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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Mar 04. 2019

성장으로부터의 해방

성장은 긍정적인 단어일까?

이 글의 출발은 '성장은 긍정적인 단어일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했습니다. 무려 한 달도 넘게 초고를 적어놓고 도저히 글을 끝낼 엄두가 나지 않아 한참을 망설였지요. 끊임없는 성장주의를 습관처럼 맹신하는 우리가 다시 '성장'이란 단어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선 이 현상을 돌파해나갈 방도가 없더군요. 문득 '굿 워크'라는 책에서 슈마허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굿 워크(Good Work) / E. F. 슈마허 지음 / 느린 걸음 (이미지 출처 다음 책)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 맞는데 기술은 이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술이 문제라고 보는 건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시스템이나 철학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구증가를 막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란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을 의미합니다. '우리'라는 말은 많은 경우 토론에서 큰 혼란을 야기합니다. 사람들은 거대 기업인 GM을 소규모로 분산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한번 쳐다봅니다. 저로서는 길모퉁이에 있는 약국 하나도 분산시킬 수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이 달라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자신의 성격 하나 바꾸지 못합니다. 제가 '우리'라는 말을 쓴 것은 지금 여기 와 있는 비록 약자들이지만 실제로 살아있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보고 대안의 가능성을 눈으로 볼 수 있게 제시해주면, 미래에 자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속에서 찾아낼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112)  - <굿 워크 中> 슈마허


물론 슈마허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길모퉁이에 있는 약국 하나 분산시킬 힘이 없습니다. 개인으로써의 우리는 현재 봉착한 환경문제에 대해 '보다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고, 당장 실천 가능한 문제의 '실마리'를 찾는데 노력을 기울여야겠지요. 하지만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의 방식과 규모는 작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문제를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큰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개인이 환경에 해를 덜 끼는 방식에 대해 주로 글을 써왔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제 생활의 방식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의문이 들 때가 가끔 있지요. 수많은 인구 중에, 고작 나 하나 실천한다고 해서 세상이 정말 변할까? 세계가 봉착해 있는 환경 위기에 비해, 우리가 대처해 나가는 방식은 태만할 정도로 느린 게 아닐까? 여전히 길을 가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플라스틱 빨대를 들고 점심시간 배회하는 직장인들, 퇴근길에 비닐봉지 한 보따리 장을 봐가는 동네 사람들을 보면 문득 스치는 생각입니다. 작은 단면이긴 합니다. 하지만, 여느 때보다 '지속가능성', '환경'에 대한 이슈를 목청껏 소리 높이고 있는 시대라는 걸 감안했을 때에도 실제 생활에서 변화가 일어나려면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뿐만 아니지요. 2016년 국가지표체계 기준, '폐기물 종류별 일평균 발생량'은 가정이 배출하는 생활폐기물 53,772톤, 사업장 배출 시설계 폐기물 162,129톤(생활폐기물의 약 3배), 건설폐기물 199,444톤(생활폐기물의 약 4배)이라 하니, 삶을 좀 더 거시적인 국면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이런 지표를 바라볼 때면, 비닐봉지, 플라스틱 컵을 운운하는 것이 헛헛해질 때가 있습니다). 혹자는, 현재 세계가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이루지 않으면 지구가 파국으로 치닫는 일은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의 생활수준이나 경제성장률을 분석할 때 사용되는 지표인 GDP(국내 총생산량)*가 아닌, 삶의 행복도를 측정하는 새로운 지표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효율을 높여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해야 하는 기업/자본주의 시대의 숙명에서 벗어나는 것까지... 고민해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자본주의의 굴레 또는 자본주의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에 끼워진 부속품 같은 우리는 자급자족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현대 경제체제로 벗어나기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라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에 기여할 수 있을까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출처: 위키백과>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지금까지 주장해온 학설과 정반대가 되든가, 지금까지 와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변화하는 경우 쓰는 말.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폴란드의 천문학자로 지동설 주장은 발표되고 440년이 지난 뒤에야 로마 가톨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출처: 세계사 다이제스트)


GDP(Gross Domestic Product)의 허상에 대한 짧은 영상 (출처: 지식 e채널)


<영상 간추리기: GDP*에서 중요한 것은 'Product'로 GDP는 한 나라에서 생산되는 물건과 서비스의 시장 가치를 모두 더한 값을 뜻한다. 전쟁이 일어나 무기가 많이 생산되어도, 미세먼지가 심해 국민건강이 저하되어 그에 해당하는 약의 생산량이 늘어도 GDP는 올라간다>


성장이라는 말 뜯어보기

GDP가 현대 국가의 진보의 척도로 적합하지 않다는 논란은 꽤나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되려 GDP가 생태계의 파괴 정도를 측정하는 데 오히려 더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요. 바로 책 <탈성장 사회로 가는 길 '성장으로부터의 해방>을 쓴 니코 페히 교수입니다(번역: 고정희). 독일의 대표적 성장 비판론자 중 한 명으로, 실제 승용차, 텔레비전, 휴대폰은 소유하지 않고 노트북도 학교에서 연구용으로 준 하나만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평생 비행기(탄소배출을 가장 많이 일으키는 원인)는 딱 한번 타 본 진짜 실천가지요. 앞서 소개한 책에서는 분수에 넘치게 사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권리가 아님을 비판하며, 책을 목적을 세 가지로 요약하여 제시합니다.


