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나이로비 <Spring Valley>
처음 케냐에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드넓은 초원 위의 동물들과 더불어 생각이 났던 것이 바로 '커피'이다. 커피를 매우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서 케냐 AA로 대표되는 케냐 커피를 현지에서 직접 마셔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그것으로도 설레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케냐 커피는 해발 1,500m 이상의 고지대의 화산 토양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품질이 우수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커피 산지인데, 나 역시도 에티오피아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원두 산지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케냐 AA라는 이름의 원두 이외에는 다른 케냐 커피를 잘 만나보기 어려웠다. 예전에 일본을 여행할 때 다카마쓰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엘곤 마운틴'이라는 원두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마셨던 커피의 맛을 잊을 수 없어서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도 카페에 갈 때마다 찾아보곤 했지만, 한국에서는 정말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케냐를 여행하는 동안 이번 기회에 꼭 찾아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슬슬 나이로비의 분위기에 익숙해질 때쯤, 드디어 나는 엘곤 원두를 찾아보기로 했다.
엘곤 마운틴은 케냐와 우간다 국경에 있는 휴화산 이름인데, 이 일대에서 재배되는 원두에 '엘곤 마운틴'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 같았다. AA 등급이라 크게 보면 케냐 AA 원두에 속하지만, 특히 엘곤 마운틴에서 재배되는 오래 전 기억 속의 그 원두를 찾아서 다시 마셔보고 싶었다. 산미와 함께 복합적인 과일향이 어우러져 바디감까지 깊어서 감동스러웠던 그 커피를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찾아본 끝에 <Spring Valley>라는 카페를 찾아냈다.
나이로비에 있는 스프링 밸리라는 지역 이름을 딴 이 카페는 나이로비에 이미 몇 개의 지점을 두고 있는 상태였다. 구글맵으로 검색하니 '빌리지 마켓'에 있다고 해서 쇼핑몰도 구경할 겸 찾아갔는데, 내가 생각하던 그런 카페가 아니라 브런치 카페에 가까웠다. 개별 원두도 판매하지 않고, 원두를 골라서 핸드드립으로 마실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그저 <Spring Valley>의 원두를 사용하는 브런치 카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며칠 뒤 다른 <Spring Valley> 카페로 향했다.
두 번째로 찾아간 <Spring Valley> 카페는 웨스트랜드 지역에 있는 웨스트게이트 쇼핑몰 안에 있는 지점이었다. 이번에도 실패인 건 아닐까 걱정을 안고 카페로 들어서니, 빌리지마켓에 있는 카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메뉴판이 나를 반겼다. 그리고 메뉴판 옆에 진열되어 있는 원두봉지들 사이에서 'Elgon'이라는 원두이름을 발견! 드디어 내가 찾던 원두를 찾은 것이다.
기쁜 마음에 원두봉지부터 덥석 집어 들었다. 내가 집어 든 원두는 모두 두 가지로, 각각 'Elgon'과 'Gourmet'라는 이름의 원두인데, 가격은 250g 기준 각각 1,500실링과 1,300실링. 거기에 그 자리에서 마실 V60 핸드드립 커피(580실링) 두 잔까지 주문했더니 무려 우리 돈 4만 원이 나왔다. 아차 싶었다. 찾고 있던 원두를 만난 기쁨에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말아 버렸다. '아니야, 한국에 돌아가서 맛있게 즐기면 되지.' 하고 생각하면서 애써 큰 지출을 합리화시키면서, 바리스타가 V60 원두로 추천해 준 'Nuru'라는 원두로 내린 커피를 홀짝거렸다. 바리스타의 추천 커피는 케냐 AA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깔끔한 커피였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드디어 그동안 찾아 헤매던 원두를 만나 들뜬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곳 카페는 마치 우리나라 여느 쇼핑몰이나 백화점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고급지고 차분한 분위기였는데, 손님들도 대체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볍게 커피와 디저트를 먹거나 노트북을 두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 역시 커피맛을 음미하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Elgon'과 'Gourmet'를 칼리타로 내려서 마셔봤는데, 'Elgon'은 상큼한 향과 함께 우아한 산미가 인상적인 커피였고, 'Gourmet'는 산미가 약간 있지만 'Elgon'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산미, 그리고 여기에 감미와 향긋함이 잘 어우러져 상당히 조화로운 커피였다. 무엇보다도 둘 다 원두 로스팅 상태가 정말 좋고 원두 상태도 굉장히 깨끗해서 감탄하는 중이다. 이 원두들을 다 마시고 나면 다시 케냐에 가고 싶을 것 같다.
- Spring Valley
The Pop-up Market Westgate Mall, 18 Mwanzi Rd, Nairobi, 케냐
https://www.springvalleycoffee.com/collections/coff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