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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미니민 Oct 08. 2016

각자의 삶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후기

#1

대학교 동기 언니가 2번째 직장을 싱가폴에서 구했다.

첫 직장 입사 9개월 만이었다.

규모 있는 그룹사에 입사했지만, 업무 외적으로도 부조리한 상사의 지시와 롤모델을 회사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 그녀가 이직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다. (심지어 첫 회사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항상 밝은 에너지를 나눠주던 언니의 모습이 회사를 다니면서 조금 생기를 잃어가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싱가폴에 적도 없고, 외국 생활은 커녕 자취도 한 번도 안 해본 내겐 주변의 나와 비슷한 출발선 상에서 인생을 시작한 또래가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비슷한 한국 기업에 들어갔을 때 비슷한 근무환경에서 또 겪게 될, 비슷한 시련을 피하고자 선택한 용기있는 결단이었다.


같은 대학을 나오고도 각자의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이정표를 걸어가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큰 선택들은 다 각자의 조그마한 경험들이 모여서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내가 겪지 못한 조그마한 경험 중엔, 가정환경도 한 몫 했고 본인이 겪어온 길들도 한 몫 했었다. 그 경험들의 결론은 결국 서로의 중대한 선택에 따라 나뉘게 될 뿐이었다.

위키트리 ''심슨'에 담긴 인생에 관한 명대사 7' 기사 이미지 중

#2

하루는 <태풍이 지나가고> 라는 영화를 봤다. 간만에 직장 동기들과 봤던 영화였는데,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전직 소설가이자 흥신소 직원인 남자 주인공이 전 부인과의 재결합을 꿈꾸며 개차반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였다. 언제 어디서 가스나 전기, 집세를 독촉하는 사람이 올까 걱정은 되지만, 도박에서 손을 끊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아류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전 부인이 본인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있는지 전정긍긍하는 찌질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가 그토록 혐오하던 아버지의 자화상이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에서 나온 명언 발췌

삐까뻔쩍한 스펙을 가진 영화 주인공들이 만연한 현 시대에서, 이토록 찌질한 주인공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의 선택에서 비롯된 시련과 고난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다음 날을 생각하지 않은 채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 본인의 선택에 대해 누구도 탓하지 않고, 그 결과를 온전히 본인의 몫으로 받아들이면서 견뎌내는 모습. 그리고 그런 부분에서 제대로 된 아빠가 아니더라도 아들에게 인정받는 모습.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일본 스러운 영화였지만 갈라선 주인공 부부의 모습에서 '각자의 삶'을 볼 수 있었고, 각자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와 그 책임에 대해 다시 또 생각해봤다.


#3

다시, 내 얘기를 하자면 솔직히 나는 아직까지 뭘 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어릴 때는 검사가 되고 싶었고, 대학교에 진학했을 때는 IMF와 같은 국제금융기구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었고 (이상하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같은 데는 추호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전공 공부를 더 해보니까 마케팅이 하고 싶어 일반 기업의 마케터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째 막상 일을 해 보니 내가 정말 뭘 하고 싶고 뭘 잘 할수 있을 지 모르겠다.


꿈이 바뀌어가면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내 생각을 정리 잘 해서 얘기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보다는 글에 더 재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보다 계산이 (단순히 숫자적인 면에서 말고) 빠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겁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10년 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였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살다보면 본인을 정의하던 성향들이 (예컨데, 외향적(혹은 내향적)인 성격이라든가, 모임에 빠지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성격이라든가 (혹은 사교 모임에 1도 관심이 없던 성격이라든가), 다른 사람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빨리 (혹은 제일 늦게) 알아채는 성격이라든가)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마당발이던 성격이 어느 새 만나는 친구들만 만나는 성격으로 변해 있을 수도 있고, 주말에 집에만 있으면 갑갑해하다가도 주말을 책과 함께 보내는 게 더 편해져버린 성격으로 변해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이나 본인이 속하길 원하는 조직에 따라 성향이 조금씩 바뀌어 나간다.


그렇다면,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때 내 성향이나 성격이 아닌 나를 정의할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정말 내 선택에 따라 변할 내 삶을 책임질 결정은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과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아갈지.

짧게 살아온 인생으로 결정하긴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이 내 앞으로의 인생을 모두 바꿔놓기에는 정말 불합리한 것 같다. 20대 때 결정한 내 인생을 100세시대에 80년 넘게 책임을 져야 한다니.


그러니 수많은 결정의 순간마다 항상 고민하고, 최선, 혹은 차선의 결론을 낼 수 있도록 항상 심혈을 기울여 선택지를 고르는 수 밖에.

선택지가 없다면 본인만의 답을 만들어 나가는 수 밖에.


그런 점에서 누군가에게는 인생이란 쓰디쓴 소주가 달싹하게 느껴질 정도로 쓴맛일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달콤쌉싸름한 초콜렛 맛일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맛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심장 쫄깃한 롤러코스터 같은 느낌일테고 어떤 사람에게는 본인 앞으로 보장된 것들만 제대로 챙겨도 되는 탄탄대로일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삶을 가지고 있다.


오늘의 마무리는 정해진 삶이란 것은 없다는 의미로, 일본에서 건너온 동영상 하나를 공유하고자 한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한 때 디지털을 뜨겁게 달궜던 영상이다. 각자의 삶에 충실할 수 있는 결정을 모두 잘 내릴 수 있기를.

https://youtu.be/-BXjpgP6X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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