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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May 10. 2020

초4가 지식인에 올린 방학숙제 질문

계획적 진부화의 함정: 왜 물건은 진화하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퇴화할까?

지금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한 배터리 탈부착 핸드폰?


얼마 전, SNS를 뜨겁게 달군 초등학교 4학년의 방학숙제 질문.

배터리 탈부착식 핸드폰을 미래의 기술이라 생각하는 귀여운 초등학생의 질문에서 느껴지는

격세지감 덕분에 이 글은 순식 간에 성지글이 되었지요. (귀욤뽀쟈악!!!)




이 지식인을 남긴 초4 아이가 호소하는 '보조 배터리'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 외에도

일체형 휴대폰의 단점은 아시다시피 꽤나 많지요.   


혹여나 침수가 됐을 때, 분리형은 바로 스마트폰에서 배터리를 분리하고 며칠간 말리면

어느 정도 다시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반면,  (이 짓 많이 해봄요)

일체형의 경우, 이 같은 대처가 어렵지요.

(일체형이 아무리, 방수/방진 기능이 좋아졌다지만 일단 물에 들어가면... 껨 끝!)


게다가 배터리 성능이 갈수록 떨어진다면,

AS센터에서 몇만 원을 주고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있지요.

그 덕분에 배터리 기능이 떨어지면, 그런 수고로움을 감수하기보다는 이참에 새로운 스마트폰으로 교체하는 이들도 상당수입니다.


왜 핸드폰은 일체형이 되었을까?


제조사에서는 4가지 이유를 들지요.

'얇은 디자인 구현, 원가 절감, 스마트폰 교체 시기 단축, 전자적 결함에 따른 사고방지'


만듦새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워낙 얇은 디자인의 핸드폰을 선호하는 데다,

제조자 입장에서는 출고 시, 여분의 배터리를 넣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원가 절감까지 됩니다.

그리고 교체형 배터리의 잘못된 장착 등으로 인해

스마트폰이 폭파할 수 있는 위험(전자적 결함)을 줄일 수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이유는 '스마트폰 교체 시기 단축'이 아닐까요?

더군다나 배터리 일체형 핸드폰은 부품이 더 작아지기 때문에 수명도 동시에 짧아질 수밖에 없다고 하지요.

그래야, 스마트폰을 생산/판매하는 기업은 높은 회전율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테니까요.


EU(유럽연합)에서는 이런 원인 때문에 배터리 탈착형 스마트폰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유럽에서 보급되는 아이폰은 배터리 탈착형으로 생산, 판매돼야 할지도 모르지요.



계획적 진부화: 그거 다 의도된 거야


한참, 탈성장사회에 대한 공부를 하던 중,

이런 의도적인 제품의 퇴화에 대한 경영학 용어를 알게 되었지요.

바로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다른 말로는 <쓰레기장으로 가기 위한 디자인>.


도서관의 탈성장주의 섹터를 맴돌던 중 뽑아 든

한 프랑스 탈성장주의 경제학자가 정리한 책(내용은 글 하단에 일부 정리 두었습니다)을 통해 이 개념을 접했습니다.


<계획적 진부화>는 옛 기술 또는 제품의 품질에 하자가 없음에도 의도적으로 제품의 기능 또는 수명을 단축시키거나, 단순히 부품만 교체하면 될 것을 제품 전체를 뜯어내게 만들어 수리비가 더 들게 하는 기업의 행위를 뜻하는 용어지요.


이 단어는 미국에서 1920~30년대,

사람들이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이나 심리적 상태가,

실제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건의 양보다 상대적으로 적다고 정부와 기업이 깨달으면서 새롭게 생겨났습니다.

팔리지 않으면 소비사회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때부터 의도적인 <제품 교체 시기의 단축>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소비사회의 함정, 그 메커니즘 안에 <계획적 진부화>가 있다


"그거 고치는 거보다 새로 하나 사는 게 더 싸요"

"그 부품은 더 이상 구할 수 없어요. 하나 사시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요즘 나오는 물건보다, 옛날 물건이 더 튼튼한 거 같아"


이런 말을 한 번씩 듣거나, 해본 적 없으신가요?

바로 이런 언어가 우리가 물건을 <계획적으로 진부화시키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제품은 진부화되고, <계획적 진부화>라는 경영 기술을 점차 진화해 온 셈이지요.


