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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Jan 01. 2019

움직이는 토끼모자의 라이프사이클

웃자고 만든 물건에 죽자고 달려드는 이야기

웃자고 만든 물건에 죽자고 달려드는 이야기

길거리를 가다 보면 매대마다 나앉은 아이템이 하나 있습니다. 어디서 연예인이 쓰고 나왔는지, 어느 매스컴을 통해 일파만파 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주인공은 속칭 핵인싸* 아이템 '움직이는 토끼모자'이지요. 따뜻한 솜털 재질에 머리와 귀를 따뜻하게 해주는 털모자입니다. 이 모자의 특이한 점은 모자에 달린 '토끼 귀'가 어떠한 원리에 의해 자동으로 움직인다는 것인데요. 모자의 아래로 늘어뜨려진 부분 안쪽에는 펌프가 숨겨져 있고, 이를 손으로 꾹 누르면 펌프와 연결되어 있는 귀 부분이 공기로 부풀어 오르며 움직이게 되는 원리로 작동합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나 좀 귀엽다'싶은 사람은 하나씩 가지고 있더군요. 지금부터 웃자고 만든 물건에 죽자고 달려드는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합니다(인생 심각하게 살아서 죄송합니다). 제2의 움직이는 토끼모자가 나오기 전에 우리가 한 번쯤 고민해보았으면 하는 것들을 정리합니다.

핵인싸 될 꼬얌 뿌잉뿌잉

패스트패션*, 유행템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패스트패션*: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하여 빠르게 제작하고 빠르게 유통시키는 의류를 가리키는 말

유행 : 한 사회의 어느 시점에서 특정 생각, 표현 방식, 제품 등이 그 사회에 침투 · 확산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 상태


패스트패션과 유행템을 항상 같은 선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없습니다. 때론 패스트패션이 아닌 '명품'이나 '오래도록 쓸 수 있는 질 좋은 물건'도 유행템이 되곤 하니까요. 하지만 '트렌드를 재빨리 파악하여 이를 반영한 제품을 제작하고 빠르게 매장에 내놓는 것'이라는 패스트패션의 특징을 빌려오자면 유행템인 '움직이는 토끼모자'를 '패스트패션'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겁니다. 단지, '다품종 소량생산을 기본으로 하고, 옷을 1~2주 단위로 소량으로 재빠르게 만들고 회전시켜 재고 부담을 줄이고 대신 소비자는 값싼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함'이라는 패스트패션의 또 다른 특징에서 봤을 때, 움직이는 토끼모자는 패스트패션임에도 소량생산이 아닌 '대량생산'이라는 특징까지 탑재한 물건이 되는 셈이지요. 더군다나 이런 패스트패션이자 '유행템'은 철이 지나가면, 마치 마법이 풀린 것처럼 다시 걸쳐 입기가 참으로 모호해집니다.


신데렐라 호박마차가 호박이 됐삣네 (유행템은 유행이 지나면 호박 취급 당합니다)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패스트 패션의 막대한 환경 책임, 역시 피할 길이 없다. 패스트 패션이 일으킨 의류 소비 증가는 쓰레기 증가로 귀결되고, 태어난 지 1년이 되지 않은 신생 의류 약 5분의 3이 소각장이나 매립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강력한 환경정책을 펼치고 있는 독일은 중고의류 4분의 3을 수집해 그 가운데 절반은 재사용하고 4분의 1을 재활용하고 있다. 또한 의류 산업은 많은 에너지와 물을 소비한다. 패션 생태계를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세계 6번째 온실가스 배출국이 된다. 패션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배출량 3퍼센트에 달하고, 이는 1년 동안 3억 7200만 대 자동차가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다. 현재 추세라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이 60% 늘어날 전망이다. (중략) 세계은행에 따르면 수질오염 20퍼센트가 직물 염색과 가공 과정에서 발생한다. 최근 합성섬유의 증가로 배출되는 미세섬유 조각, '마이크로파이버 플라스틱'의 해양오염도 심각하다. 합성섬유로 만든 옷 하나를 세척할 때마다 1,900개가 넘는 미세섬유가 발생한다. - 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8년 10월호 <누가 내 옷을 만들었나/이미영> 중


미니멀리스트의 질문 리스트

한 때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면서 필요 없는 물건을 몽땅 처분하는 것이 칭송되던 때가 있었지요. 그 유행은 아직까지 유효합니다. '봄맞이 대청소'라는 이름으로 한 해 동안 묵혀놨던 물건을 싹 정리하고, 물건이 비워진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비워진 공간은 이내 새롭게 사들인 것으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봄맞이 대청소를 반복하지요.

