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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Jan 08. 2020

이 폐허를 응시하라

호주 산불, 재난 속에서 바라봐야 할 것(호주산불 관련 모금 링크 포함)

며칠 전, 외숙모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몇 개월 전부터, 호주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 중이었는데 지금 산불이 심각한 것 같다. 혹시 피해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친구가 있다면 한번 물어봐줄래?"


예전, 호주에서 근 2년 반 동안 살았던 터라 주변에 지인이 있을 거라 생각한 외숙모가 제게 먼저 전화를 했던 거죠. 호주 산불 소식은 몇 개월 전부터 간간이 들려왔지만, 여행을 앞두고 있는 이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전화가 오니, 산불이 현재에도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걸 문득 실감하게 되었지요.


바로, 시드니에서 차로 네 시간가량 떨어진 '오렌지'라는 곳에 살고 있는 아는 언니에게 연락했습니다. 이렇게 답변이 오더군요.


"응, 좀 심각해서 분위기상 시드니 뉴 이어 불꽃놀이도 안 해야 된다 막 이랬어! 관광하는 것까진 상관없을 텐데 지역에 따라 아직도 주의가 필요하고 시티도 대기가 뿌옇고 그렇다. 가뭄에 강풍까지 겹쳐서 더 심해졌데, 한 곳이 아니라 호주 곳곳에서 나서 인력도 부족하고, 원인은 내가 모르는데 지구 온난화 때문에 기후변화로 비가 안 와서 영향을 줬다고 하는 것도 있어. 원래 울 동네도 다른 곳에 비해 추워서 여름에 나시 입을 일이 별로 없었거든, 근데 이번 여름엔 아들도 벗겨 놓고 있다. 넘 더워서. 우리 지역은 가뭄이라 시에서 물 아껴 쓰라고 그러고 가든에 물 주는 것도 자제하고 있어"  


일단 외숙모에게는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아쉽더라도 비행기 표를 취소하라고 답신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호주 산불 상황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보니 시작했지요.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호주의 현재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후 위기로 가뭄과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호주 전역 약 60군데에서 발생한 산불은 서울 면적의 80배(며칠 전 읽은 기사 기준. 현재 시간으로 피해는 더 확산된 것으로 보임)를 연소시켰다. 강력한 화재를 진압하기에는 아직도 인력, 장비 등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며, 호주는 국가비상상태를 선포했고, 산불 소방당국은 주민들에게 불 길이 가까이 오면 바다로 뛰어들라는 대피명령을 내렸다." 


이 그림 그리신 분 출처를 모르겠습니다 ㅠ


호주는 자연환경 상, 3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고온건조 기온 때문에 숲이 굉장히 메마른 상태입니다. 그래서 건조한 땅에 번개가 내리치거나 할 때 산불이 발화하게 된다고 하는데요. 기온의 특성상, 산불이 일어나기 좋은 환경이긴 하지만, 이번 사태는 기후변화로 인해 그 피해가 더 심각해졌습니다.


환경연합 기사 발췌

호주 삼림에 크고 작은 산불은 계속 발생해왔지만, 이번 산불은 일상적인 규모가 아닙니다. 2018년 산불 시즌에 26만 헥타르가 불에 탔지만 2019년은 100헥타르를 넘어섰고 호주는 지금도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산불이 시작되려면 탈 수 있는 연료(삼림), 낮은 습도 그리고 산소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높은 온도와 바람이 더해지면 타오르기에 더 좋은 조건이 됩니다.

광범위한 가뭄과 매우 낮은 습도, 많은 지역에서 나타난 평균 온도보다 높은 기온, 그리고 ‘남반구 극진동(Southern Annular Mode)’에 의해 유발되는 강한 서풍은 모두 인간에 의해 야기된 기후변화로 이전보다 더 심각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호주 동부 해안의 넓은 지역에서 충돌해 매우 특이한 산불 발생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 이번 대형 산불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호주에서는 2016년까지 5년 동안 산불 빈도가 40%나 증가했습니다. 과학자들과 기상학자들은 수년 동안 기후변화가 악화됨에 따라 더 큰 규모의 산불이 더 자주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해 왔습니다.




예전, 호주에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자 그곳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사람들과 광활한 자연이 생각났습니다. 도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던 희한한 동물들. 그리고 소중했던 기억들이 호주 산불 소식과 겹치며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더군요. 불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의 모습, 그리고 산불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소리를 지르던 코알라의 영상까지...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줬던 곳이 불 길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미어질 듯 아팠습니다.


불 길 속에서 코알라는 구조하는 여성(영상) 영상에 나오는 코알라는 코알라 병원으로 이송되어 회복되고 있다고 합니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다 보면, 가끔 SNS에 정보를 공유하고, 기후변화로 인해 일어난 대재앙이 주는 메시지 그리고 그에 대한 각성 의식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 자신의 감정적 도리를 다했다고 착각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런 트랩 속에 갇혀 있을 때가 많은데, 호주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그 이상의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포스팅을 올렸는데, 호주에 살고 있던 페친 분이 이 곳으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라고 친절히 링크(하단 참조)를 걸어주셨지요. 호주 화재에 관해 기부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한국어로 친절히 정리한 페이지이고, 자신이 마음 가는 곳에 접속하여 기부를 하면 됩니다.