<계획적 진부화>에는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제품의 품질이나 기능을 의도적으로 퇴화시킨 것이 바로 <계획적 진부화>


기업이 수요를 증대할 목적으로 제품의 수명을 일부러 단축시키거나,

별 것 아닌 기능만 추가한 신제품을 출시하여,

사용하기에 하자가 없는 기존 제품의 기술을 구식으로 치부하는 <기술적 진부화>,


또는 광고나 유행을 선도해서 기존 물건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유행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심리적 진부화>도 있지요.

흔히 말해,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 이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프랑스의 탈성장주의를 주장하는 경제학자이자, 철학가인 '세르주 라투슈'는

<낭비 사회를 넘어서 - 계획적 진부화라는 광기에 관한 보고서>라는 얇은 책에 기업의 이러한 의도적 경영방식을 고발하며,

자원을 추출하고,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고 비로소 버리는 소비의 메커니즘에 <계획적 진부화>가 어떻게 슬그머니 거대한 축이 되어 자리 잡았는지 서술해 나갑니다.


책이 던지는 질문들은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것들일 텐데요.

이러한 질문이 사실은 기업에서 계획하고 의도한 것이라는 것이 자명하게 밝혀지는 순간,

우리는 소비사회의 함정을 나란히 직시하게 됩니다.


올이 풀리지 않는 나일론 스타킹, 2500시간 사용 가능한 전구는 왜 사라졌을까?
새 컴퓨터 모델은 왜 호환이 잘되지 않을까? 아이팟 배터리 수명은 왜 18개월일까?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 유지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
- 책 <낭비 사회를 넘어서>가 던지는 질문


예를 들어 프린터에는 인쇄 매수가 1만 8000장이 넘으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게 하는 마이크로 칩이 삽입되어 있다. 1940년 듀폰사에서 출시된 스타킹은 올이 풀리지 않고 자동차 한 대를 끌 수 있을 만큼 튼튼했지만, 자외선 차단 첨가물의 양을 조절한 이후부터 여성들은 규칙적으로 새 스타킹을 구입하게 되었다. 1881년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전구 수명은 1500시간이었고, 1920년대 생산된 전구의 평균 수명은 무려 2500시간이었지만, 현재 우리가 구입하는 것은 제너럴 일렉트릭 등 기업 간 담합으로 1000시간 이하로 정해졌다. 수리가 불가능한 아이팟의 배터리가 제조 단계에서부터 이미 수명이 18개월로 제한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 책 <낭비 사회를 넘어서> 일부


갤럭시4를 사용하고, 배터리도 여러 개 가지고 있다고 밝힌 최창민(영웅ㅋㅋ). 다음에 핸드폰 사도 중고로 갤럭시4 쓰고, 가지고 있는 배터리 계속 사용할 거라는 전에 없는 캐릭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글의 말미는 입 아프도록 똑같은 솔루션으로 마무리하는 것 같아 민망합니다.

하지만, 실제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전 손가락/입술이 아프도록 계속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고 반복할 겁니다 ㅎㅎ


<계획적 진부화>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식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며 글을 마칩니다.


1. 내가 필요한 물건과 원하는 물건이 항상 같은 것이 아님을 주지한다


2. 고장 난 것은 되도록 고쳐 쓰거나, 중고 마켓을 활용한다.


3. 고장 난 물건을 가지고 있는데 고칠 여력이 없을 때에는, 물건이 고장 났다는 것을 밝히며 고쳐서 사용하거나 부품으로 사용할 사람을 찾는다(중고거래 마켓에 올리면, 손 기술이 있으신 분들이나 기술자분들이 오셔서 물건을 무료로 가져간다)


3. 새 제품을 구매할 때에는 A/S가 잘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거나, 수리/수선이 용이하게 디자인된 제품을 구매하도록 한다. 더불어, 기업 등에 메시지를 보내 '물건의 판매'만큼 '수리와 수선'에 대한 기업적 책임을 가지도록 역할을 촉구한다.


4. 소비자적 자아보다 공동체를 사는 시민으로서의 자아를 중시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공부하고 연대한다


5. 한 물건이 만들어지기까지 자원 추출 > 제조 > 유동 > 소비 > 폐기까지의 단계인 라이프사이클을 이해하고, 공부한다! (어쩌면 이게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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