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대장 아파트와 아현동 포장마차
진돌이는 사색을 즐기는 외출냥이었다.
마포 대장 아파트가 탄생하기까지 동네가 재건되는 과정을 내내 지켜봤다.
진돌아 너도 아파트 살고 싶어?
언니는 아파트는 영 불편하고 힘들어.
이상하게 아파트에서 자고 일어나면 온 몸이 아프더라고.
물론 아파트 갈 돈도 없어.
그래도 진돌아 우리가 보는 풍경이 더 멋지지 않아?
우리는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고 사는데,
저쪽에선 찌글찌글한 거 보기 싫다고 눈쌀 찌푸리고 손가락질하기 바쁘잖아.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재미가 있는데 말이야~
저기도 우리가 살았던 곳인데...
저 언덕은 아빠의 사업이 망하고 잠깐 이사를 갔던 동네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치매로 월세 보증금 마저 탕진하고
다시 이쪽 언덕으로 돌아왔다.
상처가 빈틈없이 새겨진 집으로.
새 아파트가 생기기 전까지는 몰랐다.
기존의 낡은 것들이 눈엣가시가 될 줄은…
아직도 코 끝에 베인 냄새가 추억이 될 위기에 놓인 것도.
화력 쎈 가스불에 뚝! 딱! 만들어진
아현동 포장마차 ‘우동1번지‘ 대표 메뉴 곰장어 볶음.
그 냄새가 아직도 생생하다.
불맛 가득 입은 곰장어의 톡.톡. 터질 것 식감에
상큼한 양파의 아삭한 식감이 더해진 조화는 일품이었다.
아현동 명소였던 포장마차 거리는
아현 초등학교 담벼락 뒤로 수십년 동안 자리를 지켰었다.
가게 이모들 마다 대표 메뉴가 달랐다.
친한 친구들끼리도 각자 단골집이 달라 셀프 호객을 하기 바빴다.
오늘 뽑기에 당첨될 집은 어디가 될까?
그 신경전을 지켜보는 이모들의 눈치는 치열했다.
손님이 있는 곳으로 새로운 손님이 모여 들었으니까.
어느곳이든 단 1만 원이면 푸짐하고 맛있는 안주를 먹을 수 있었다.
갓 썰은 당근과 상콤한 향기가 알알이 터지는 오이,
두툼한 계란말이와 후춧가루 팍팍 넣은 초등학교 떡볶이 가게 스타일의
오뎅국물은 어느 가게나 기본 서비스였다.
그 맛이 하루의 피로를 녹였다.
젊음의 허기를 친구들과 그곳에서 달랬다.
굳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좋았다.
안주 하나, 우동 하나, 콜라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했다.
나름 오마카세식 이모들의 요리 향연을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정사각형 컨테이너 안에 ㄷ자 테이블을 두고 주방장인 이모는
정중앙 무대에 손님인 우리는 ㄷ자 테이블에 둘러 앉아
그날 그날의 피로와 위로를 나누었다.
가게들은 동남아 어느 여행지 못지 않게 훤하게 밤을 밝혔다.
너무도 어둡고 음침한 그 골목을 무섭지 않게 지날 수 있었다.
얼핏보면 취객들로 가득차 보여도
오히려 그 길이 사람이 많아 더 안전하기도 했다.
이모들 대부분은 포장마차를 등지고 언덕으로 이어지는 동네에 살았다.
지금 마포 대장아파트가 된 곳이다.
그 언덕은 삶의 터전이었고,
그 언덕 아래 길목의 포장마차는 생계수단의 터전이었다.
아주 오랜동안 포장마차를 합법화하여 정당한 세금을 내고,
청결한 환경에서 장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했지만 번번이 거절 당했다.
그런데 동네가 탈바꿈되면서 포장마차 거리는
가장 먼저 유해한 것이 되었다.
이 동네에서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것.
그 첫 번 째 타깃이었다.
이모들 중 누군가는 언덕 위 삶의 터전과 언덕 아래 생계 수단을 모두 잃었다.
낯선 이들의 등장으로 익숙한 공간에 낯선 풍경들이 펼쳐졌다.
너무도 순식간이었다.
새로 탈바꿈된 아파트에는 기존에도 부자였던 이웃들도 그대로 살고 있다.
더 잘 사는 부자들이 이사오기도 했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많았다.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이제 막 부자에 합류하고 싶어하는 일부 행태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저 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 뿐인데,
대장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소리가 묵인된 것 같았다.
상생할 수 있는 다른 묘안은 없었을까?
오랜 세월, 인적드문 어두운 길을 밝혀주던 포장마차는
갑자기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아현역 3번 출구 앞엔 작은 촛불이 모였다.
작은 촛불은 대장 아파트의 입김에 순식간에 꺼졌다.
마포구 면적 23km 가량, 마포구 인구 30~40만명 가량 중
대장아파트 3,885세대가 마포구 전체의 소리를 낸 것처럼 보였다.
왠지 소수에게만 요란했던 작은 투쟁은 결국 점화되었다.
철거된 자리에는 커다란 화분이 블럭 처럼 놓였다.
한동안 헌화하는 마음으로 그 거리를 지났다.
고작 저 화분 하나로 대체 하기 위해 누군가는 생계를 잃었다.
마포구의 권리를 위해 철거된 그 자리에 나의 의견은 포함되지 않았다.
나 역시 이곳에서 화분 하나로 대체 될 수 있는
가난한 자리에 있다는 현실을 느꼈다.
아현동에서 나고 자라면서 개발이 안되는 게 이해가 안됐다.
아현동 만큼 교통 입지가 띄어난 곳이 없어 보였다.
박물관, 영화관, 쇼핑몰 등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요소들이
근거리에 있어서 동네의 노후화만 개선되면 가치가 뛰어난 곳이라고 생각했다.
강북 대부분의 낡은 그대로 방치된 동네들처럼
아현동도 한국 전쟁이후 초가집이나 기와집에서 빌라촌으로
재건축 된 이후 방치되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선 빈집이 늘어나고 집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 없다는
불안감과 그 소문이 퍼지면 두려움이 번질까 쉬쉬하고 있었다.
아현1동~3동까지, 아현 2동과 3동이 재개발 되는 동안에도
아현1동, 아현1구역은 여전히 낡은 그대로이다.
언제 부서져도 이상할게 없고
군데군데 빈집이 곰팡이처럼 번져간다.
영화의 유명세가 동네를 훓고 간 후
동네에 남은 건 '기생충'이라는 세글자다.
저쪽 언덕에 마포 대장아파트라는 별명이 생기는 동안
이쪽 언덕엔 마포 '기생충' 동네라는 별명이 붙었다.
나는 이쪽 '기생충' 동네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