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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Dec 02. 2018

무형의 것을 선물하기

물건 없이 축하하기

얼마 전, 형부의 생일이었습니다.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이 들더군요. 언니네와 멀리 떨어져 사는지라 직접 가서 건네는 것은 어렵고 가장 빠른 카카오 선물하기 서비스로 쿠폰 같은 것을 보내려고 했지요. 물리적인 것보다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거나 먹어치워 없앨 수 있는 것을 선물로 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케이크는 저 아니라도 누군가가 준비할 것 같고, 카페 쿠폰을 보내자니 성의가 없어 보이고, 영화 예매표를 전달하자니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연극표를 산 다한들 그 사람의 취향도 모르고, 내가 산 표에 시간 맞춰 극장에나 갈 수 있을까도 싶었지요. 그러다 보니, 약간의 귀차니즘도 발동하고, 가장 쉬운 선택으로 재빠르게 고르고 보낼 수 있는 물리적인 선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선물'은 고로 손에 물리적인 무언가를 쥐어주는 것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정성'으로 느껴질 것 같은 고정관념도 떨칠 수 없었지요. 사실 '물건'을 선물하는 법에만 익숙해져, '무형의 것'을 선물하고 싶을 때, 무엇을 골라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내가 선물해야 할 대상에 대한 이해도도 많이 떨어질 뿐 아니라, 무형 선물 고르기 위해서 어떤 곳에서 정보를 취해야 할지 조차 까마득했지요. 결국엔 추워지는 날씨 핑계 삼아 가죽 장갑이라는 아주 뻔한 결말을 내렸습니다. 따뜻하게 잘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지요. 무형의 것을 선물한다는 것에 이다지도 무지한 저를 마주했으니 말입니다.


본격 시즌 입성, 창고 대방출

연말, 블랙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 등 구매와 선물의 특수 시즌입니다. '블랙 프라이데이 50% 할인'과 같은 문구는 이제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마케팅 용어가 되었지요. 원래는 미국의 '추수감사절 기념 연말 할인제(재고 소진용)'로 떨이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흐름입니다. 소매상이 1년 중 유일하게 흑자를 보는 시기이자, 장부에 난 흑자 매출을 검은색 펜으로 적는다 하여 (적자가 나면 빨간색 펜으로 작성), 블랙프라이데이라고 일컫어진다고 하지요. (그 외에 '블랙 프라이데이'에 대한 유래는 많지만 여기선 생략하겠습니다). 11월 이제 블랙프라이데이는 잠잠해지는 듯하고, 본격 12월이 시작되는 시즌. 거리에는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물 판매로 한참입니다. 매대는 한 해 쓰고 버려질 값싼 재료로 만든 산타 양말, 전구, 루돌프 머리띠, 트리에 달 별 등이 가득 찼습니다. 쇼핑몰에는 크리스마스를 위한 각양각색의 시즌성 물건들이 '남자 친구가 좋아하는 패션',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선물', '우리 아이가 좋아할 장난감' 등이라는 이름을 달고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가장 관습화 되고 뿌리 깊은 문화를 말하는 전통 역시 이제 소비주의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평균 2만 2,000달러가 소요되는 결혼식에서부터 비탄에 빠진 사람들이 정교한 관, 묘석, 그리고 여타의 값비싼 상징적 물품들을 구매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장례식 규범에 이르기까지 소비주의는 사람들이 의식을 치르는 데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규범 때문이든 가족의 압력 또는 광고의 영향이든 의례의 간소화는 어려운 일이다. 크리스마스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기독교인들에게 이 날은 예술의 탄생일로 기록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 축인 산타클로스, 선물, 축제에 보다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18개국에서 수행된 크리스마스 날 지출에 관한 2008년 조사에 의하면, 선물에 수백 달러를 지출하고, 사교모임에 참석하는 것과 음식에는 더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 규모가 가장 큰 3국인 아일랜드, 영국, 미국 사람들은 각각 평균 942달러, 721달러, 581달러를 선물에 지출했다. 갈수록 비기독교인들조차 선물을 교환하는 시간으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 일본에서 크리스마스는 큰 휴일이지만, 인구의 2퍼센트만이 기독교인이다.  - 소비의 대전환 중 - 월드워치연구소 엮음


얼마 전에 읽은 한 블로거의 글에는'크리스마스 축하'를 위해 만들어지는 현란한 장식물에 대한 충격적인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었지요. 자세한 내용은 링크드리는 글을 참고 부탁드리며(영어입니다 ㅠ), 간단하게 기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타의 진짜 작업장은 중국의 노동력 착취 공장이다(Santa's real workshop is a sweatshop in China)'


