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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별 Dec 07. 2018

파인, 땡큐, 앤유?

밥은 먹고 댕기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영어문장이 있다. 하이, 하우 알 유? 아임 파인 땡큐, 앤유? 중학교 1학년(네, 저는 중학교 때 처음으로 영어를 배운 세대입니다.) 처음 배운 문장이 아마도 이 문장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인사할 때 ‘기분이 어때?’라고 묻지 않기 때문에 처음 캐나다에 와서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기분을 묻는 사람들이 약간은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했다. 매일같이 ‘fine’, ‘good’이라고만 대답해주는 제 자신이 식상해서 다른 대답을 연구해본 적도 있지만, 사실 이 질문은 진짜로 기분이 어떤지 묻는다기보다는 인사치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실제 제 기분이 어떤지를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늘 기분 좋게 웃으며 좋다고 대답해주기로 했다.


오, 나 너무 힘들어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을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으며 구경하던 날 마침 감기 기운이 있던 한 친구는 먼저 호텔에 체크인을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나머지 셋은 여행의 기분에 취해 평소보다 월등히 많은 운동량에도 아랑곳 않고 상점들이 문을 닫을 때까지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호텔로 돌아갔다. 먼저 들어와 쉬고 있던 친구가 체크인할 때의 일화를 들려준다. 너무 힘이 들고 몸상태가 좋지 않은 나머지 호텔 직원이 건넨 인사, ‘How are you?’에 그만, 나는 너무 힘들고 몸이 안 좋고 기타 등등 이런저런 투정을 부렸다는 거다. 20년 지기인 우리들은 친구가 많이 힘들었다는 사실은 뒷전이고 깔깔대고 웃으며 놀리기 바빴다.


밥은 먹었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말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밥 먹었니?’ / ‘식사는 하셨습니까?’가 바로 그 표현이다. 상대가 진짜로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궁금해서 질문한다기보다는 인사 뒤에 의례적으로 붙이는 표현인 것이다. 고등학교 때 한 친구가 학교에서 선생님을 만나서 인사만 드리면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시는데, 그때가 3시쯤이면 점심을 먹었으니 먹었다고 해야 할지, 저녁을 먹기 전이니 안 먹었다고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아마 그 선생님은 그냥 인사를 하셨을 뿐일 텐데 이렇게까지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모했을 거다.


죽지 못해 산다

한국에서는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면 ‘요즘은 어때?’ 내지는 ‘잘 지내?’라고 묻곤 하는데 주로 돌아오는 대답이 대부분 에너지 넘치는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그렇지 뭐’, ‘늘 그렇지 뭐’, ‘너무 바빠’, ‘힘들어 죽겠어’ 등등. 한국에서의 삶이 빡빡하고 힘들어서 그런 걸까? 언제부터 우리는 이런 대답을 하게 되었을까? 영어권 사람들도 늘 행복하고 우리보다 덜 힘들어서 잘 지낸다고 대답하는 게 아닐 텐데 말이다. 눈만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감자튀김 하나만 주문을 해도 perfect, nice를 날려대는 서양사람들을 보고는 거짓말쟁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밝게 웃으며 ‘잘 지낸다’는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힘든 일이 있어도, 기분이 좋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말을 하면 말하는 대로 완벽한 하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잘 지내시나요?


저는 어느 때보다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캐나다 빅토리아 Oak bay marina에서 늘 만날 수 있는 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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