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고래 Nov 02. 2015

섬나라는 역시 해산물이 좋아

2012. 일본 ::: 오타루 / 삿포로

#1. 입술에 구멍이- 고래군


 그녀는 케이크를 좋아한다. 많이 달콤한 것보다는 깊은 데서 우러나는 단맛을 좋아하는 편이다. 덕분에 케이크도 그다지 달지 않은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오빠 르타오 가보자!”

“르타오? 뭐래요 그건?”

“유명한 디저트 가게인데, 오타루에도 있대. 나 거기 가보고 싶었어.”

“그래요 그럼.”


 일상 속에서 걷는 길에는 언제나 경계가 있다. 사람이 걷는 길과 차가 걷는 길의 경계처럼. 같은 곳을 향하는 길이라 하더라도 사실 그 길은 같은 길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내려앉은 눈은 그러한 경계를 모조리 지워버린다. 사람 옆으로 자전거가 지나가고, 그 뒤를 이어 자동차가 지나가고, 그 다음에는 사람이 지나간다. 가만히 서로 어우러져 이렇게 걷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서울에서였다면, 차도를 잠깐이라도 걸을라 치면 귀를 찢을 듯한 경적소리가 나를 밀쳐버리겠지.

한 가게 앞을 그녀 손을 잡고 지나치는데, 한 남자가 네모난 쟁반 위에 이쑤시개를 꽂은 정육면체 까만 무언가를 가지런히 담아서 우리에게 인사한다. 뭐지? 먹어보라고? 우리는 하나씩 그것을 받아들었다. 초콜릿이다.


“오빠 이 초콜릿 쓴맛 날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나 쓴 초콜릿 좋아해.”


 그녀는 초콜릿을 입에 넣고 사탕처럼 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거치적거리는 이쑤시개를 다시 되돌려주고 싶다. 버릴 곳이 마땅치 않단 말이지. 이 동네는 서울처럼 쓰레기통이 곳곳에 있지 않더란 말이다.

초콜릿을 이빨 안쪽에 끼우고, 이쑤시개를 잡아 빼었다. 어라? 이거 꽤 단단하게 끼워놓았나보네? 잘 안 빠진다. 오기가 생긴 나는 두 손으로 이쑤시개를 잡고 있는 조금씩 강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괜히 무리하다 이빨이 상할 수도 있으니까, 정 안 빠지면 말아야지.’ 하며 조금 더 강하게 잡아당기는 순간, 이쑤시개가 불현 듯 쑥 빠져버렸다. 엉겁결에 이쑤시개를 든 손은 반동하며 다시 내 쪽으로 움직였다. 갑자기 아랫입술에 따끔한 느낌이 들더니, 그 이후에 ‘화아~’하는 느낌이 든다. 아 이거 피 나겠다.


“저기 있잖아. 나 있잖아요.”

“응? 오빠 왜요?”

“나 이쑤시개에 입술 찔렸어.”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내 입술을 들여다본다.

“어디! 많이 다쳤어?”

“아니 이거를 이렇게 빼다가, 갑자기 빠져서 이렇게 돼서 입술을 이렇게 찔렀는데, 크게 다치지는 않았어. 살짝 찔렀어. 그런데 나 혹시 입술에 구멍 안 났어요?”


그녀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내 입술을 노려본다. 갑자기 그녀의 눈이 커지더니, 이어 눈꼬리가 아래로 쳐지기 시작한다.


“푸하하핫! 크크크! 오빠 입술에 뽕! 하고 구멍 났다!”

“웃지 마! 나 그래도 환자인데! 피 안 나?”

“키키키! 오빠가 스스로 찌른 거잖아! 피 조금 나기는 한다! 나 웃으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너무 웃겨!”


 괜히 그녀에게 말했나. 이거 두고두고 놀림 받게 생겼다. 초콜릿은 맛있지만, 나에게 이걸 준 녀석이 괜히 미워진다. 뒤돌아보니, 그 녀석과 그 녀석의 동료는 나를 보고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2. 섬나라는 역시 해산물이 좋아 - 고래군


 비록 오타루에는 하루밖에 있지 않았지만, 마치 며칠 머물다 떠나는 느낌이 든다. 전날 밤 세상을 새하얗게 묻어버리겠다는 듯 한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내리던 폭설이 언제 내렸냐는 듯 하늘은 파랗게 맑기만 하다.


“나 배고파!”

“하긴 우리 점심 먹기는 해야겠지? 어떻게 할까요?”

“그냥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사먹고 말까?”

“그러느니 그냥 슈퍼에서 도시락 사먹고 말겠다!”


 티비에서 언뜻 보았던, 일본이 자랑하는 도시락 문화가 떠오른다. 뭔가 근사하게 준비되기는 하지만, 그만큼 가격도 만만찮았던 게 기억난다.