출처: Santa's real workshop is a sweatshop in China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는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원문에는 Toys로 표현)에 매해 1천억 달러(112조 2,000억 원)를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물건의 80%는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이중 대부분은 주로 홍콩 외곽의 Shenzhen이라는 지역에서 나온다. (중략) 노동자들은 열기와 유독가스 속에서 말 그대로 24시간 내내 일을 하며 14시간에서 20시간 연속으로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작업을 매일같이 수행한다. 운이 좋게 공장 기숙사 도미토리(한 방에서 12~20여 명이 거주하는)에서 휴식할 수 있다면, 일주일 간 '7일'이라는 혹독한 노동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 몇 시간의 단잠을 자는 것뿐이다. - 산타의 진짜 작업장은 중국의 노동력 착취 공장이다 중


블랙 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와 같은 소비를 과도하게 일으키는 시기를 대항하는 의미로 'Buy nothing day(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라는 운동이 있기는 합니다. Ted Dave라는 예술가가 밴쿠버에서부터 처음 시작한 운동이라고 하지요. 1992년 9월에 처음 캐나다에서 시작되었고, 서구권에서는 꽤나 주목을 받고 있는 듯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보다는 '블랙프라이데이'가 익숙한 건 사실이지요.



그래도 기분은 내야 하니까...

위, '소비주의의 대전환'이라는 책의 구절에서 따온 것과 같이 '소비주의'는 우리의 가장 전통적인 문화까지 뿌리를 깊게 내렸습니다. '결혼식', '장례식', '돌', '생일' 등 경조사를 치를 때마다 의례적으로 '그러하기 때문에' 치러야 할 비용들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당연하듯 지출을 합니다. 어디 사회나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적 관점으로 표현하자면, 이러한 일들에 비용을 성대하게 치르거나 또는 적어도 남들 하는 만큼을 했을 때 '인간적 도리를 다 했다고 느끼거나, 빈정이 상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지요. 아주 어릴 때부터, 대부분 우리는 가족 그리고 친구들에게 생일날 각종 선물을 받고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가 누린 경험들이 비용적으로 비싼 것들이 아니더라도, 평소에는 가질 수 없던 것을 이 날만은 허락받는 등의 일련의 경험을 통해 소비주의를 학습하게 된 거지요(요새는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도 심심찮게 소비를 하지만요). 그래서 특별한 날, 소비하지 않으면 되려 이를 어색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기분이 다운되기도 하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특정 이벤트를 축복하는 일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새로운 물건을 구매하여 교환하고 소비하는 방식으로 특별한 날을 기리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요. 새로운 물건을 들이는 것보다, 새로운 '경험'을 함께 공유하거나 또는 물건을 들이더라도 '쓰레기 또는 낭비 없이' 꼭 필요한 알맹이만 가지는 것. 우리가 삶을 축하하고 위로하는 방식에 새로운 연습이 필요한 차례입니다.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어떠한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문화'라고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과거 만들어졌던 '소비주의 문화'에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새로운 '인공적인 노력과 운동'이 필요합니다. 소비하지 않더라도 마음이 풍성해질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해내야 합니다. 사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형형색색 플라스틱 없이 내 아이의 생일 파티 열기', '쓰레기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법' 등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팁들이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소한 팁들을 조각 단위로 실천하기 전에 우리 안의 온건한 뼈대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윤리적 선물하기의 단계 ㅣ 출처: 페이스북 Just Little Changes


윤리적 선물하기의 단계

Give memories (기억 선물하기): 예) 이벤트 티켓, 멤버십 등

Give your time (함께 보내기): 예) 재능 나누기

Upcycle (업사이클): 예) 작은 가구 손질하기, 오래된 장난감 다른 용도로 고치기

Buy second hand (중고품 구매): 예) 이베이에서 구매, 앤틱 샵 돌아다니기

Make (새롭게 만들기): 예) 공예, 베이킹

Ethical buy (윤리적 소비): 예) 친환경/윤리적 제품 (페어트레이드, 동물테스트 금지 제품 등)

Buy (새 것 구매): 에라 모르겠다


선물할 때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할까를 단순한 도표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거나, 윤리적 또는 환경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정성을 표현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눈여겨볼 만합니다. 재밌는 점은 윤리적 선물이라고 했을 때 자칫 'Make' 단계의 일들 (공예, 베이킹)을 떠올리거나, 행하기 쉬운데, 이가 비교적 낮은 단계에 속하고 있다는 거지요. 행여, Make나 DIY를 지나치게 맹신한 나머지

하나 구매해서 쓰는 것보다 (딸려오는 재료들 때문에) 더 많은 소비(자원 낭비)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물건을 만들어 쓰는 방식은 자급적 삶의 실천일 때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 자기만족을 위해 무절제하게 2차적 소비를 불러온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될 것입니다.


그럼 위의 도표를 기준으로 이번 연말을 특별하게 보내거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작은 팁(대부분 Make에 속하는 것이긴 합니다만...)들을 링크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모두들 따끈한 연말되시기를.


101 Zero Waste Gift Id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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