은 게 붙어서 1인당 9.67유로쯤 냈다.

포르투갈어도 못하는데 연극을 본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좀 웃겼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다.



티켓은 모바일로 다운받았고, 며칠 후 설레이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장에서 자리를 안내를 받고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로미오와 줄리엣.

뱅글뱅글 돌아가는 원판 위에 배우들이 반쯤 누운 자세로 연극이 끝날때까지 대사만 나오는 형식이었다.

(자세한 연극리뷰는 고래군이 따로 올려줄 예정)

분명 잘 알고 있는 고전이었으나, 처음 연극의 형식을 대면하고 충격에 극 초반은 적응하느라 바빴다.

극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집중해서 보다보니, 지금 대충 어느 부분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알 수 있게 되었다.



1시간 반 정도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나오는 길, 너무 집중해서 본 탓에 눈이 아팠지만 새로운 경험에 즐거운 마음으로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2주 후 우리는 또다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러 다시 공연장을 찾았다. 언어를 알아 들을 수 있다면 더 재미있게 봤겠지만, 대사가 연극의 전부는 아니니까 다음 번에 여행을 가서도 또 공연을 보러 가지않을까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스본 에그타르트 도장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