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를 하면서 많은 물건들을 비웠습니다. ‘그만큼 비웠으면 이제는 쉴 때도 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에요. 그러나 비움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남아있는 물건들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비움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남겨진 물건들과의 삶이 시작된 거 같아요.
공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한 일은 바로 남아있는 물건들에게 자리를 정해주는 것이었어요. 물건을 사용할 때 빨리 찾을 수 있어 좋았고. 물건을 비울 때도 비울 물건을 찾는 수고로움을 덜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저는 얼마 전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한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정리 중이에요. 수많은 물건들이 뒤죽박죽. 이사비용을 아끼고자 하지 못했던 포장 이사가 조금은 아쉽습니다.
더군다나 이사를 하면서 비웠던 수납장들 때문에 줄어든 수납공간에 걱정도 한가득이었어요. 모든 물건들을 새로운 집에 맞춰 정리를 하자니 막막하더라고요. 최소한의 동선과 사용함에 있어 불편함이 없게 하려고 하니 더더욱 물건들의 자리를 정해주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삿짐 정리는 점점 길어졌고 어디 한 군데도 편하게 발 디딜 때가 없었어요. 안 되겠다 싶어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을 일단 여유공간에 모두 넣어두기로 했습니다. 각자의 자리가 정해지기 전까지 말이에요.
문득 이렇게 넣어도 여유공간이 남아있었으면 참 좋겠더라고요. 물론 여유공간이 없더라도 비움을 통해 얼마든지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고요. 그렇게 물건의 자리를 정해주면 되잖아요.
그렇다면 과연 물건의 자리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요?
※ 물건의 자리를 정하는 법
1. 쓰임이 가까운 곳으로 선택하기
인터넷으로 구입한 섬유유연제가 도착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디에 보관을 하실 건가요? 맞습니다. 세탁을 위한 생활용품이니 당연히 그 쓰임이 가까운 곳에 놓는 게 맞겠죠? 그래서 전 세탁기 위 선반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어쩜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물건의 자리를 정할 때는 그 쓰임이 있는 그곳에 놓아야 한다는 것을요. 그래야 동선과 사용의 편의가 제일 좋지 않겠어요?
2. 쓰임이 비슷한 것들로 선택하기
설거지를 하려면 주방세제, 고무장갑, 수세미 등이 필요하고, 빨래를 하려면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가 필요합니다. 또한 샤워를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그렇게 쓰임이 비슷한 것들끼리 자리를 정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단 저희 집 같은 작은 집이라면 조금은 어려울지도 몰라요. 그래서 전 그보다 더 큰 카테고리인 생활용품은 생활용품끼리. 식료품은 식료품끼리 보관을 하고 있습니다.
저만의 방법으로 많은 물건들에게 자리를 정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집안 여기저기에서 자리 없이 떠도는 물건들을 보니 비움이 아직은 필요한 거 같아요. 이럴 때 마음가짐도 중요하답니다. 떠도는 물건들을 볼 때마다 수납장을 더 사고 싶다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다 물건 하나를 들이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포기하지는 말아요. 그럴 때마다 물건들의 자리를 다시 확인하며 지켜봐 줘야 합니다. 이 물건이 여기에 있는 게 맞는지. 사용기한이 있는 물건들이라면 더 빨리 사용할 수 있도록 보이게 놓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겨진 물건들의 자리가 정해진다는 거.
그렇게 모든 정리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정말 끝난 걸까요? 아니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물건의 자리를 정한 뒤 더 중요한 일이 남아있거든요. 그건 바로 물건의 자리를 유지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물건을 사용한 후 제자리에 갖다 놓기를 배우는 건가 봐요.
물건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꽤나 어렵습니다.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는 첫째, 갖다 놓는다고 해놓고 엉뚱한 곳에 놓고 오는 둘째. 어느새 물건들은 다시 또 뒤죽박죽이 되어있곤 하잖아요. 그러나 비움을 통해 물건이 줄어들고 집안일도 단순해진다면 매번 정리할 필요가 있을까요? 또 매번 정리 좀 하면 어때요? 그래도 여유 있는 삶이 될 건데요.
사람에게도 자리는 정말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자리가 물건에게도 만들어질 때 사람들은 편안함과 가벼움 그리고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삶을 이미 경험하고 있기도 하고요. 욕심이라 해도 좋아요. 그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 책상 위에는 여러 가지의 다이어리와 문구들이 놓여 있습니다. 나이가 들다 보니 넣고 꺼내기가 참 귀찮더라고요. 물론 이 물건들을 넣어놓을 수납장이 없다는 것도 이유이고요. 그러나 여기 있는 진짜 이유는 제가 자리를 정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전혀 미니멀라이프를 사는 사람의 책상 같지가 않다고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각자의 삶이 다르듯이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방식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물건을 대하는 자세도 말이에요. 책상 위의 모든 물건들은 저의 기록을 위한 최소한의 물건들입니다. 이것이 저의 미니멀 라이프인걸요.
그럼에도 언젠가 이 많은 다이어리중에 하나만 남게 되길 바랍니다. 수많은 펜들 중에서 나에게 잘 맞는 몇 자루의 펜만 남아있길 원하고요. 지금보다 더 큰 책상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상으로도 충분하다는 삶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도 물건을 비우고 들이는 데 있어 신중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저의 미니멀 라이프예요. 그래서 전 여전히 미니멀 라이프가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