“그냥 간단하게 때우자. 어차피 이동하는 길이잖아.”


그녀가 나를 가만히 내 눈을 쳐다본다. 눈동자 너머 자리 잡은 마음을 쳐다본다.


“오빠 지금 돈 때문에 걱정하는 거지?”

“응? 어? 아니 뭐 그런 것도 있고….”

“비싼 건 비싸지만, 싸게 먹으려면 충분히 싸게 먹을 수 있으니까 걱정 마요. 일단 열차시간부터 알아보고, 밥을 사먹든지 말든지 하자.”


 오타루역 앞의 도로에 도착했다. 육교가 드문드문 있는 이 길을 어젯밤 우리는 어깨와 머리를 하얗게 눈으로 덮으며 걸었다. 길을 건너기 전 한 건물이 우리 눈에 띄었다. 쇼핑몰처럼 보인다. 백화점까지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상점들이 들어서있는 그런 건물. 그녀가 잠시 둘러보고 싶다며 내 손을 잡고 그 안으로 이끌었다. 그녀가 갑자기 외쳤다.


“어! 슈퍼다!”

“진짜? 어제 찾다찾다 결국 편의점에서 맥주랑 과자 사먹었잖아!”

“그러게요. 여기 있는 줄은 몰랐네. 가보자.”


 슈퍼마켓의 풍경은 뭐랄까,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제법 큰 대형슈퍼마켓과 같았다. 단지 다른 것은, 즉석식품코너에서 고로케와 튀김 종류를 잔뜩 발견할 수 있다는 점과 싱싱한 해산물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오빠! 오빠! 회! 회! 초밥! 초밥!”


 그녀는 해산물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마음껏 먹으라고 하면 무한정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고 그녀 스스로 이야기할 정도이니. 회와 초밥을 외치는 그녀의 눈이 반짝거린다.


“슈퍼에서 파는 건데 맛있으려나?”

“서울에 있는 어지간한 초밥집보다 맛있어요. 오빠 우리 한 번 먹어보자. 회 먹을래 초밥 먹을래?!”

“응? 그래도 점심으로 먹는 거니까… 초밥이 낫지 않겠어요?”

“초밥! 초밥! 스시! 스시!”


 슈퍼에서 초밥을 사들고 나오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그러고 보면 슈퍼마켓에서 둘러본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다. 아니 오히려 가격이 좀 더 싼 것 같기도 해서 조금 의아하기는 하다. 듣기로는 환율이 열 배라서 물가도 한국보다 꽤 비싸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우리는 건물 1층에 있는 테이블에 초밥을 펼치고는 그 자리에서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어때요?”

“우물우물. 음? 맛있다!”

“그치! 맛있지!”

“응. 당신이 아까 서울 어지간한 초밥집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이 사실인가봐!”

“아무래도 여기가 본고장이잖아. 게다가 바다가 가까우니까, 해산물도 싱싱한 편이고.”

“그렇구나! 나 갑자기 이 동네 좋아졌어!”



::: 따끈할때 먹으면 더 맛있는 고로케 :::






#3. 겨울 삿포로에서의 첫 날 - 미니양


 든든하게 먹고 삿포로로 돌아가는 길. 삿포로 공항에서 오타루로 올 때 삿포로를 잠깐 거쳐왔으니, 돌아가는 길인 셈이었다. 삿포로와 오타루는 우리네 서울과 부천정도 거리였기에 교통편은 꽤 자주 있다. 첫 삿포로 여행은 9월초. 이번 여행은 겨울의 한 가운데인 12월말. 눈덮인 삿포로의 모습은 어떠려나? 9월의 삿포로는 참 쾌적한 날씨였는데 말이지. 이런 생각 끝에 어느새 삿포로에 도착했다. 오타루와 마찬가지로 삿포로 역시 눈천지. 삿포로역에서 시계탑 근처에 있는 숙소까지 걸어가야 했기에 난 고래군에게 말했다.


“오빠! 우리 지하상가로 가요.”

“왜?”

“밖에 눈도 많이 오고 추울거야.”

“그냥 밖으로 나가요. 답답해요.”

“그래요, 그럼. 근데 눈 많이 오니까 조심해서 걸어야해요.”

“응!”


 시계탑까지 걸어가는 동안, 삿포로 시내에는 사람이 없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다들 집에 틀어박혀 있나? 9월의 삿포로 거리에도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이번엔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다. 


 숙소에 배낭을 풀고 홀가분하게 동네구경을 나서는 길. 길을 건너가기 위해 지하상가로 들어섰는데... 삿포로 시민들은 모두 거기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지하상가에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지하도시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날부터 우리의 삿포로에서의 하루는 지하상가에서 시작해 지하상가에서 끝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타루, 겨울바다와 오르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