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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Oct 30. 2022

아토피를 새롭게 사유할 수 있을까?

개인의  노력 부족 또는 어떤 개인의 불행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상상이 만연한 세상에서 여전히 '아토피'를 가지고 있다는 건 '개인의 노력 부족' 또는 '어떤 개인의 불행'으로만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건 '아토피'가 식습관이나 운동 또는 아토피를 자극할 수 있는 항원을 최대한 줄이는 것 따위의 외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질병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이유에선지 대부분의 아토피안이나 아토피를 가지고 있는 자녀의 부모는, 본인 또는 자녀의 피부 상태가 심각해지면 그 사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몹시 괴로워하곤 한다. 


몇 해 전, 심각하게 앓았던 새집증후군 때문에 나는 아토피가 내 삶에 그어낼 수 있는 한계를 뚜렷이 직면했고, 또 일상적으로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그다지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나의 몸은 예전보다는 일상생활이 수월해졌을 정도로 많이 회복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주제에 대해 다시 글을 쓰는 이유는 '아토피'를 살아온 시간 동안 내가 건져내 올 린 말들을 정리해보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래 아토피를 심각하게 앓고 난 후(물론 어릴 때부터 아토피는 늘 있었고, 그것 때문에 늘 고통받아왔지만) 내게 남은 소득 중 하나는 내가 '질병' 그리고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가진 제각각의 서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아픈 이들이 수없이 통과해낸 고통의 시간 속에서 한 땀 한 땀 벼려낸 솔직하고 담담한 말을 주어 모으며 우리가 앓은 질병은 각기 달랐어도 어떤 지점에서 함께 만날 수 있었고, 어떤 지점에서 함께 슬퍼할 수 있었음을 느끼며 참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러한 질병을 독해하는 과정 속에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아픔, 그리고 각기 다른 모양의 고통과 질병이 존재하는지도 깨닫게 됐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음에 또 다른 힘을 얻었다. 




질병을 사유하는 방식

근래 들어 질병을 사유하는 방식에 대한 책들이 서재에 많이 보인다. 의학자나 전문가의 전유물이었던 질병의 이야기가, 이를 앓고 있는 당사자를 통해 더 다양한 서사로 유통된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40세 전후로 고환암과 심장마비를 앓은 경험을 담담하게 써내려 간 책 '아픔 몸을 살다'의 저자 아서 프랭크의 말처럼 '위험한 기회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질병은 기회이기 때문이고, 이 기회를 붙잡으려면 질병과 함께 조금 더 머물고 질병을 통과하면서 배운 것을 나눠야'할 필요성을 사회가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아토피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한 이유도 그렇다. 작년 '아프지만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원작으로 삼아 만든 연극을 보면서, 생전 알지 못했거나 들어는 봤지만 정확히 알지 못했던 질병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마주했다. 


질병을 앓는 당사자가 직접 써 내려간 듯한 대사, 그리고 당사자가 직접 연기자가 되어 질병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엮어낸 무대를 보면서, 건강한 몸을 기본 전제로 하는 사회에서 '아픈 몸'을 지닌 이들이 '건강한 집단/사회' 속에서 어떻게 순간순간 배제되어왔는지, 어떤 말들과 상황이 그들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었는지, 그럼에도 삶을 살아내고 있는 그들의 마음과 생명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왜 그 수많은 질병 중에서 '아토피안'의 이야기는 없을까도 생각했다. 


사회적 문제로 두각 된 것이 오늘내일이 아닌 만큼 아토피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도 많은데, 이상하게도 아토피안의 목소리는 꽁꽁 숨겨져 세상에 잘 들리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토피라는 질병의 특성상, 우리는 누군가의 앞에 모습을 보이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거나 오히려 숨어 사는 습관에 더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질병이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결말은 없다

세상에 유통되어 있는 '아토피라는 질병에 대한 이야기'는 아토피안 당사자보다는 의학 전문가나 연구가 또는 아토피안 자녀를 둔 부모의 시점으로 쓰여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당사자의 이야기라면 그나마도 피나는 노력 끝에 아토피를 이겨낸 '완치 신화'로 귀결되는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룬다. 마치 그 질병이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결말인 것처럼 말이다. 


어느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나 결이 이렇게 다양하지 못하면, 그 질병의 '현재를 관통'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은 '완치해내지 못한 삶'의 가치 또는 '완치로 가는 여정에 있는 자신의 시간'을 타인의 방식에 맞춰 쉽게 재단하게 된다. 


물론, 질병을 가진 이들에게 '완치'는 누구나가 희망하는 단어이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부단한 노력 또한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질병을 마주하는 방식에서 '완치자만이 승리자'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조금 더 다양한 질병사를 유통해내고, 그 질병을 갖고 있는 현재의 우리 몸도 여전히 삶의 의미를 생산해낼 수 있음도 함께 기억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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