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5. 암전
5. 암전
ㄴ 우수, 누전 / 건전지 전구
현관문을 여는 순간, 전기가 올랐다.
짧고 강렬한 소나기가 지나간 후였다.
물이나 세탁기 등에 손이 닿을 때마다 찌릿한 느낌이 들었었다.
한 겨울 온돌바닥처럼 뜨근하던 바닥은 여름 초입 무렵부터 따갑게 뜨거워졌다. 보일러는 OFF 상태인데도.
무언가 이상했지만 근원지를 찾지 못했다.
그래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소방차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골목에서 사고가 나면 안 되니까...
내가 사는 골목은 유독 더 어두웠다.
골목 양 끝에 가로 등이 있었지만
정중앙에 있는 우리 집까지는 빛이 닿지 않았다.
그해 겨울, 가로등은 고장 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가로등에 붙은 구청 스티커가 눈에 띄었다.
수억 원씩 동네 곳곳을 수선한다는 소식은 많았지만
내가 사는 골목은 대부분 제외되었다.
전국적으로 낡은 전선을 교체, 정리한다고 했을 때도
그나마 사람 눈에 잘 띄는 첫 번째 골목만 간신히 정리가 되었다.
안쪽 골목은 여전히 얽히고설킨 죽은 전선들이 주인 없는 거미줄처럼 나부꼈다.
동네 사람들은 요청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부처는 "규정에 없다", "소관이 아니다"는 말로 책임을 미루기 바빴다
그래도 "말이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스티커 속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빛이 닿지 않는 골목 사정을 이야기하고,
우리 집 앞에도 가로등을 설치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가뜩이나 사람이 살지 않는 골목이라 무섭다는 말과 함께...
"미안합니다" 담당자의 답변은 뜻밖이었고,
현실에 절감하는 진심 어린 사과가 담긴 어투였다.
순간, 눈이 뜨거워졌다.
드디어 우리 집 앞에도 가로등이 생겼다.
골목 중앙이 더 환해졌다.
그나마의 어둠을 피하려고 레몬색으로 칠해두었던 벽은 가로등 빛을 받아 따뜻하게 빛났다.
여름 시작 전, 그 겨울의 끝 무렵이었다.
물을 쓸 때마다 전기가 오르는 느낌이 든 것은.
이제 빈도와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손이 닿기 힘든 높은 위치에 낡은 두꺼비집을 내리는 일이다.
두꺼비집은 아래층에 연결되어 있었다.
오래전부터 두꺼비집을 위, 아래층 따로 연결하려고 업자를 수소문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 그 사이에 있는 집 공사를 꺼려했다.
수년간 비어있는 아래층 빈집으로 갔다.
천장에서 소나기처럼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딱. 딱. 타닥타닥 전기 튀는 소리가 들렸다.
잔뜩 긴장한 까치발을 세워 두꺼비집을 내렸다.
전기가 튀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시 두꺼비집 분리공사를 위해 여러 업체에 도움을 구했지만 역시 답이 없었다.
정확한 암전 상태가 되었다.
전류는 더 이상 흐르지 않고, 28도 넘게 뜨거웠던 바닥도 열이 한풀 꺾였다.
소나기도 소강상태고, 저 시선 끝 아파트 위로 먹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한밤중,
집은 온통 까맣다.
가로등은 그 검정을 다 밀어내지 못했다.
한여름, 전기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조명을 찾아 헤맸다.
겨우 건전지로 작동하는 크리스마스 장식용 전구를 구매했다.
장식용 전구가 이 비루한 어둠의 분위기를 달래주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무얼까?
전기를 내리고 바닥이 식어갔다.
방안은 깜깜한 밤 보다 더 시커멓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구겨진 채로 쪽잠을 자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구의 도움 없이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시, 혼자 헤쳐 나갈 의지를 찾아야 해.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피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온통 까만 하늘에 덩그러니 떠 있는 달이 핀 조명처럼 나를 밝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