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이웃끼리 이러지 말자(네 거도 내 거도 모두 내 거) 2025년 9월
한낮의 햇살은 눈부시게 그녀를 비췄다.
그녀는 햇살에 잔뜩 구겨진 눈을 손으로 가리고 말했다.
"OO 씨~ 여기 옥상 벽 때문에 우리 집에 그늘이 져서~"
나는 전에 보인적 없는 불쾌한 표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거기, 햇볕이 허리 아래까지 비추는데요?"
"아니~ 그래도 옥상에 가리개 한다고 미리 말을 해줬어야~"
"왜요? 우리 집 가리는데, 왜 거기 허락을 받아야 해요?
게다가 법정 높이 아래로 만들었는데?"
"....."
옥탑방은 집에서 유일하게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었다.
냉난방은 안되어도 가장 편하고 따뜻한 곳이었다.
옥탑방 앞 옥상 공간엔 빨래를 널거나
작은 식물을 키우는 공간이 있었다.
맞은편 집과의 거리는 2M가량으로 창문을 열면
바로 우리 집 옥상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새로 건축한 예술인 주택에 입주한 화가라고 했다.
예술인 주택엔 공유 공간이 있지만 바로 옆 낡은 골목에
세를 얻어 화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음악을 크게 트는 것으로 화실 출근을 알렸다.
어느 날, 그녀가 화실로 초대했다.
부모님이 도망치듯 이사하고 한참 지난 후였다.
동네 바로 옆 새로 건축한 예술인 주택에 살며, 이곳은 세를 얻어 화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빠가 옥상에 화초를 가꾸러 올 때마다 담소를 나누었다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동네의 면면을 올린 페이스북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는 자랑하듯 자신이 올린 우리 집 사진을 설명했다.
빨랫줄에 우리 집 빨래가 줄줄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낯익은 고양이 그림 하나.
그녀는 고양이에 다른 이름을 붙여 부르고 있었다.
귀 끝에 안테나처럼 5mm 정도 쫑긋 선 털까지
우리 집 고양이의 특징을 잘 살린 그림이었다.
만약 내가 자녀가 있었다면
그리고 내 자녀의 그림이 낯선 이의 방에 걸려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놀라움과 불쾌함이 동시에 스쳤다.
예술인 주택이 들어서고 왠지 동네가 밝아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녀에게 이곳은 그림 그리는 작업 공간이지만
나에게 동네 사람들에게 이곳은 생활하는 곳이었다.
하루 종일 열린 창문으로 물감이 마를 때까지 화학 성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온전한 조용함을 누리고 싶은데, 기분과 상관없는 음악을 들어야 했다.
달빛 하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어두운 동네,
화실 옆 빈 집의 열린 창문을 넘나드는 스산함이
그녀의 그림과 이어지는 모습일 땐 더 불쾌해졌다.
가끔은 초대한 사람들에게 옥상에 널브러진 우리 집 고양이나
풍경을 전시하는 가이드 같기도 했다.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거주할 때도 이 짧은 거리엔 암묵적인 매너의 간격이 있었다.
창문 가리개를 하거나 모른 척하는 시선 등.
그런데 그녀는 왜 나의 어둠을 빌어 자신의 예술에 도취된 것일까?
아니면 내가 같은 여자라서 온 종일 창문을 훤히 열어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까?
창문을 열면 보이는 공간이니 내 생활 공간을 마음대로 전시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걸까?
마르지 않은 화학 물감 냄새 같은 그녀만의 예술을 피해
나는 옥탑방을 버리고 아래층으로 생활공간을 옮겼다.
해를 가리는 문제 이후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아이들도 저도 모두 몇 천만 원 임대주택 사는 이들인데
OO 씨가 더 부자인 것 알아주면 고맙겠네요."
동네에 몸 값이라는 게 생겨나면서부터
그녀는 번번이 내가 더 부자라고 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빚 갚고 단 돈 몇백이 없어서 오갈 데 없이
폐허가 된 집에 남은 내게 그 문자는
'이 동네가, 내가, 기생충이 맞는구나...'라는 자각이 들게 했다.
임대주택 몇 천만 원에 세를 얻은 화실의 몇 천만 원이면
낡은 집이라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낡은 고통을 이겨낼 용기만 있다면...
그때 임대주택과 세 얻을 돈으로 이 동네 다 쓰러져 가는 집을 샀더라면...
이제야 그런 후회가 들겠지.
단 돈 얼마라도 깨끗한 환경의 주택에서
마실 하듯 세 얻은 화실로 "아름다운 풍경" 운운하며,
사람들의 고통을 찍어 나르는 그녀의 예술병은
동네 사람들에게 고통의 모서리를 찌르고 있었다.
예술병은...
벗어나지도 아우성 칠 힘도 상실한 채 슬픔을 거세해 나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기우네가 "야~ 이거 뭐야~ 이런데가 다 있어"
그 아래 지하세계를 자기보다 못한 가난처럼 구경하다가
종단에 자기가 그 아래로 굴러 떨어져
더 못한 사람을 자처하는 것처럼...
그녀 역시 가난한 동네에 화가라는 이름에 도취되어 있다가
천지개벽한 집값에 상대적 빈곤으로 굴러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피투성이 된 문광이가 "불우이웃끼리 이러지 말자~"했던 대사가 맴돌았다.
스스로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하고 가난에 주저 앉은 처지끼리
부자가 된 남의 집에서 아귀다툼 하는 게 무슨 소용이었을까?
이 가난한 동네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나
좋은 재주와 재원이 있어도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한 그녀나
기우네 가족이기도 문광네 가족이기도 한 것 같았다.
예술이라는 미명아래 허락도 없이 조명하는
예술가라는 이름에 구토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