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08 계단, 108 번뇌?
누군가 이 계단을 108 계단이라고 했다.
'108 번뇌도 아니고 108 계단?'
중간 골목에 있는 우리 집까지 계단 수는 총 58개.
예상보다 많은 수였다.
귀가 후 슈퍼라도 한 번 다녀오면 총 174개 계단을 오르내리는 셈이다.
구청에서 온 안내 문자엔 마포구 곳곳 수억 원씩 수선한다는 소식이 많은데,
이 계단은 여전히 고쳐지지 못했다.
'이깟 계단 고치는 게 얼마나 든다고.'
언젠가 계단 수리를 요청했지만 예산이 없다며 거절당했다.
결국 수리되지 못하고 겨울을 맞이한 계단은 저렇게 깨져
노인들이 낙상하는 사고가 있었다.
피부 재생이 늦은 동네 어르신의 얼굴엔 까칠한 상처가 붉게 번졌다.
노인이 된 엄마는 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말 그대로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의 허리가 점점 더 땅과 가깝게 구부러져 갈 무렵, 남동생이 먼저 결혼했다.
동생이 집에 다녀가는 모습을 본 동네 아주머니들은 부쩍 더 나를 불러 세웠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더 진절머리를 내면서 엄마의 고생담을 본인 일처럼 열을 올렸다.
"너희 엄마, 정~말 고생 많았지.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한다 싶었어."
"식구가 그렇게 많은데도 도와주는 인간 하나 없이.
100 포기 넘는 배추를 혼자서 이고 지고 이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아휴~ 독해 독해 지독해."
구부러진 몸으로 땅을 짚고 계단을 올라가는 엄마와
성공의 맛을 자랑하며 떠난 동생의 뒷모습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엄마가 참 고생이 많았어~. 동생이 잘 산대지?"
"네. 뭐."
동생은 동네 어른들께 수년째 자기 성공을 과시했다.
아파트에서 살라고 하는데 부모가 싫다고 거절한다며.
그 말을 들은 어른들은 다시 나를 붙잡고
"엄마 몸이 저렇게 힘든데, 동생은 왜 빨리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아들 돈은 서서 받고, 딸 돈은 누워 받는다더니..."
"..."
동생이 결혼하기 전, 부모님이 살 집을 보러 다닌 적이 있었다.
동생이 얼마나 많이 버는지 모르니 선뜻 부모를 위한 집을 사도 되는지 걱정이 되었다.
"너도 결혼할 사람이 생기면 집을 마련해야 할 텐데.
부모님 집 사주고 네 집이 없으면 싫어하지 않겠어?
소유는 네 거여도. 네가 얼마나 버는지 모르니 감당할 수준이 되는지 잘 따져 보고 결정해."
집을 먼저 사고 결혼하게 되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 된다고 말하던 동생은 그 후 아무 말이 없었다.
몇 년 후 결혼을 하면서 자기 수입이 2억이 넘는다고 고백한 후부터
그 수입의 몇 배를 번 10년 가까이 엄마는 이 계단을 번뇌하듯 오르내렸다.
동생이 잘 번다고 집 사주는 걸 당연하게 여긴 적은 없다.
월급의 전부 혹은 일부라도 매달 채무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동생에게 줄 때도,
동생이 결혼 직후까지 누나에게 해외여행이나 명품 가방 같은 걸 꼭 사주고 싶다고
말뿐인 고마움만 반복할 때도.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이 나이 먹을 때까지 부모한테 얹혀사는 게 정상이야."
실수령액 기준 월 400만 원 넘게 벌어도 빚 갚고, 생활비와 엄마 병원비까지 혼자 감당하고 있던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나는 여태껏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한참이 지나고 알았다.
분명 동생과 내게 비슷한 시기에 기회가 왔었다는 걸.
사전 동의 없는 낯선 방문자
그리고 이치에 안 맞는 계산법으로 계산기를 두드린 자에 의해
나는 영화 기생충의 집사 문광처럼 지하로 굴 떨어졌다.
문광처럼 그냥 이 집을 지키고 있었을 뿐인데...
집에 혼자 있던 날 처음 본 불청객이 가택 침입을 한 사건이 있었다.
