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의 맥주를 찾아서
난 원래 술을 즐기는 편이라서, 여행 중 그 나라의 술이 있으면 마셔보는 편이다. 고래군도 나처럼 술을 즐기는 편이어서 자주 함께 마시곤 하는데, 나와는 또 다르게 본인이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을 때는 일절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밖에 나가 식사를 할 때나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에도 난 다른 음료수보다도 맥주를 마시지만, 고래군은 음료수를 마실 때도 꽤 많다.
몰타를 여행할 때의 일이었다. 지중해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던 날, 난 식당에서 점심 식사와 함께 맥주를 주문했다. 반면 고래군은 몰타의 유명 음료수인 키니(Kinnie)라고 하는 시트러스 계열의 탄산음료를 식사에 곁들여 주문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식당 직원이 음료를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뭔가 당연하다는 듯이 맥주는 고래군 앞에, 키니는 내 앞에 놓아준 것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서로의 음료를 바꿔서 놓았는데, 그 모습을 본 직원은 우리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면서 돌아갔다. 이런 일을 종종 겪기 때문에 이 때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몰타에 이어서 찾아간 포르투갈에서도 비슷한 일을 연이어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친 다리를 쉬고 비어버린 배를 채우기 위해, 어느 시장 건물 안에 있는 현지인들만 갈 것 같은 식당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포르투갈 맥주인 수퍼복(Super Bock)을, 고래군은 생오렌지주스를 주문했다. 잠시 후 주문을 받은 할머니가 오셔서 슈퍼복이 다 팔렸다는 손짓을 하시면서 다른 포르투갈 맥주인 사그레스(Sagres)도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맥주를 주문한 것은 나이기에 당연스럽게 내가 괜찮다고 대답을 하려는데, 정작 할머니의 시선과 몸이 고래군을 향해 있다. 게다가 주문한 음료가 나오자 맥주는 또 당연히 고래군 앞에, 생오렌지주스는 나에게 서빙 되는 것이었다. 뭐 갓 짜낸 오렌지주스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그 날의 난 맥주가 땡겨서 맥주가 마시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사실 한국에서는 '맥주는 어디로 놓아드릴까요?' 하고 물어봐 주는 편이니 이런 일을 경험할 일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아무래도 말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아니면 어쩌면 아직까지도 술은 남자들이 더 많이 마시고 좋아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