이 책의 목적은 성장과 지속가능성과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살피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세 가지 가설을 세우고 거기에 집중하고자 한다.
첫째, 성장 없이는 안정될 수 없는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광범위한 환경 파괴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효율성의 증가와 인간의 창의력으로 인해 그동안 수많은 물질적 성과를 이룩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자기기만일 뿐이다. 이는 현대 삶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유형의 '탈경계 현상'을 근거로 설명할 수 있다. 오늘날 소비 사회의 구성원들은 세 가지 관점에서 분수에 넘치게 살고 있다. 1) 우선 자신의 능력 이상의 물건을 소유한다. 이 물건들은 현재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무시한다. 2) 그다음 자신의 신체적 능력의 한계를 추월하며, 마지막으로 각자 속한 공간과 지역에 존재하는 자원의 한계를 넘어선다(Minimize Impact 추가: 여기서 말하는 '탈경계 현상'이란 점점 세계화되어 가는 경제 양식을 뜻하며, 우리 지역/나라의 경계를 훨씬 넘어선 이역만리 타지의 자원과 물건들을 항공과 같은 교통시설의 발달 및 값싼 지역에 공장 설립 등을 통해 쉽게 취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둘째, 기술적 혁신을 통해서 경제 성장과 환경 파괴를 서로 분리하려는 즉, 경제는 성장시키고 환경 파괴는 감소시키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 확실하다. 오히려 환경을 더욱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대할 수 있다.
셋째, '탈성장 경제'라는 대안을 따른다면 어쩔 수 없이 산업 생산량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공급의 경제적 안정성을 촉진할 것이며(회복탄력성),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행복감의 상승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 날 우리는 자극이 넘쳐나는 소비 사회에서 스스로를 분산시키며 살고 있다. 소비 사회는 우리의 자원 중에서 가장 한정된 것, 즉 시간을 좀먹는다. 풍요의 짐을 벗어버린다면 우리는 오히려 중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며, 자아 구현을 돈으로 사기 위해 쳇바퀴를 돌지 않아도 되므로 현기증도 없어질 것이다. 적은 것을 집중적으로 이용하고, 나날이 제공되는 각종 옵션들을 의연하게 무시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는 감소하고 행복감을 커질 것이다. 21세기를 책일 질 수 있는 사회 모델과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부의 절제밖에 없다.  <성장으로부터의 해방中> 니코 페히
성장으로부터의 해방 / 니코 페이 지음 / 나무도시 (이미지 출처 다음 책)


니코페히는 책의 말미에 풍요로운 사회모델을 해체하고 책임감 있는 경제로 회귀할 것을 권합니다.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고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하지 않는 것(감축과 절제)'의 미덕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요. 어려서부터 우리는 '성장'과 '발전'이라는 단어를 긍정적 이미지로만 맹신한 나머지, 발전과 성장을 통하지 않은 문제 해결법에 대해서는 혁신적이지 않다거나, 미심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존 우리가 학습되어 온 세계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말 그대로 '성장'에 대한 강박이 우리 안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매사 '성장'을 위해 '혁신'적일 필요가 있긴 할 걸까요?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음 또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몇 보 퇴화하는 것이 더 '혁신'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Photo by Guus Baggermans on Unsplash

우리의 구매력이 기업에 대한 투표권임을 이해하기

: 기업은 소비자의 '소비 지향성'으로 먹고살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제품/서비스를 생산합니다. 우리는 신중한 '구매/비구매'를 통해 기업의 시대에 변화를 이끌어 올 수 있습니다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할 줄 알기

: 광고에 나오는 모든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과 실제 필요한 것은 다를 때가 많지요


필요 없는 것에 No라고 말하기

: 새 제품 구매는 물론, 무료로 나눠주는 사은품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포함됩니다. 사은품으로 주는 에코백, 텀블러가 우리에게 더 필요한가요? 대부분의 사은품들은 중국에서 값싸게, 저품질로 생산된 것들입니다. 그런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내뿜는 미세먼지가 한국으로 타고 들어온다고 생각해보세요. 모든 건 연결되어 있습니다


'풍요, 성장, 발전, 혁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 이를 맹목적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한 단어와 목표인지 생각해 봅니다


'생산자'로써의 나 생각하기

: 지금 만약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가이시거나, 창업 희망자시라면 한 번쯤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생산하시(려)는 제품/서비스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 과도한 '혁신'에 도취되어, 단지 나를 쇄신하려고 만들어내려는 건 아닌지. (혹은 단지, 돈을 벌 요량이라면 환경적 영향을 덜 남길 다른 방법을 찾아 보시길...) 만약, 생산에 반드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신다면 '라이프 사이클(생애주기)'를 조금만이라도 고려하여 생산해주시기 바라요! :)


*물건의 라이프 사이클에 대해서는 이전 글 <움직이는 토끼모자의 라이프 사이클>을 참고해주세요 'https://brunch.co.kr/@minimize-impact/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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