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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Feb 13. 2022

아빠와의 마지막 대화

병원에 도착하니 아빠가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사실 아빠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을 들은 전날에도 면회를 갔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아빠는 의학적인 도움 없이 숨을 쉬고 계셨다.

다만 아빠는 계속 눈을 감고 계셨고, 말을 붙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대신 베개가 불편한지 한쪽 팔로 뒷머리를 받치는 몸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다. 


나는 반응 없는 아빠에게 "아빠 예지이 왔다~"라고 얘기했다.

말을 걸어도 손을 만져도 아무 대답 없던 아빠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예지이~ 예지이~"라고 딱 두 번 나를 불러주었다.

"예지이 오니까 좋나?"라고 묻자 아빠는 눈을 감은 채, "어~"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게 아빠와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몰랐다. 


그 일이 있고, 다음날 오전 임종하실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왔을 때 

아빠는 산소마스크에 의지한 호흡 외에는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아빠가 숨을 쉴 때마다 산소마스크 끝으로 뽀얀 김이 서렸다. 

산소마스크 때문인지, 아빠 고유의 숨결 때문인지 

숨을 쉴 때마다 아빠의 고개가 끄덕끄덕 움직였다. 

아빠의 머리 위에서 산소마스크가 보글보글 거렸고, 

산소마스크 옆에는 그 전전날 밤새 빼낸 가래가 통에 담겨 있었다. 

나는 인생에서 그렇게 짙은 고동색의 가래를 본 적이 없다. 


아빠의 왼쪽 귀에는 맥박을 짚은 선이, 

몸에는 심장박동을 체크하는 선이 네모난 기계에 연결되어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2~1시 사이. 

오후(그러니까 12시 정도였다)를 못 넘기실 수 있다는 의사의 말과는 달리, 

아빠의 맥박과 심장박동이 다시 돌아왔다는 다행스러운 소식을 엄마가 전해줬다. 

모니터를 보니 100이라는 수치가 파란색, 초록색으로 떠 있었던 것 같다. 

간호사도 수치를 확인하고는 "어?"라는 말을 내뱉고 돌아갔다고 했다. 


우리는 아빠가 살면서 늘 한 번씩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또 한 번 놀라게 해 주고, 다시 회복하실 거란 희망을 몰래 품었다. 


아빠의 오른쪽 손을 잡고 기차에서 내려오면서 쓴 편지를 읽어주었다. 

눈물이 나서 끝까지 못 읽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아빠가 들을 수 있게 제법 또박또박 읽었다. 

편지를 읽는 측면으로 엄마가 침대에 엎드려 아빠의 다리 쪽을 감싸고 있었다.

울음을 억지로 침대에 참는 것일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편지를 읽자 느낌 때문인지 아닌지 아빠의 눈 끝에 눈물이 살짝 고인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이 상황을 내가 바라는 대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랐다. 

들을 수 있을까? 들려도 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도 끝까지 남아있는 게 청력이라며 나는 아빠에게 남은 마지막 감각에 매달리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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