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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Oct 30. 2022

가끔씩 멈춰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말인가 방구인가 싶은 소리

핸드폰을 끄적이며 빈둥대고 있는데 한 유명 다이어트 유투버의 인터뷰가 귓전을 스쳤다.


"저는 오히려 다이어트를 포기하는 순간 살이 빠졌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방군가 싶은 소리지만 한 편으론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갔다. 내가 그 유투버 말대로 체중감량에 성공했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외려 그 반대다). 단지 집착하는 '대상으로부터의 해방이 오히려 길이 되었을 때' 정도의 공감 정도라면 더 옳겠다.

그 유투버에게는 '살'이었을 것이고, 나의 경우에는 '아토피'였다.


한동안 '나는 성인 아토피안입니다'를 멈췄다.

무언가 하나를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나는 성인 아토피안입니다' 코너로 글을 몇 편 연재하면서 이상하리만치 내 아토피 증상이 전보다 더 심해졌다 느꼈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상태는 달라지긴 했지만 지난 몇 해 간의 여름에는 증세가 호전되었었는데 유독 그 해는 상태가 심했다. 얼굴이 쩍쩍 찢어지고 두꺼운 가죽을 덮은 것처럼 무겁고 딱딱하게 느껴졌으니까. 한 날은 외부 강연을 마치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참가자 중 한 분이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빈 강의실에 남아서까지 내게 한의원까지 추천해주고 갔을 정도였다. 그때였을까. '아, 이대로는 정말 아니구나' 싶던 적이. 그리고 일단 '글쓰기'부터 먼저 멈춰야겠다 생각했다.   


하루는 '나는 가픈사람입니다'라는 세바시의 성인 아토피안 특집 시리즈를 보고 있었다. 그날은 아토피를 앓고 있는 래퍼분이 무대로 나왔다. 무대 위에서 그는 아토피에 대한 고통을 랩 가사로 쓰게 된 경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 보게 된 경험을 나누었다. 하지만 내게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사실 이거다.  


"... 를 하면서 이제 잦아드는구나. 몸에 활력이 생기려는 찰나에, 한 달 전부터 제가 세바시에 나올 거를 (몸이) 알았는지 다시 아토피가 올라오더라고요"


나는 그분이 무대로 내려간 이후 아토피가 재발하지 않았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몸이 좋아지려는 찰나에 티브이 프로그램 출연을 앞두고 다시 몸 그리고 세포가 그때의 고통을 기억해버린 걸 아닐지,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 표현하는 이를 나는 존경한다

투병 생활을 다룬 책, 투병 생활 동안 그린 그림들이 걸린 전시장을 한 때 부지런히 쫓아다닌 적이 있다. 아픔 안에서 '아픔의 고유함' 그 자체를 건져 올린 말들이 위안이 되기도 했다. '아플 때의 고유한 기억'들을 문자나 그림, 음악으로 기록해둔 이들이 부러웠다.


나는 경우는 몸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려면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그 '기억'들이 휘발되었으므로, 기록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말들이 너무도 아까웠다.


하지만 가끔 자신의 고통에서 거리두기를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고통이나 아픔을 표현하고 승화하는 것을 넘어 지나치게 과몰입하면 오히려 독이 됨으로. 


고통을 깊이 관찰하다 못해 집착이 되어버릴 때는 과감히 손을 놔버려야 할 때도 있다. 낫고 싶다는 욕망으로 한꺼번에 이것저것 시도하다 오히려 몸을 망치게 될 때가 있는 것처럼. 어렵겠지만 가끔씩은 '아토피'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라도 머릿속에서 잊어버리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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