문광이 기우네 가족에게 영문도 모르고 쫓겨났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낯선 방문자에 의해 나는 한 달 넘게 경찰서, 법률자문 등을
오가느라 내게 온 기회를 놓쳐 버렸다.
내 인생이 다시 절단되었다.
겨우 다시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 치던 시기였다.
좋은 기회가 한꺼번에 몰려왔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일순간에 모든 감각이 정전된 듯 아무 기능도 하지 못했다.
나는 피해자인데, 들어가면 자동으로 문이 닫혀
스스로 나올 수 없는 경찰서에서 밤샘 조사를 받았다.
감옥 체험을 한 기분이었다.
하정우가 출연한 영화 "추격자"가 흥행하던 시기, 그 영화 속 연쇄살인범을 피해
참새 슈퍼에 숨죽이고 숨어 있는 여자의 상태가 내 모습 같았다.
한참을 쫓기고 탈진한 것처럼 정신을 놓친 상태였다.
경찰서에서 밤샘 조사를 하고 형사와 동사무소 직원이 아직 젊은 여자가 억울하게
이런 일을 당해서 어쩌느냐며 가족들은 왜 가만히 있는지 물었다.
억울해도 조사를 받으면 심리적으로 한동안 힘들 것이라는 걱정과 함께.
처음으로 부모와 동생에게 울고불고 매달렸다.
제발 도와달라고.
이상한 가택 침입 사건을 같이 해결하자고.
처음으로 내게 온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내 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부모는 무념무상이었다.
처음엔 유난 떤다고 생각했고, 언제나 그렇듯 내가 인내하기를 바랐다.
동생은 그 일에 개입하지 않았다.
지인에게 이런 상황을 토로하니 왜 네가 그 일에 관여하느냐고 한다며
내게 괴로움을 토로했다.
"그런데 지금, 나 혼자 해결하고 있잖아..."
가난에서 탈출해 부자가 된 이들의 조언처럼
동생은 자기가 가야 할 부자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에 집중했다.
내 말은 들리지 않았고, 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둠 속으로 침잠했다.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널 때면 내몸이 물속에 깊이 빠진 것 같았다.
건널목 중앙에 서 있으면 버스로 달려들 것 같았다.
건널목 신호를 잘못 봐서 빨간 불에 위험하게 건너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누군가 내 뒷덜미를 잡아 살렸다.
그 후 동생은 결혼했고, 나에겐 이상한 계산법이 적용되었다.
동생이 나보다 많이 벌어도 너 먼저 살라고,
나 혼자 부모에 대한 비용과 시간을 감당했다.
투잡에 엄마 병원 동행, 치매센터 동행 등 포잡을 한 셈이다.
동생이 부모에게 용돈을 준다고해도
병원비는 오로지 내 몫이었다.
엄마의 인지장애를 발견하면서 어둠에서 다시 살아나
더 이상 병원비 감당 못 하겠다고 백기를 들기 전까지
정작 나 자신을 버려두었던 것이 처음으로 비참하게 다가왔다.
내 고통이 아닌 가족의 고통 앞에 일어나게 된 현실이...
엄마를 친할머니처럼 길을 잃고 헤매게 하는 일만은 막고 싶었다.
다시 또 막막한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등바등 악 소리도 못 내고 비싼 병원비를 내도
엄마가 나쁜 치매에 걸리지 않게 하고 싶었다.
아빠의 사업 실패로 야반도주하듯 한낮에 탈출했던 집.
할머니의 치매 간병이 길어지면서 그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 고장 나고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지경이 된
폐허 같은 동네, 폐허 같은 집에 남은 나는
최후에 남은 패자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스토리의 영웅 단계에서 주인공은 온갖 고난을 겪어야만 한다.
고난이 빠지면 영웅의 최후는 빛나지 않는다.
지금은 패하고 다쳐 손 쓸 수 없는 지경처럼 보여도
빛나는 영웅의 결말을 위해 마지막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내가 살아남았어야 했다는걸.
그랬다면 엄마의 허리가 휘기 전에, 지팡이를 짚기 전에
가족이 모두 행복한 탈출을 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