혹시 저와 같은 마음이시라면, 기부하실 수 있도록 링크를 공유드려요. 소액이라도 좋으니, 작은 마음 보내주시면 현재 위기에 처한 분들에게 소중히 사용될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마실 커피, 저녁 값이라도 보내주시면 어떨까 조심스레 제안드려봅니다.



호주 산불 진압 및 피해 복구를 위한 펀드레이징 리스트 좌표(한국어)


화염을 뚫고 가는 소방관들의 모습(영상)




이 폐허를 응시하라

공교롭게도 며칠 전 도서관에서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라는 책을 빌렸습니다. 책의 부제는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 사회적 탐사".


이 책은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부터 2005년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라니까지 99년 동안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다섯 건의 대형 재난을 심도 있게 연구 조사한 르포입니다. 대재난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보인 행복이 의미하는 강렬한 '기쁨'과 '사랑', '연대의식'을 상기시키며, 재난이 일어나기 전 사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역설하는 책이지요.


호주에서 일어난 이 재난과 또 피해를 겪은 재난 공동체 속에서도 '레베카 솔닛'이 말하는 재난 속에 피어나는 연대의식이 일어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재난 공동체 속에 속하지 않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또한 이 재난과 폐허를 응시하며, 인간의 활동으로 생긴 기후재난에 어떤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지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의 일부를 발췌하며 마무리합니다. 며칠 전 들린, 호주의 비 소식이 조금 더 이어지기를 바라며.



재난은 직접 겪는 당사자와 멀리서 이해하려는 관찰자 모두에게 마음을 모순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모든 재난에는 고통이 있고, 아비규환의 순간이 지났을 때 받는 정신적 충격이 있으며, 죽음과 상실이 있다. 그러나 한편에는 깊은 만족감과 새로운 사회적 유대, 자유도 존재한다.


재난에 대한 일반적 설명과 실제 경험 사이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주로 재난의 중심지에서 재난으로 다치거나 가족을 잃거나 그 밖의 큰 피해를 입은 소수의 사람들과 관련 공무원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들 주변에는 큰 피해는 입지 않았어도 혼란에 빠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난의 파괴적 힘, 말하자면 기존 질서를 뒤집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능력이다. 재난은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영향을 미친다. 재난이 발생한 순간, 구질서가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즉흥적으로 구조 활동을 벌이고 대피소와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러면서 결점 많고 부당한 기존 질서의 부활이냐, 아니면 새로운 질서의 등장이냐를 두고 투쟁이 일어난다. 이때 새로운 질서는 어쩌면 더 억압적일 수도 있고, 재난 유토피아처럼 더 정의롭고 자유로울 수 있다.


(중략) 그리고 '미스바'라는 상호 위에 장식이 가미된 글자체로 "자연이 한번 손을 대면 전 세계가 친구가 된다"라는 문구를 쓰고 그 아래에는 "1960년 4월 23일에 세움"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글쓴이 덧) 미스바 카페는 애나 아멜리아 홀스 하우저라는 미용사 겸 마사지가 시작한 재난 속 공동체로(간이 급식소), 1906년 샌프란시스코를 강타한 지진 속에서 200-300명이 먹고 쉴 수 있는 일시적인 급식소 겸 보금자리였다.


한 백과사전에 따르면, '미스바'는 히브리어로 "(물리적으로나 죽음에 의해) 분리된 사람들 사이의 정서적 유대"를 뜻한다. 또 다른 백과사전에서는 '구약'에 나오는 단어로, "국가적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사람들이 만나곤 했던" 망루라고 되어 있다. 또 다른 자료는 미스바가 "안식처, 희망에 찬 기대의 장소를 상징한다"라고 말한다. 홀스 하우저가 임시로 만든 급식소의 초라한 물질적 실재는 그것이 해낸 빛나는 사회적 역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홀스 하우저의 급식소가 당시 자발적으로 시작된 많은 공동체 회관과 구호사업 가운데 하나였던 것처럼, 그녀가 보여준 융통성과 다채로운 능력은 많은 재난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다. 재앙이 닥쳤을 때, 낯선 사람들은 친구가 되고 협력자가 되며, 물건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즉석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아서 해낸다.


(중략) 오늘날 유토피아는 위기에 처했다. 많은 이들이 더 나은 세상의 가능성보다 더 나은 생활의 가능성을 믿으며, 적어도 영어권 세계에서는 '개인적 안녕'이라는 표현이 '공공의 선'보다 우세하다. 부의 축적과 보안 출입문, 스톡옵션은 불안과 증오의 세상을 가리는 보호막에 불과하며, 뿌리 깊은 문제에 대한 단편적 해결책일 뿐이다.때론 더 나은 사회라는 이상적 개념보다 주택 개조가 더 우선시 되는 것처럼 보인다.


(중략) 대안은 있다. 그것은 가장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가장 부지런히 가꾸는 곳에서 나타난다. 전기 공급이 끊어지면 기계가 초기 설정으로 돌아가듯, 이 놀라운 사회(재난 공동체)에서는 사람들이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이고, 융통성 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천국의 가능성은 이미 초기 설정값으로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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