'미니멀리즘'은 단지 물건을 정리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새롭게 들일 물건'에 관한 독해력을 기르는 것까지 포함하지요. '정말 필요한 것일까?',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 것일까?',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것일까?', '두고두고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것일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새로운 물건을 구매할 때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 목록들이 있을 겁니다(참고로 저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닙니다만). 하지만 미니멀리스트의 질문 목록에 한 가지 더 추가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한 물건의 라이프사이클(생애주기)'를 추정해보는 것이 있지요.


프로덕트 라이프사이클 매니지먼트


움직이는 토끼모자! 요람에서 무덤까지

제품의 생애주기는 제품의 원자재 생산 과정부터 엔지니어링, 설계, 제조, 사용, 서비스, 폐기에 이르기까지 한 물건이 생산되고, 사용되고, 폐기되는 전 과정을 의미합니다. 물건을 구매할 때, 해당 제품이 내 손안에 들어왔을 때의 '시기'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매했을 때 자동차 생산 과정에서 들어가는 원자재의 채굴에서부터 유통 그리고 자동차를 사용할 때 (휘발유를 사용한다면) 배출되는 탄소나 다른 온실 가스 배출 그리고 폐차될 때 드는 에너지 등 물건의 탄생과 동시에,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물건의 전 생관점에서 가늠해보는 과정이지요. 그럼 자동차가 아닌, 패스트패션이자 유행템인 '움직이는 토끼모자'로 돌아와 볼게요. '움직이는 토끼모자'의 재질은 100% 폴리에스테르. 합성섬유로 만들어집니다. 합성섬유는 지금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원단의 60%를 차지하고 있지요.  비용면에서 효율적이고, 면의 소재가 되는 목화를 생산할 때보다 물 낭비도 적습니다. 하지만 폴리에스터 섬유는 제조 과정에서 면보다 화석연료(해마다 원유 100억 리터 사용)를 훨씬 많이 쓰기 때문에, 면화의 거의 3배가 되는 탄소를 배출시키지요. 더불에 해마다 의류폐기물의 50%가 모두 폴리에스테르로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매립에서 자연분해까지는 500년이 걸립니다. 사용할 때는 어떻고요. 세탁을 한번 할 때마다 70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하수구로 내려가 바다까지 흘러가게 되지요. 미세플라스틱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 바다 내에 부유하는 오염물질과 합쳐져 독성을 띄는 물질로 변합니다. 물고기는 이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이 물고기는 다시 식탁에 올라 사람의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이제 누구라도 아는 말이 되었지요. 텍스트가 길다면 아래 링크한 영상을 참고하시면 더 좋습니다.

패스트패션 그리고 유행템은 '환경적인 영향'만 남기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원단을 재가공하는 공장들은 인도, 중국, 방글라데시에 위치해 있는데요. 이 곳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저임금, 아동노동, 독소가 가득한 환경 등에서 하청에 하청에 하청이라는 열악한 조건에 몰려 제대로 된 노동자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우리가 입는 옷이나 아이템들을 만들어 냅니다. 옷 한벌이 팔렸을 때 돌아가는 이윤은 생산 공장 0.2% 그리고 노동자 임금은 1%대라고 하니, 우리가 구매하는 물품이 노동자에게 얼만큼의 수익으로 돌아가는지 곱씹어 볼 만합니다. 중국의 공장 가동에 대한 간략한 글은 제 브런치 '무형의 것을 선물하기'에 '산타의 진짜 작업장은 중국의 노동력 착취 공장이다(Santa's real workshop is a sweatshop in China)'라는 기사를 빌려와 간략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참고하실 분은 링크를 클릭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폴리에스테르와 미세플라스틱 이야기, 그린피스


웃자고 만든 물건에 찬 물 끼얹어서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갖고 있는 '움직이는 토끼모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고요? 이미 구매한 제품은 되도록 그 생을 다할 때까지 오래오래 쓰는 것이 답입니다.  되도록 세탁은 덜 하는 것이 좋겠지만. 이번 겨울에 산 '움직이는 토끼모자'를 다음 겨울에도 사용해주세요. 다음 겨울에 쓰고 나타가 귀를 쫑긋해 보여도 유행에 뒤떨어졌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머리만 따뜻하면 되지요 뭘. 유행에 뒤떨어졌다고 흉보는 사람보다 오히려 한 물건 오래오래 쓰는 당신을 칭찬하는 사람이 다음 겨울엔 더 늘어나기를. 그리고 구매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문장을 기억하고, 다음번에 동일한 매커니즘으로 만들어지는 물건이 있다면 한번만 더 구매를 망설여 주세요.


티셔츠의 생애, Angel Chang (한글 자막: https://youtu.be/BiSYoeqb_VY)


패션에 대해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중고 매장을 자주 활용할 것

재생이나 유기농 원단으로 만든 의류를 구매할 것

세탁을 되도록 적게 하고, 햇볕이나 바람에 소독 및 건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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