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폭염주의보 (에어컨 OFF / 땀띠)
6. 폭염주의보
ㄴ 에어컨 OFF / 땀띠
암전 이후 역대 최고 온도까지 치솟은 날씨. 연일 폭염주의보 재난 문자가 울렸다.
기생충 영화 속 기우네는 폭우가 쏟아지는 계단으로 한없이 쓸려 내려갔다.
나는 끝없이 오를 것 같은 폭염 속에 계단을 한없이 올랐다.
기우네는 폭우에 잠긴 집 대신 대강당에서 사회의 도움으로 하룻밤을 연명했다.
나는 폭염에 전기가 나간 집 안에서 편의점 얼음으로 더위를 피했다.
매일 돌덩이 얼음 한두 봉지로 고양이들과 매일 밤을 연명해 나갔다.
몇 년째 두꺼비집 교체 해 줄 공사업체를 찾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누전이 되었다.
시간 나는 틈에 와서 봐주기라도 하겠다던 업체도 역시나 소식은 깜깜이다.
주택수리 지원 문의도 해본 적이 있지만. 마포구 중에도 사람 눈에 띄는 인적 가까운, 유행하는 거리의 주택에 대한 지원만 있을 뿐이었다.
버팀목 전. 월세 같은 걸 알아보고 싶어도 내 소득은 조건에 부합했다.
소득이 지원 받을 수 있는 기준 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투잡 뛰며 조금 더 높은 소득을 얻어 살아가는 게 오히려 도움 받기 더 힘든 상황이 되었다.
도움 받기 위해선 도움 받을 수 있는 구조에 포함되어야 했다.
어설프게 가난하면 그나마의 유명무실한 도움이라도 받기가 더 힘들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자기 시간과 돈을 빼앗기면 안 된다.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내가, 나 아닌 주변인에게 밑거름이 되어주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자기 삶이 모두 상실된 후에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물에 빠진 자기 자신을 먼저 구해야 한다.
탈출한 사람은 절대! 구명보트를 던지지 않는다!
2024년 8월 1일의 온도는 33°
연일 계속되는 폭염주의보 속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생일날 아침이었다.
"에어컨 뒤에 아~ 모르겠어. 콘센트를 못 껴서.."
"..."
엄마는 괜히 콘센트를 뺏다가 다시 끼지 못해서 에어컨을 못 켜고 있다고 했다.
며칠째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지만 모른 척했다.
힘들고 어둡고 냄새나고 지쳐도 이겨낼 수 있어. 잘 될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나를 다독이고 있던 참이었다.
더위로 탈진한 상태여서인지 옅은 곰팡이냄새 때문인지 면역이 약해진 틈을 타 또 그 두통이 찾아왔다.
매캐한 연탄가스라도 맡은냥 머리가 깨질 것 같고 구토를 몇 번은 해야 끝나는 두통.
속이 울렁거리고 매스꺼웠다.
그래도 오늘은 생일이니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고 무사한 하루를 보내야지 다독이고 있었다.
1년 중 제발 아무 일만 일어나지 않아도 최고라고 생각하는 날. 그날이 바로 생일이다.
나에게 생일은 아빠가 사 온다던 케이크를 기다리다 밤을 새우거나 안 좋은 기억이 많은 날이었다.
뾰로통하게 생일을 흘려보낸 다음 날 아빠는 해맑은 얼굴로 귀가했다.
내 생일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잊혔고, 며칠 뒤에 밤새 기다렸던 케이크를 볼 수 있었다.
그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후~"불을 끄는 건 단 한 사람. 동생이었다.
엄마의 전화 한 통화로 생일을 위한 평온의 결기가 깨졌다.
"너무 한 거 아니야.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이 더위 속에 전기도 안 들어오고 에어컨도 안되는데,
전기 고쳐 준다는 곳도 없어서 그냥 버티고 있는데.
전기 콘센트 하나 못 꽂아서 생일 아침부터 꼭 그런 말을 해야 해."
5월부터 수개월째 폭염이 오락가락했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완두콩알만 한 땀방울이 금세 온몸을 적셨다.
에어컨이 꺼진 폭염 속에 하루 2시간정도 쪽잠을 자며 지내고 있었다.
투잡 그리고 집에 있는 고양이 병간호, 1시간 거리의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을 오가고 나면 내가 잘 수 있는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2시간 정도였다. 일주일에 단 하루 정도만 그나마 6~8시간 정도 잘 여유가 있었다.
더위가 계속되면서 온몸 구석구석 땀띠가 번졌다. 화상을 입거나 가시넝쿨에 찔린 것처럼 따가웠다. 전구의 휴즈가 나간 것처럼 머리가 한 번씩 핑~ 돌기도 했다. 산송장처럼 눈만 뜬채 몸은 고장 난 로봇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걸 안다.
에어컨을 못 켜서 덥고 답답해서 해봐도 안되고 미안해서 말 못 하고 끙끙대다 도움을 청했다는걸. 알면서도 또 여과 없이 설움과 성난 마음이 터져 나왔다.
겨우 참고 있는데, 엄마 전화 한 통에 무너져 내렸다.
전화를 끊고 한참 울었다.
그 폭염 속에 나를 유일하게 끌어안아 주었던 삯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고양이가 가족인지 무언지 그런 의미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삯이는 나에게 그냥 존재 자체였으니까.
나와 똑같이 살아 숨 쉬고 오감을 느끼는 살아가는 존재.
나의 불안한 심장을 유일하게 다독여 주는 존재.
그런 존재를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아프게 보냈다.
삯이에게 나도 그런 느낌이었을까?
어린 내 눈에 아무런 표정도 없이 모든 감각과 감정을 거세당한 듯 몸뚱이만 겨우 움직이고 있었던 여성.
자기의 존재를 상실한 여성.
나는 그 여성을 보기만 했다.
그 여자의 등만 보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냥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 엄마.
교감을 나누고 체온을 나누는 걸 기대하기도 어려울 만큼 힘들어 보이는 사람. 힘든 엄마에게 무얼 기대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었다.
너무 아프고 힘들어도 그건 각자의 슬픔일 뿐이었다.
삯이도 그랬겠지.
이름을 불러주고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같이 있는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나라는 사람은 밥 주고 화장실 치워 주는 것 밖에 못했다. 먹고살아야 하니 돈을 벌어야지~ 하면서 기계처럼 돈만 벌고 집에 오면 그 잠깐의 쪽잠을 자기 바빴다.
부모님이 집을 떠나고 남은 우리의 생활은 엉망이었다. 부모님과 생활하는 동안 투잡 뛰고 공부하고 병원 쫓아다니고… 매일을 집에서 퇴근해 집으로 출근하는 것 같았다. 나 혼자 힘든 것 같았지만 집의 온기도 고양이 삯이의 윤기나는 털도 모두 엄마의 덕이었다.
나는 고양이와 나와 집에 그만한 온기와 정성을 쏟지 못했다. 그 사이 삯이는 노년의 고양이가 되었다. 삯이도 혼이 빠진 나의 등짝만 바라보며 예전처럼 한번 봐 주기를 안아주기를 기다렸을 거다.
삯이를 다시 안아준 건 이제 정말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가 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후였다.
회사 휴게시간 사이에 집에 들러 강제 급여를 하고, 계속 마음을 전했다.
눈 맞추고 안아주며, 너는 나에게 유일한 존재이고 최초이자 최고였음을 고백했다. 너는 사랑을 많이 받은 고양이였음을 잊지 말라고.
그리고 두려웠다.
이제 누가 날 안아주지...
폭염의 한가운데에서 뜨거운 화마 속으로 삯이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