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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힐 Dec 19. 2019

[깨달음] 천천히 달리기

운동을 해야지..해야지..하면서도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운동의 필요성은 늘 인식하고 있지만 재미도 없고 힘든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나에게 운동이란 집에 있는 철봉 매달리기랑 신랑과 주말에 산책 및 조깅을 하는 것이 전부다. 그나마 철봉이 집에 있어 천만다행이다. 눈에 보이니까 지나다니다가 한 번씩은 꼭 매달린다. 덕분에 작은 알통도 생겼다.

우리집 소중한 운동기구

허나 하체운동, 다리 운동 그리고 유산소 운동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매일 집에 앉아만 있으니 움직일 때 자꾸 삐거덕, 삐거덕 소리가 난다. 무슨 나무 인형도 아니고...;;; 그래도 아직 30대 초반인데 몸이 너무 저질이 됐다.


때마침 친구가 추천해준 <우울할 땐 뇌과학>을 읽으니 운동의 필요성 중요성은 더 각인됐다. 새로토닌 생성을 돕는 햇빛을 맞으며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력히 들었다!


운동은 상승나선을 가동시키는 가장 단순명료하고 효과가 큰 방법일 것이다. 게다가 운동은 항우울제가 뇌에 미치는 효과와 동일한 여러 효과를 발휘하고, 심지어 기분전환 약물이 주는 취기를 흉내 내기도 한다. 운동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꽤 미묘하면서도 목표가 분명한 뇌의 변화를 야기하고 심지어 약물이 주는 것보다 더 훌륭한 혜택을 준다. - <우울할 땐 뇌과학> 중


사실 어렸을 때 반 대표 달리기 선수로 뽑힌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작고 빨라서 고등학생 때까지 단거리 선수로 많이 활약했다. 초등학생 5학년 때는 남학생도 꺾고 장거리 일등으로 결승점에 들어온 적도 있었다. 꽤나 날렵하고 빨랐던 나였는데...어느 순간 계단 몇 개만 올라도, 몇 시간만 걸어도 힘에 부쳤다. 정말 저질 체력이 된 것.


주말에도 신랑과 함께 레일을 돌며 달리기를 하는데 신랑은 너무 잘 뛰고 나는 조금만 달려도 힘드니까 재미가 없어졌다. 이래 봬도 왕년에 달리기 선수였는데... (체대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금의 나를 보니 이상한 자괴감도 들고, 속이 상했다. 그래도 한번은 신랑을 따라잡고 싶어서 있는 힘껏 달렸는데 돌아온 건 호흡곤란, 배 땡김, 남은 시간 계속 골골대는 것이었다. 그 이후부터 달리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뛰는 게 힘들고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자신감도 없고, 의욕도 없고.


답답한 오후 어느 날, 밖에 나가 상쾌한 공기(*미세먼지 좋음)를 마시며 조금이라도 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 나갔다. 사람이 적고 풍경이 예쁜 코스를 발견했다. 그리고...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거의 걷는 속도로...

앞에 걸어가는 사람이 나의 발소리를 듣고 자리를 비켜주는데 추월할 수 없다. 그 정도로 천천히 뛰는 달리기. 생각보다 오래 자리를 비켜준 사람을 지나 다시 뻥 뚫린 길을 아주 천천히 달린다.


'어라? 이것도 뛰는 느낌이 나네?'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걷기와 다르게 안 쓰는 근육을 쓰게 되고 기분 좋은 땀이 난다. 걷는 사람보다는 조금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한다. 빨리 가려고 속도를 내거나 속도를 너무 낮추면 목적지까지 동일한 속도로 가지 못한다.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아주 천천히 뛴다. 무리 없이 가볍게 목적지까지 도착한다. 몇 번 이렇게 천천히 달려보니 이거 아주 매력 있는 운동이 됐다.


사실 달리기라고 말하기엔 민망하지만 그래도 천천히 뛰며 풍경을 음미하고 잔잔한 바람을 느끼는 이 소중한 달리기 시간. 달리기가 재밌어졌다.


오래 앉아있는 날이면 자동으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할 일을 마치고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 선글라스를 쓰고, 천으로 향한다. 그리고 천천히 달린다.


천천히 달리기


천천히 달리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이처럼 내가 살아간다면...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조금씩 성장하지 않을까? 시간이 좀 걸려도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천천히 무리 되지 않는 선에서 나만의 속도에 맞춰 목적지까지 가는 것. 갑자기 없던 용기와 의욕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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