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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가 필요 없어지기도 하잖아

by 미니멀랑이


인형 하나 더하기



요즘 당신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나요? 삶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모두 다른데 말입니다. 처음부터 정해놓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있다고 해도 삶의 변수들이 참 많죠?


오히려 살아가면서 배우고 원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면서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는 거 같아요. 미니멀라이프처럼 말입니다.


많은 물건들을 비워왔지만 여전히 많은 물건들이 저희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분명 집안에서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물건임에도 말이에요. 그러나 물건 하나하나에는 저희 집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다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저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참 좋아지는 물건조차 말이에요.


물론 그런 물건들 속에는 오랜 쓰임으로 인해 그 쓸모를 다한 물건도 있고요. 문득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물건들도 있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눈 딱 감고 모른 척 그냥 지나쳤을 거예요. '그거 하나 있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될까?'라는 생각에서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미니멀라이프를 통해 물건을 왜 비워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거든요. 홀가분함, 이 한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요.


그렇다면 물건이 필요 없어진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아마도 쓸모를 다했다고 느낄 때인 거 같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물건의 쓰임이 끝났다는 그런. 집안에 머무를 필요가 없어졌다는 그런.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오랫동안 일한 회사라 짐이 좀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생각보다 많지 않더군요. 미니멀라이프 덕분에 말이에요. 집보다는 덜하지만 회사에서도 물건이 많은 건 좀.


그렇게 꽤 오래 사용한 물건들이기에 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물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습니다. 마음을 다해 쓴 물건들이라 그런지 비워도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요. 그렇게 남은 물건은 매일 사용하던 머그컵이었습니다. ‘이거 뭐지??'


황당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결국 남은 게 이 새빨간 머그컵 하나라니요. 살짝 맘 상할 뻔했습니다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물건들을 끝까지 썼다는 생각에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입사한 이후 쭉 제 책상 위에서 함께였으니 머.



사무실에서 사용할 땐 몰랐지만 집안에서 빨간 머그컵은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색깔은 그렇다 쳐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언제부턴가 머그컵 대신 스텐으로 된 보온밥통이나 텀블러를 사용하게 되었고 잘 쓰던 머그컵 하나가 골칫덩어리가 될 줄이야.


여름에는 시원하게 얼음을 넣어 물을 마시고, 겨울에는 연기가 모락 나는 따스한 차를 마십니다. 스텐컵은 얼음물을 넣어도 컵 주위에 물방울이 생기지 않았고, 뜨거운 차를 마실 때는 잘 식지 않았으며 손잡이가 없어도 뜨겁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잘 쓰던 머그컵 하나를 버렸습니다.


끝까지 다 쓰지 않은 물건이라도 필요가 없어지면, 쓸모가 없어지면 비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런 물건을 비울 땐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도요.


이런 경험들이 저를 만들어 가나 봅니다. 앞으로 새로운 물건들을 만나게 되면 끝까지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건 환경이나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 이젠 알게 되었거든요. 비움을 할 때 조금이나마 불편한 마음을 덜어내고 싶은 욕심이기도 하고요.


하루는 책상 앞에 앉아서 주위의 둘러본 적이 있어요. 정말 많은 물건들이 있더라고요. 몇 개인지 세워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날엔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니.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 모든 물건들이 쓸모가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앞으로 필요가 있겠지라는 마음에서는 아니었을까요?


미니멀라이프를 하면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갖고 있는 모든 물건들이 쓸모가 있으면 하는 겁니다. 남은 삶, 그 물건들과 함께 잘 살아내고 싶어요.


계절별로 옷이 10벌 이하, 가방과 신발은 옷차림에 따라 10개 이하, 색깔별로 있는 하나씩만 있어야 하는 펜들 등 각자의 생각은 모두 다를 테지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아내면 참 좋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비움을 멈출 수가 없고, 멈추기도 싫네요.


어떤 물건이든 그 쓰임을 다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거 같습니다. 옷 하나를 사서 해질 때까지 입고, 펜 하나를 사서 잉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쓰며, 컵 하나를 사서 깨질 때까지 사용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 쓴 물건들처럼 갖고 있는 물건들 모두가 쓸모를 다하고 비워지길 바라요. 그럼에도 쓰다가 필요 없어진 물건이 생긴다면 망설이지 않고 비우겠습니다.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하지 않을 거고요. 그것이 물건을 대하는 저의 자세입니다.


‘나는 언제쯤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물건만 비우면 미니멀 라이프, 심플한 삶을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살면서 배웁니다. 그래서 오늘도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살고 있고요. 지금 당신은 당신의 물건들로 충분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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