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동네에 산다

ㅡ 1. 세계적 수상

by 사색유희
KakaoTalk_20241020_124331641.jpg 영화 『기생충』촬영지 _ 아현동 "돼지 슈퍼"



1. 세계적 수상

: 영화가 골든 빛 수상을 기록할수록 우리 동네엔 똥 빛 수상(마음의 상처)이 깊어졌다.

(골든 빛 수상(수상 7受賞 명사 상을 받음), 똥 빛 수상 (수상 5受傷 명사 상처를 받음))






동네에 별안간 '유명세'라는 게 생겼다.

영화 『기생충』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내가 사는 아현동은 세계적 명소가 되었다.

영화 속 '우리 슈퍼'로 등장한 본명 '돼지 슈퍼'가 있는 아현 1 구역.

이곳은 아현동 마지막 재개발 예정 구역이기도 하다.

장차 천지개벽할 달동네라는 부동산 이슈는 이목을 더 집중시켰다.

'돼지 슈퍼' 옆엔 촬영 소품이었던 파란색 테이블과 파라솔이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바깥벽엔 벽돌처럼 쌓여있던 박스 대신, 기생충 수상 장면이 담긴 현수막이 자리를 증명했다.

이곳이 그 촬영지임을 전시하듯.


나는 한때 작가 지망생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시나리오를 공부하며, 소품 하나하나에 담긴 집요한 미장센에 열광했다.

"봉"자를 붙여 예명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봉자, 봉숙이, 봉숙희 등등등.

감독의 이름을 따라 한다고 그 만한 사람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름을 따서 개똥이 같은 친숙한 이름을 만드는 건 공부하는 재미 중 하나였다.

그 시간만큼은 내게도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기회를 꿈꾸게 했다.

그 꿈은

어떤 사건 이후로 난생처음 글을 쓸 수 없는 시간에 묻혔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뭘 이룬 적도 없으면서 절. 필. 선. 언. 을 해보았다.

그마저도 절. 필. 선. 언.이라는 글자를 쓰는 것으로 무슨 글인가를 마구 갈겨댈 뿐이었다.

미련하게 글을 포기하지 못했다.

남들처럼 묵묵하게 계속 직장 생활을 했더라면?

늦게 영화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영화 같은 불운들을 피할 수 있었을까?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계속되는 불운과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동경한 감독의 영화는 나의 터전에 '기생충 동네'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이곳을 탈출하지 못한 나는 낯선 이방인들이 던지는 비난의 먹잇감이 되었다.

낯선 외국인들의 방문은 그나마 반가웠다.

회칠이 다 벗겨져 거뭇거뭇 해진 동네 커피숍에서 외국인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설레는 표정에서 마치 내가 그 여행자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일부 인플루언서들과 유튜브 속 부동산 업자 등은 자극적인 표현들을 여과 없이 토해냈다.

"찌글찌글한 그런 동네", "사람 살기 힘들어요~"...

낯선 시선에 의해 동네는 더 어둡고 가난해 보이는 채도의 이미지로 재생산되기도 했다.

이제 이 동네를 벗어난 사람들도 비소를 감추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도 나는 분별없이 영화에 반해있었다.

낯선 이들이 내가 사는 공간을 제멋대로 비난할 때 비로소 알았다.

'영화가 아니구나.'

'그 영화 속 장면들은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었구나'


영화는 골든 빛 수상을 기록했지만,

그럴수록 우리 동네엔 똥 빛 수상(상처를 입었다)이 깊어졌다

세트장처럼 동네를 구경하고 악평하는 사람들,

이제 동네를 벗어난 승자의 특권인 듯 남은 사람을 조롱하는 사람들,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에 의해

동네엔 아주 작은 차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영화 속, 박사장네 집으로 오르는 계단 위 공간과 기택이 몸을 숨겨 내려간 지하 공간처럼,

극명한 경계를 보였다.



똑! 똑!

당신이 이 동네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할 권리는 누가 부여했나요?

"여기... 아직 사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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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