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zac 복용 시작 후기
나는 항우울제의 일종인 프로작을 처방받고도 약 2주간을 먹지않고 열심히 구글링만 했다. 일주일 유럽여행 다녀오니 우울감이 싹 사라지기도 했고 솔직히 무엇보다 항우울제를 몇달씩이나 먹으라는 의사의 말이 많이 거슬리고 싫었다. 나 그정도는 아닌것같은데. 의사가 단 십분 내 말 들어보고서 내 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수도 있는 이 약을 몇달이나 먹으라 마라 했다는 자체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구글을 뒤져봐도 워낙 케바케라서 딱 내입맛에 맞는 정보를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곧 끝없는 노동과 그에따른 짜증에 다시 힘들어했고, 거기에 사회불안까지 심해지는것 같았다. 일상이 힘들고 스트레스가 늘수록 나는 간단한 회의에서조차 식은땀을 흘리고 목소리가 떨렸다. 원래도 소심한 면이 있었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내 몸의 반응이 낯설 정도로 남 앞에 나서는것과 주목받는것을 무서워하기 시작했고, 교회에서 앞에 나가 중창을 할때는 온 몸이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났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정신과 의사에게 이런 증상을 이야기했을때 프로작이 사회불안에도 도움이 되니 먹어보라고 했었는데, 그때도 사실 크게 신뢰가 가지는 않았다. 결국 어찌어찌 해서 나는 프로작 복용을 시작했다.
처음엔 독한 감기약을 먹은 느낌처럼 멍 한데 졸리지는 않았다. 입이 좀 마르고 식탐이 확 줄었다고 느꼈다. 난 원래 아침먹으면서 점심에 뭐 먹을까를 생각하는, 심하진 않지만 어느정도 식탐이 있는데, 신기하게 이따가 뭐먹을까라는 생각이 잘 안난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계속 멍 한데, 이게 멍청해지지는 않을정도의 멍함이랄까, 매우 꼬이고 복잡한 회사일을 회사일을 할때도 머리는 이전처럼 작동하는데 다만 나도 모르게 멍때리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멍때리는걸 참 못하던 사람인데, 한시도 쉬지않고 오만 생각이 떠오르는 편이다. 그런데 이 약을 복용하니 신기하게 수초 내지 1-2분동안 정말 뇌가 백지인것처럼 텅텅 비는 느낌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집중하면 어려운 일이나 글을 읽는데는 별 지장은 없다. 그리고 처음 한달동안은 수전증이 심했다. 원래도 긴장하면 손이 떨리는데, 약을 먹고나니 긴장을 안해도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것 또한 일시적인 부작용이라고 한다. 그리고 약이 제대로 효능을 나타내기전, 그러니까 복용을 시작한지 2개월 이내에는, 남 앞에서 발표를 해야하거나 면접 같은 일을 앞두고 있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증상까지 있었다. 예전엔 사회적인 자리에서 공포감이 주로 느껴졌다면 프로작 복용 후에는 뭐랄까 공포까지는 아니지만 무척 안절부절 못하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2개월이 지나고, 다운되었던 감정이 많이 올라왔음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일상에 변화가 있었던 것도 있다. 무엇이 더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다. 최근들어서는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몇분내로 금방 회복이 되고 몇시간째 그 일로 기분이 나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긍정적이 된것 같다. 그리고 사회불안 및 공포가 많이 줄었다.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회사에서 발표를 할때도 무섭지가 않다. 단지 처음 시작할때 약간의 떨림이 있을뿐, 몇분내로 사라진다. 참 신통한 약이 아닐수가 없다. 예전에는 위압적인 자리나 실수하면 안되는 자리에서 발표하고 회의를 할때면 도대체 이유도 모를 공포심이 생겨서 사시나무 떨듯 떨던 나였다. 남앞에서 무언가를 해야할 때면 그저 땅으로 꺼지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태연해졌다. 떨리는건 여전히 좀 떨리는데 무시할만 하고, 예전과 같이 괴롭고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지는 않다.
이런 효과라면 내가 프로작을 끊을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조금 생겼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가 너무 싫어졌다. 이래서 의존성이 생기는건가 싶었다. 난 아직도 살 날도 많고 그만큼 일을 해야 하고 사람들과 부딫히고 화를 낼 것이고 절망도 할 것이고 남들 앞에서 중요한 발표를 할 일들이 아주 많을 것인데, 약을 중단하고도 계속 잘 할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약을 먹고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또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지레 걱정하고 있다. 일단 의사 말 들어보고 최소 6개월 복용하라니까 해보고 나서 고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