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멀 사남매맘 Jul 26. 2023

미니멀라이프로 쓰게 된 미니멀 버킷리스트

다둥맘의 소소한 바람들

‘버킷리스트’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리스트를 적는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내 성향은 MBTI에서 극 P 여서 인지 뭔가 계획하고 그것을 실행해 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고 나서 약간은 J의 성향도 생겨가는 듯하다. 마흔이 되니 ’ 버킷리스트‘라는 단어가 더 마음에 확 와닿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마흔에는 뭔가를 꼭 이뤄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고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정리할 물건들이 줄어들어 생각지도 못하게 나에게도 ‘여유시간’이라는 것이 주어졌다. 그 시간들을 ‘미니멀 버킷리스트’를 이뤄가는 시간들로 사용하고 있다. 뭔가 거창하고 화려한 계획은 아니지만 4남매를 키우며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던 일들을 하나씩 해가기 시작했다.


그중 제일 자주 하는 일은 ‘혼자 카페에 가서 시간 보내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이와 함께 하느라 그 맛난 커피를 믹스커피로 미지근하게 타서 원샷을 해버렸다. 커피 향과 맛을 음미할 틈도 없이 거의 뭐 정신을 차리기 위해 마시는 약처럼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미니멀라이프로 집안일을 정한 시간 외에는 하지 않다 보니 카페에 가서 혼자 앉아 책 읽고 글 쓰고 사색하고 노는 시간이 주어졌다. 결혼 전에는 자주 하던 일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소중한 일인지 몰랐다. 9년 동안 육아하며 바쁘게 지내며 나를 돌볼 시간이 없어보니 알겠더라.


남편이 두 번째 코로나 소식을 들고 왔다. 초등학교 방학을 3일 앞두고 있었는데 그 3일이 내게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더욱더 충전하려고 했다. 물건들도 더 많이 비워내고 방학을 맞이하려고 했다. 카페에 가서 맛난 커피도 마시고 독서도 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려 했다. 생각지 못한 코로나 소식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24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 오전부터 병원에 가서 대기하고 PCR 검사를 받고 오는 길에 코로나 때 격리되면 장을 못 보러 나올 수도 있으니 4남매와 함께 장을 보러 가기도 했다.

집에 와서 부랴부랴 점심을 준비해서 먹이고 막둥이를 재웠다. 내 시간을 좀 가져볼까 했지만 엄마 찾는 아이들 덕에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 했다. 이토록 매일이 변수 많은 다둥맘의 하루이기에 ‘혼자만의 카페타임’은 너무나도 소중한 버킷리스트였다.


또 하나는 ‘등산’이었다. 등산 또한 결혼하기 전에는 자주 했었는데 결혼과 동시에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하느라 산에 오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전에 살던 집 앞 공원 안에 작은 산이 있었다. 아이들과 공원을 산책하며 산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오를 수 있겠지?’라고 생각만 했다. 셋째와 막내가 아직 어려서 산에 오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맡길 여력도 안 되었다. 19개월 막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용기를 내어 산에 처음으로 올라간 날의 그 쾌감과 자유로움을 잊지 못한다. 한쪽은 바다가 보이고 한쪽은 사는 동네가 쫙 펼쳐져 보였다. 이렇게 넓은 세상에 살면서 육아한다는 핑계로 너무 집에만 갇혀 살아있었다는 것이 후회가 되었다. 더 높이 멀리 보는 내가 되길 바라는 마음 또한 생겨났다. 땀을 흘리고 내려오니 기분도 상쾌해졌다.

그때 이후로 매달 1번씩은 꼭 등산을 하자고 다짐했고, 이제는 조금 커진 첫째, 둘째와 함께 산에 오르고 있다. 자연과 하나 되는 경험을 아이들과 하며 산에 오르내리는 길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하며 아이들의 속내도 듣게 되고 더 돈독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나에게도 좋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등산’이다.


버킷리스트 안에 ‘자전거 타고 바닷길 횡단하기’라는 목록도 담아두고 있다. 이사오기 전에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  ‘마녀체력’이라는 책을 카페에서 읽고 있다가 바닷가를 자전거 타고 무리 지어 다니시는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새로운 눈이 열렸다. 결혼 전에는 ’ 부담스럽게 쫄바지 입고 저게 뭐 하는 짓이지?’라고 생각하며 선입견을 가지기도 했다. 아줌마가 되어보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체력 좋고 운동을 많이 하는 자기를 돌볼 줄 아는 분들이 하는 운동이라는 마음마저 들었다. 나 역시도 ‘자전거 타는 복근 있는 할머니’가 되길 바라는 소망이 생겼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두 발 자전거 타고 헬맷까지 착용하고 가족 모두와 함께 바닷길을 달려보고 싶다. 최근에 첫째, 둘째가 두 발 자전거를 타게 되어 같이 동네 산책하고 있는데 논길을 함께 땀 흘리며 달리고 스피드를 즐기는 우리 모습이 참 좋다. 아이들이 커가며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서 더 좋다.


쓰고 보니 버킷리스트에 운동 목록들이 많다. ‘수영 배우기’도 있다. 수영은 배영 밖에 못 한다. 물은 엄청 좋아하는데 호흡이 짧아 수영을 배울 엄두를 못 냈다. 임산부 수영을 배워볼까 하고 첫째 때 태교로 도전했는데 잠수 배우며 바로 포기했다. ‘음파음파’를 못 하겠더라..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코에 물이 들어가는 게 싫은 모양이다. 이번 여름방학 때 아이들과 수영을 배워보고 싶다. 자유롭게 날아가듯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싶다.


미니멀라이프로 이렇게 작고 초라해 보이는 버킷리스트여도 마음에 담아두고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어보며 실천해 가려는 나의 모습들이 왠지 모르게 뭉클하고 대견스럽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여겼던 편협한 생각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된다. 이렇게 소소한 버킷리스트들을 이뤄가다 보면 언젠가는 더 화려하고 그럴싸해 보이는 리스트들까지 작성하고 이뤄가고 있겠지? 꼭 그렇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버킷리스트들을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전 26화 미칠 대상을 찾아 준 미니멀라이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