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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emouse Oct 15. 2019

너때문에 버티는구나

나는 사람을 믿지도 않고 기대지도 않아?

그렇게 한동안 살았다. 사람에게 기대어봤자 그 사람이 한걸음 옮기면 무너지는것은 나 혼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실제로도 몇번 했다. 믿었다가 배신을 당하거나 사탕발림같은 말에 현혹되었다가 그것이 형체도 없는 껍데기 호의였었던 경험. 반대로 내가 다른사람에게 그렇게 껍데기를 보여주거나 등을 돌린 적도 있었다. 친구라도 연인이라도 그 어떤 관계라도 끝날때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나를 믿었던 당신이 뭘 몰랐던 거야.


남자친구의 생일에 내 눈에 보기 좋은 남방과 스웨터를 사서 선물했다. 그는 원래 멋이란 것을 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사온 옷을 입자 인물이 훤해졌다. 제눈에 안경이지만 이사람 참 잘났다, 내가 보는 눈이 있다라고 흡족해 했다. 그리고 코메디 디너쇼에 데려갔다. 쇼는 그저 그랬지만 음식이 맛있어서 돈은 아깝지 않았다. 배가 고팠는지 음식이 맛있어서였는지 그가 메인 디쉬를 깨끗하게 비운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간헐적으로 쇼를 보고 웃고 즐거워하고 나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난 그때 참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주는 기쁨을 다시 맛보았다. 더 좋은것을 더 많이 주고싶다. 예쁜 옷을 사다 입히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좋은 레스토랑에서 더 자주 사주고 싶고 그를 웃게 하는 코메디쇼를 더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해주고 싶은 것은 결코 그에게 무언가를 바래서가 아니다. 그렇게 해 주어야 내가 이 세상을 버티기 때문이다. 그가 없었다면 내가 왜 악착같이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지, 이 재미도 없는 세상에 앞으로도 몇십년이나 더 살아야 하는지, 앞으로 남은 인생이래봐야 늙는것밖에 안남은것같은 40이라는 나이, 정말 재미없고 막막할 것이다. 그가 없다면. 


인생이 총 천연색인 때가 있었다. 내 몸의 혈기 왕성함을 이 세상이 받아주지 못해 미친듯이 돌아다니고 일을 저지르고 자지러지게 웃고 술에 취하고 또 일어나 애먼 짓을 하고 돌아다니던 믿지못할 시절이 나에게 있었다. 나는 분명 대단한 사람이 될줄 알았고, 언제까지고 젊고 아름답게 살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철없던 나는 생각없이 어린 나이에 고국을 떠났고, 첫사랑과 결혼을 하고 그리고 십년이 훌쩍 넘어 이혼을 했다. 그러던 중에 일에 미쳐 회사에서의 성공이 내가 태어난 이유인 양 살았다. 일이 재미있었고 남보다 못하면 견디기 힘들었다. 여행을 너무 좋아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혼자서도 참 많이 다녔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다 했다. 이혼 후에는 더욱 자유롭게 살았다. 무언가를 할때 구지 친구나 동행을 구하지도 않았다. 이혼 후에는 외모를 꾸미고 운동을 많이 했으며 그나이 임에도 남성들에게서 대쉬도 많았다. 35살 쯔음에는 10대보다도 체력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40대에는 대단한 누군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라는 것이 숫자에 불과하다는데, 나는 이 나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구나. 


몸은 여전히 건강했다. 문제는 나의 뇌 속의 호르몬이었다. 우울증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다. 운동이 도움은 되지만 예방은 안되는것 같다. 어느날 갑자기 모든걸 다 그만 하고 싶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고 회사로 가는 길에, 이제 오늘부터 시작될 이 날로부터 앞으로도 쭈욱 남은 날들이 회색처럼 보였다. 나는 이제 아름다워질 수 없으며, 더 건강해질수도 없고, 더 똑똑해지기는 더 힘들겠다. 나는 이미 인생의 정점을 다 살은것 같은 느낌. 아마 중년의 위기 정도 되었나 보다. 왜 인간의 수명이 45세가 아닌 80세 90세까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45세가 수명이라면 나는 훨씬 편할것 같다. 이제 인생을 많이 살아본것 같고 미련도 별로 없는데 더군다나 재미도 없는데 앞으로 40여년을 어떻게 무슨수로 더 산단 말인가. 흉한 늙음, 불편한 몸뚱아리, 흐릿한 기억을 가지고 앞으로 40년이나 내리막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이 무슨 형벌인가. 이런 생각에 빠지자 매일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눈물이 흘렀다. 참 오랜만이었다. 이혼할때 너무 울어서 그랬는지 그 이후로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십여년만에 나는 또 펑펑 울었다. 어떻게 앞으로 40년을 버틸지 너무 막막하고 이런 인생이 잔인해서 서럽게도 울었다. 가슴이 꽉 막혀 체한것처럼 힘들었다.


일주일이 그렇게 지나고, 나는 우울증에 빠졌다라는것이 너무도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건 테스트 해볼것도 없이 나는 비정상이었다. 감기가 걸리면 콧물이 줄줄흐르고 기침이 나오듯이, 나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하루종일 짜증이 났는데, 별로 고민없이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에게 가지 않으면 나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이 생각을 틀어 버릴지 겁이 났다. 감기는 사람을 죽이지 않지만 우울증은 죽이기 때문이다.


우울증 약을 먹고 노력을 해서 많이 좋아졌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염세적인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이 과정을 지켜보고도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있는데 나의 4년된 남자친구다. 어느날 내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 나를 보고 반기는 모습, 친구들과 있을때조차 나를 보고 정신없이 웃던 모습, 우울증이라고 했을때도 단 한마디 충고나 걱정 없이 조용히 내 기분을 맞추는 모습, 나보다 어린 티 안내려고 항상 젊잖은척 하다가 친구들 앞에서는 까부는 모습, 생일에 내가 준 선물을 입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 내가 데려간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깨끗이 비우는 모습... 너때문에 버티는구나. 너에게 아직도 기대지 못하는 나이지만, 너때문에 버티고 있단다. 너에게 더 좋은 여자가 아니라서 미안하다. 너와 비슷한 또래였다면, 같은 미국인이었다면, 내가 결혼을 안했었다면... 우린 더 많은것을 공감하고 더 재미있을수도 있었을텐데. 이미 너무 많은것을 알아버리고 경험해 버린 내가 미안해진다. 우리가 평생 이렇게 함께 행복할수 있을것이라는 기대를 하기엔 내가 너무 경험을 많이 해버렸는데, 그렇다고 그 경험이 후회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오히려 지금 이 사람에게 많이 베풀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법을 터득했고, 댓가없이 주는 사랑에 만족하므로 안절부절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법 또한 몸에 익어 버렸다. 이 사람은 그래도 될것 같다. 아니, 이 사람에게 많이 베풀고 주는 것이 이제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어느날 내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내가 할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나는 심지어 눈물조차 안날만큼 놀라운 일도 아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나의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 정말 솔직히는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안하면 내가 버틸수가 없을것 같기 때문이다. 내 존재 이유를 더이상 모르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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