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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동네에 산다

ㅡ 2. 돌 덩어리 (무게 / 가치)

by 사색유희


출처:영화 기생충 포토 : 네이버 검색


영화의 장면들은

내가 아현동에서 살아 온

모습들을 다시 되짚어 보게 했다.






그 돌의 이름은 불운이었다.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암석처럼 커다란 그것을 불운한 돌이라고 했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동네가 재건축되었던 수십 년 전,

윗동네 아무개네 집 터에 있던 암석은 우리 집 터로 굴러 내려와 앉았다.

그 암석은 너무 커서 없애지도 못하고 그 위에 그대로 안 방이 만들어졌다.

방의 높이는 보통 사람 허리 위를 훌쩍 넘었다.

작은 키의 나에겐 머리 꼭대기에 방이 위치한 느낌이 들었다.

출입구를 기준으로 계단처럼 방마다 높이가 달랐다. 마치 기우네 화장실 구조와도 같았다.


정말 그 돌 때문이었을까?

대대손손 유복했다는 우리 집안은 그 돌과 함께 대재앙 같은 일들이 시작되었다.

옛날이야기에서라면 빠지지 않을 법한 흔한 비운의 스토리들,

능력자였던 할아버지의 타계로 가세가 기울고

할머니는 제일 잘난 자식과 제일 예뻐했던 며느리를 먼저 보내고 기타 등등

아버지와 그 형제들은 유복했던 유년시절을 잊지 못했다.


그 돌은 정말 상징적이었다.

산비탈 위에서 굴려진 가난과 불운에 무섭게 가속도가 붙었다.

그 속도는 공포스러웠고 무게는 압도적이었다.

가난을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무게에 짓눌려 고통만 커질 뿐이었다.

탈출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라면 그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수밖에..

“그 집은 이상해. 불운을 당기는 집 같아.”

이 가난을 벗어난 동생이 아직 그 가난의 무게에 짓눌린 나에게 말했다.

“나도 나가고 싶어.”

나가고 싶어서 탈출했던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탈출할 때 딱! 그 나이만큼 살아버렸다.

데칼코마니처럼.



아빠의 사업 실패로 중3 여름방학을 며칠 남겨두고 나고 자란 이 집을 탈출했다.

할머니는 중3인 나와 중 1인 동생을 나란히 앉혀 놓고 말씀하셨다.

아빠의 사정과 함께 1명만 같이 이사 갈 수 있다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가 가겠다고 했다.

처음으로 내 의견을 강력하게 관철했다.

한집에 살았어도 부모는 나에게 낯선 이방인에 불과했다.

나는 할머니 자식, 동생의 부모의 자식처럼 컸으니까...

부모를 쫓아간 것은 탈출,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부모가 있어도 보호되지 못하는 공간에서 이름뿐이라도 부모가 없다면 그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데칼코마니 같은 시간을 펼치고 보니 탈출의 기회인 줄 알았던 그 시간은 나를 찍어 누른 무기가 되어 있었다.

그때, 그 탈출 하지 않았다면...

내 시간과 돈을 가족과 동생에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도 나를 구할 수 있었을까?






기우는 친구 민혁으로부터 돌과 기회를 전달받는다. 의심 없이...

민혁이네선 넘쳐나는 돌 중 하나인 수석,

수많은 친구 중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을 만한 친구 기우에게 준 과외 기회.

그건 정말 선물이었을까?

거짓말로 얻은 기회이지만 기우네 식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다.

그 능력은 기회를 지키기 위한 욕망이 커지면서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들의 불행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라서 다른 방법을 찾을 줄 모르는 무식.

그것이 그 불행의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니었을까?

충숙의 말처럼 먹을 거나 사 왔으면,

아님, 돌을 돈과 바꿨더라면...


민혁의 말처럼 가치 있는 수석인지는 몰라도 단돈 얼마에라도 팔 수 있었다면

돌을 칫솔로 박박 문질러 닦는 대신 팔아서 가족만의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면 어땠을까.

작은 반찬 가게를 열어 엄마는 조리, 아빠는 배달, 기정이는 마케팅, 기우가 판매를 했어도

그들만의 새로운 삶을 열 수 있지 않았을까?

굳이 거짓말 따위 하지 않아도 꼬리에 꼬리 물듯 이어진 불행이 싹을 자를 수 있었을지도..

돌은 누구에 의해 가치가 매겨지는지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진다.

거짓말이라도 유명한 누군가 근사한 가치를 매기는 순간 흔해 빠진 돌도

수석이라는 이름과 함께 비싼 가격표가 붙을 수 있겠지.


근사한 돌이라도 길바닥이나 냇물의 수많은 돌에 묻혀 있다면 흐르는 물의 배경 중 하나일 뿐이다.

기우네 가족들은 거짓말로 얻은 기회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발현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그 가치를 스스로 알아보지도 개척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도 못한다.

자신의 가치를 몰라보고 사용 방법을 몰랐다는 것. 그것이 진짜 불운 아닐까?

자기 가치를 몰라서 자신의 손에 쥐어진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고 무기로 만드는 무식.

기우네 가족이 자기 가치를 알았다면 산수경석을 살인무기로 쓰고

죄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일 따위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무식 보다 무지가 더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몰라서 자기 자신을 벼랑 끝을 몰고 가 버리고 만 무식도 무지와 똑같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생충은 계급을 못 박아 놓은 것이라고도 하고,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세상이라고도 한다.

그것 역시 기생충 계급이 선을 넘어 상류층 계급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상실감을 부여하고 싶은

또 다른 욕망 가스라이팅 아닐까?

사람들이 기생충 동네라고 부르는 이곳에서도 용이 났다.

내 동생은 자수성가로 강남에 입성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찍 이 동네를 탈출한 이웃들도 각자의 부를 달성했다.

물론 개천을 벗어난 용들은 개천을 기억하지 못하고 이곳에 남은 사람들을 비웃는다.

그러나

아주 드물 뿐 개천을 날아오르는 용은 다시 또 탄생할 것이다.

이곳에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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