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의 프레임에 의해
최근 모 기업에서 25살 난 신입이 겪은, 말도 안 되는 일이 연일 큰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 총수가 해외 출장 중 급하게 귀국하여 비상대책회의를 하였으며,
연신 관련 당사자들이 커뮤니티에 해명 글을 올리며 화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
아직 어떠한 결론도 나지 않은, 진행 중인 사건이라 이 글을 올리기 조심스러운 면이 있으나
지금의 사건보다 훨씬 경미한 류의 직장 내 성범죄의 피해자였던 내가 겪은 사건 해결 과정 프로세스와 비슷한 점이 많기에,
이전에 올렸던 '직장 내 성추행, 당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 시리즈에서(링크는 1편으로 연결) 못 다뤘던 얘기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또 다른 순진한 사회초년생 피해자가 더 이상 가해자들과, 사측의 농단에 놀아나는 일이 없길 바라기 때문이다.
1.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경미하든, 중하든 성폭력을 당한다.
2.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던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경찰 고발이나 사내 창구를 통해 사측에 알린다.
3. 사측은 물심양면으로 피해자의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치유할 것 처럼 말하지만,
결국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 이 사실로 인해 가해자가 징계를 받거나 법적인 책임을 묻게 되면, 가해자는 앞으로 남은 인생에 이 일이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게 된다
- 이 사실을 법적이거나 징계위원회 회부 등 공식적으로 처리하게 되면, 일이 커지게 되어 피해자의 신상 마저 떠돌 수 있다
- 그리고, 이 사실이 떠벌려져 봤자 직장생활에 안 좋은 영향을 받는 건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는 협박 섞인 회유 뿐이다.
4. 그리고 피해자가 성범죄에 대한 피해 사실을 어떻게 알릴까 고민하면서
- 조금이라도 애매한 행동을 했거나,
- 그 이전에 가해자와 이성적인 부분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라도 호감을 표한 사실이 있다면
'서로 좋아서 그러지 않았냐'는 의심을 보낸다.
그게 아니라면,
- 가해자가 단순히 피해자를 좋아하는 마음에 벌인 호의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양
피해자에게 굴레를 씌어 버린다.
5. 피해 사실만 해도 고통스러운 피해자는 지속적으로 가해자 편에서 입장을 대변하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고 가는 이상한 사측의 화법에
공식적인 해결책을 찾아보려던 본인이 잘못된 방향을 선택한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거나,
- 형사고발을 할 경우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천하의 나쁜 년' 이란 각인을 새기게 될 것만 같다.
6. 결국, 마음 약해진 피해자는 관련 사건을 가해자가 가한 범죄보다 낮은 수위의 형사적/인사적 징계로 끝이 나게끔 합의한다.
7. 낮은 수위의 처벌이나 무혐의로 내사 종결되는 사건에 자세한 정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피해자를 무고한 사람을 가해자로 몰고 간 꽃뱀, 혹은 예민한 여자 취급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꼭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이 징계나 형사 처벌로 인해 벌을 받는 이유는
피해자가 단호하게 대응해서가 아니라,
가해자들이 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물건을 훔치거나 사람에게 고의로 상해를 입히는 것 같은, 범법행위를 저지를 범죄자일 뿐이다.
상해나 살인, 절도와 같은 범죄에 대해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용서하는, 자비를 요구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유독 성범죄에는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한 순간의 실수로 벌인 행동에 대해 납득하기 힘든 엄격한 형벌을 요구하는 것 처럼 주변에서 피해자를 몰고 가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의도에서였든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게 자비는 필요 없다.
피해자에게 오히려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 왜 그 상황에서 가해자의 행위를 중지할 만한 단호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 그 행동까지 일어나게 만드는 데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한 건 아닌지
따지기 전에
- 가해자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피해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징벌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더 피해자를 위하고 원만한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