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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미니민 Mar 12. 2017

관상

당신이 소름끼치도록 싫습니다 _2/3

20대 이전의 얼굴을 부모님이 물려주신 거라면,

그 이후의 얼굴은 본인이 살아오는 삶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나는 관상보는 법을 알지 못하지만, 사람의 얼굴에서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 믿기에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이 께름칙한 상대는 멀리하는 편이다.


그 때 브런치에 글을 적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로 전 팀장이 얼마나 별로였는지 기염을 토하는 글을 적었었다.

그 이야기를 이어, 내가 직장 내 성추행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적게 된 계기들에 대해서도 적어볼까 한다.



팀장 성향 때문에 낮술은 물론이고 저녁에도 일주일에 서너번 씩 회식이 잡혀 있던 직장에 입사하고 반 년,

난 직장 내 성추행을 당했다.

잦은 회식에, 중년 아저씨들이 주변에 여직원이 있는지 의식 못 하고 여성 비하 발언과 수도 없는 섹드립(?)을

 술자리에서 할 정도로 남초였던 회사에, 누군가는 말 못할 고민들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그 걱정의 주인공이 내가 되었다.

가해자는 같은 팀 상사였고, 술자리에서 나를 술집 종업원 대하듯이 취해서 더듬는 탓에 기분이 확 상해버렸다.

임원이 같이 자리한, 꽤 큰 술자리였는데 대담하게 그 짓을 벌인다는 게 괘씸하기도 해서 귓속말로 욕을 했다.

그러고는 그 상사는 모르는 척인지, 그냥 정말 만취해서인지 술자리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사이다라구요? 아직 사이다 나오려면 한참 멀었어요!


그 주 주말엔 악몽을 꿨다.

그러고는 분명 나를 의식하는 듯한, 조심스러운 상사의 행동과

나와 둘이서만 활동해야하는 인수인계 스케줄을 잡는 상사를 보고 따로 사과의 말을 하기 위해

시간을 잡는가보다 하고 사과의 시간을 줬다.

하지만, 불편한 시간만 계속해서 만들었을 뿐, 그 날의 행동에 대해 그 어떤 사과도 없었다.


심증만 있는 의심은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고, 결국 팀장에게 이번 일에 대해 따로 얘기했다.

계속해서 그 사람과 같이 일하기 껄끄럽고 불편하다고 어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팀장이 처음으로 나에게 부탁한 것은 인수인계를 문제 없이 끝내주고

그 주에 계획된 팀 워크샵에 문제없이 참석할 것과, 그리고 같은 주에 잡힌 국장과의 저녁식사 스케줄을

모두 그 상사와 같이 소화해달라는 것이었다.

바보같이 나는 이 얘기를 듣고 당황했을 팀장의 입장을 생각해서 이 세 가지 부탁에 모두 수락했다.


그러고나서 바로 다음 날, 팀장은 또 다른 부탁을 추가했다.

개인적으로 사과만 받고 문제를 덮을 수 없냐는 부탁이었다.

(다시 똑같은 일이 재발했을 경우, 가해자를 가중처벌하겠다는 믿거나말거나식의 다짐과 함께)

나는 확실하게 이번 일이 너무 괘씸해서 솔직히 물증만 있었으면 형사고발까지 고민하고 있었을 정도였다고

강경하게 얘기를 했고, 팀장은 생각보다 나의 단호한 태도에 당황했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보자 했다.

그러고는 이 때처럼 급하게 나에게 일처리 경과에 대한 아무런 피드백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상사도 동석하는 회식, 워크샵, 인수인계 모두 참석할 수 밖에 없었다.

일을 회상하며 적는 나도 고구마 물없이 계속 먹는 거 같다..


본인도 딸이 있어서 내 심정을 잘 안다는 팀장이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나는 가족들에게

이 사태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팀장에게 최후의 통첩처럼, 지금 있었던 일에 관해서 내가 적은 진술서와 함께

가해자 상사에게 사과를 받고 끝낼테니 일이 재발될 경우 그 일에 대해 가중처벌을 받겠다는 것을

약속해달라는 문서를 만들어서 메일로 송부했다.

그리고 이 문서에 팀장, 나, 가해자 상사 세 명의 서명을 담아 셋이서 한 통씩 보관하자고 메일을 보냈다.

그러자 팀장은 분명 저녁약속이 있다고 일찍 퇴근하고는, 메일 전송한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회사에 들어와 컴퓨터 앞으로 복귀했다.


다음 날, 팀장은 그제서야 나를 불러 가해자 상사와 사실관계에 대해 확인해보고,

그 문서에 서명해주겠노라 약속했다.

그 때 나는 미숙하게, 이 일이 처리되면 나는 이 일 때문이라도 회사에 대한 애정이 떨어져서

더 이상 못 다닐 거 같다며 퇴사 의지가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흘렸다.

(일이 처리되기 전까지는 절대 얘기를 꺼내선 안 되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뭐시여, 아직 남아있었어?


그 후 추가적인 면담에서 갑자기 팀장은 독기 어린 눈을 하고, 나에게 그 문서의 보관 권리를 본인만이

가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가지고 있으면, 그 가해자 상사에게 내가 지속적으로 '마음의 짐'으로 남을 것이며 협박이나

2차 추가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랬다.

그리고, 문서의 보관 기한도 본인이 보관하면서 1년 동안만 보관 후 폐기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어처구니 없는 제안에 나는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자,

내가 퇴사 후 다른 곳에 지원했을 경우에는 본인이 관리자로서 reference call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지위임을 협박 아닌 협박으로 은근슬쩍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때의 팀장은 독기 어린 눈을 하고 있었고, 본인에게 해 될만한 사안에 대해 세상 물정 모르는 것 같은

어린 여직원을 슬쩍 구워삶아 본인이 원하는 대로 (팀과 본인 고과에 누가 안 가도록) 어떻게든

일을 처리하려는 독한 의지를 보였다.

그야 말로 독사의 상이었다.

실물은 차마 징그러워서


결국 팀장과는 말이 안 통해 인사팀에 해당 문제를 넘기게 되었고 본인 팀과 본인 고과에 누가 안 생기도록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려던 그 팀장은 결국 징계위원회에 회부가 되었다.

회사가 워낙 '그런 일'에 관해서 처벌을 관대하게 내리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던 터라,

가해자 상사와 2차 가해를 입힌 팀장에게 확실한 인과응보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게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 스스로도 이번 일을 통해 느낀 바가 있었다.

팀장을 싫어하게 된 데에는 앞서 언급한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그가 가진 께름찍한 그 얼굴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사소한 일들에서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일처리를 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할 때마다 내가 마주했던, 그 소름끼치는 얼굴이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게 가령 임원들 앞에서 팀원들이 본인을 추켜세우는 발언을 하게끔 유도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라든가,

집에 들어가기 싫은데 약속없을 때 팀원들에게 저녁약속을 취소하기를 종용하는 행동 등 정말 사소한

행동일지라도 그 행동 하나하나에서 풍겼던 것 같다.

 

이 때부터 나는 관상을 믿기 시작했다.

(즉, 사람을 얼굴로 평가하는 일이 많아졌다.)


고구마 사연 끝난 줄 알았지? 아직 한~참 남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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