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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Dec 08. 2023

그 사람의 부재를 그리워하며

연극 <복희씨>


          

 연극 <복희씨>가 대학로 미마지아트센터 물빛극장에서 2023년 12월 7일부터 10일까지 상연된다. 지난 2022년 봄에 처음 무대에 올라갔지만, 당시에는 한창이던 코로나 때문에 상연이 곧 중단되는 바람에 이번에 두 번째로 초연(?)하는 작품이다.     


 일단 배우들의 연기가 전반적으로 감정의 과잉이 없다는 점에서 좋았다. 가정비극(家庭悲劇)이라는 스토리 때문에 자칫 신파로 빠져들 소지가 다분했음에도, 배우들의 담백한 표현 덕분에 캐릭터의 정동이 차분하게 표현되고 전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연극 <복희씨>는 70~80년대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미싱공장’에서 일하며 갓난아이를 키우는 주인공이 가난에 내몰린 끝에 우발적 범죄를 저지르고 수감되자 어린 딸을 언니 부부가 맡아 키우게 되고, 시간이 흘러 가족구조가 해체되고 재구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는 ‘과거’에 해당하는 도입부를 통해 노동, 분단, 가부장제 등의 한국적 모순들이 역사적 무의식으로써 현재에 잠재되어있음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장명식 연출이 “부조리한 제도”를 언급한다는 점에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나타나는 인간의 법과 신의 법 사이의 대립이라는 모티브를 계승하는 것이기도 하다. 엄마와 딸이라는관계를 통해 나타나는 ‘신의 법’이 있고, 나이 어린 미혼모에게 가난을 종용하는 사회구조, 우발적 행위에 대해 범죄자라는 낙인을 새기는 법 제도 등과 같은 ‘인간의 법’이 있는 것이다.     


 한 가지 궁금했던 점은 왜 하필 ‘미싱’이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미싱과 미싱     


 연극이 시작하기 전에 객석에 앉게 되면, 항상 무대를 응시하게 된다.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연극 <복희씨>의 무대는 내부와 주변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가구 몇 개가 놓여 있는 가운데 부분은 강박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온통 하얀색이다. 그리고 그늘처럼 짙은 회색 구역이 그 주변을 두른 형태이다.     


 공연이 아직 시작되기 전, 단조로운 멜로디와 함께 그 하얀 공간에 재봉틀이 작동되는 이미지의 변형이 반복된다. 작동하는 ‘미싱’의 이미지가 분열되고, 왜곡되고, 여러 개로 복제해서 하나로 이어붙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마치 미술관에 전시 중인 미디어아트 작품처럼, 그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무대 위 흰색 공간이 아직 텍스트를 쓰지 않은 빈 원고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붓을 대지 않은 캔버스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작품이 전시되는 미술관 내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냥 그 모든 것에 대한 중층적인 은유라고 생각해보기로 하자. 나아가 그러한 중층적 은유가 ‘무대(stage)’와 결합하면서 연극 <복희씨>만의 고유한 극장성 또는 연극성을 구성하는 것으로 보기로 하자. 그렇게 보게 되면 이제 끊임없이 관객 앞에서 지속 중인 ‘미싱’의 이미지는, 반복을 거듭할수록 의미심장한 어떤 것이 되어 간다.     


 재봉틀은 한국에서 ‘미싱’으로 불린다. ‘소잉 머신(Sewing Machine)’을 일본에서 ‘미싱’이라 부르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실종된 상태에 있는’을 뜻하는 형용사 ‘미싱(missing)’과 한국어의 맥락 속에서 인접성을 가지게 된다. 


 이런 해석을 떠올린 이유는 연극 <복희씨>의 1막의 배경이 옷을 만드는 미싱 공장이기 때문이다. 바로 직전까지 미디어 아트를 통해 관객들에게 각인된 ‘미싱’이 정작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는 재현되지 않는 ‘미싱(missing)’ 상태의 오브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극 <복희씨>는, 비록 연출이 “부조리한 제도”, “서로의 아픔”과 “이해” 등을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부재하는 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이 그 중심에 놓여 있는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마치 부재하는 누군가에 대한 기억과도 같은, 포스터의 흐릿한 누군가의 이미지가 새삼 다시 눈에 들어온다.     


※ 희곡을 쓰기도 한 장명식 연출의 말에 의하면, 제목인 ‘복희씨’는 중국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허구적 인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한다.     


※ 연극으로도 좋은 공연이었다. 하지만 보는 내내 영화적인 장면들이 무대 너머로 아른거리는 듯했다.


사진출처 : https://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107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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