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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는 꽂히면 하는 거 아냐?

by 미니멀랑이



미니멀라이프 덕분에 집안일이 참 단순해졌습니다. 정리하는 것도 수월해졌고요. 이제는 당장 손님이 오신다고 해도 호들갑 떨지 않고 맞이할 수 있을 정도랍니다. 다시 또 바빠진 요즘 피곤한 날들이 이어져 집안일에 소홀해지고 있긴 한데요. 그럼에도 쉽게 어질러지지 않고 꽤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겠죠?


미니멀라이프를 처음 시작할 때가 생각납니다. '오늘은 여기를 확인해 볼까? 아니면 저기를 확인해 볼까?'.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던 제 모습이 생각납니다. 물론 그래야 정리할 곳을 찾아내 물건을 비울 수 있었으니.


요즘은 정해진 정리 순서를 지키기보다 무언가에 확 꽂히면 정리와 비움을 시작합니다. 어질러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비워야 할 물건들을 찾아내면서요.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워킹맘인 저는 그랬습니다. 평일에는 일한다는 핑계로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못했고요. 아이들 식사를 챙기고, 교복을 세탁하는 정도의 최소한의 일만 했습니다. 그 외의 일들은 주말로 미뤄놓았고요. 주말이 되면 미뤄놓았던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빴고, 제대로 쉬지 못한 날들이 수두룩 했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집착을 하게 된 거 같아요.


여전히 이런 생활패턴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안일에서 만큼은 변화가 있더라고요. 모두가 미니멀라이프 덕분입니다.


많지 않은 그릇들 덕분에 밥을 먹고 난 후 바로 설거지를 하며 주방 마감까지 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말이에요. 예전 같았음 미뤄놓았다가 다음날 했을걸요. 옷은 또 어떻고요. 많은 옷들을 비워낸 후 겹겹이 쌓아놓은 옷들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옷장문을 열 때 망설임 없이 열어 옷을 꺼내요. 그만큼 시간이 단축되더라고요.


이렇게 바뀐 생활들은 정해놓은 일정대로 정리를 하지 않아도 괜찮았고요. 무작정 시작한 정리에도 전혀 부담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특히 힘들고 지친 저에게는 딱 좋더라고요. 이런 경험 하나하나가 큰 영향이 되어 이제는 정말 꽂히면 바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멀티 플레이가 되지 않는 저.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때부터는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거 이제는 압니다. 그래서 오늘도 현관에 널브러진 신발들을 정리하다 꽂힌 신발장을 열어젖혔습니다.



잦은 야근으로 인해 피곤함에 절어 퇴근하던 어느 날,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현관문을 열었는데 하!. 들어선 현관에는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이런 날이 하루 이틀은 아니었기에 모르는 척 들어가서 눕고 싶었어요. 그데 거기에 꽂혀서는.


저희 집에는 각자 신발을 정리하는 날이 있습니다. 딸아이는 월수금, 아들아이는 화목토 그리고 전 일요일. 현관에 신발을 내놓아야 할 만큼 급하게 나갈 일은 없다고 생각했고. 크록스 슬리퍼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신발은 신발장에 넣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하지 않았나 봅니다.


알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완벽할 수 없다는 걸요. 지키는 날보다 지키지 않는 날이 더 많다는 것도. 그래도 자신이 맡은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저 자고 있을 아이들을 속으로만 불러 봅니다. '아오, 아그들~' 그렇게 조용히 신발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신발장안의 신발들은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어두운 색의 신발장이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더러움이 있어도 티가 안 나요. 그래서 은근히 좋아하긴 하지만 한 번씩 정리는 필요하다는 거. 그렇게 신발장안의 신발들을 모두 꺼내었습니다.


역시 신발이 제일 많은 사람은 바로 저더군요. 흰색 스니커즈 운동화, 검은색 앵클부츠, 검은색 단화, 거기에 포장박스도 뜯지 않은 선물 받은 운동화 등. 그래도 같은 종류의 신발은 없다며 속으로 안심했답니다. 어이구, 철없는 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자주 신는 신발은 꺼내기가 쉬운 곳으로 정리를 해 주었고요. 자주 신지 않는 계절용 신발들은 모두 높~이 올려놓았답니다. 그리고 신발 2켤레까지 비웠다는 거. 굳이 잘 신지 않는 신발에게 공간을 내어줄 필요는 없잖아요.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저희 집 신발장은 수납도 함께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정리를 하다 보니 자그마한 욕심이 생깁니다. 따닥따닥 붙여놓은 물건들에게 좀 더 여유공간을 주고 싶다는. 그래서 자리를 조금씩 바꿔주었어요. 공간 디자인이라는 것을 배워 본 적은 없지만 어떻게 놓으면 공간이 여유로워 보일까라는 생각은 하거든요. 그만큼 제 마음에도 살짝 여유가 생기나 봅니다. 집안 어디에서든 이런 빈 공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네요.




정리만 해도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움까지 더해진다면? 미니멀하면서 여유로움까지?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을까요? 다만 정해진 시간 안에 그 일들을 하지 못했다고 죄책감을 갖는 그런 거 말고. 내 마음이 꽂히면 하는 정리 시간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물건의 양을 조금만 더 줄일 수 있다면 정리하는 시간도 더 줄어들 텐데. 조금은 아쉽지만 더 비울 신발이 없는지를 고민하는 대신 다음을 기약하며 신발장 문을 닫았습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요즘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네요. 그저 현관에 엉켜있는 신발들을 신발장에 넣었을 뿐인데. 어쩜 그래서 미니멀라이프와의 동행이 더 간절했나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정리를 잘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왜 안 그렇겠어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 속만 봐도 미니멀 라이프라고 하면 깨끗하고 정리된 집안의 사진과 영상들이 수도 없이 나오는걸요.


문제는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저 조차도 어느새 잘하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결코 정리를 잘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에요. 그저 물건들이 적어서 조금만 정리를 해도 바로 효과가 나타났을 뿐. 그래서 가끔은 한없이 작아집니다. 그래도 꽂히면 하는 정리 덕분에 살아갈 힘이 납니다요. 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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