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ish Feb 11. 2020

당신에게도 필요한 야마모토

〔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

덧붙이는 말 -

 취준생이 되기 전, 대학생 시절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이제는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지금에서 이 글을 다시 마주하니 기분이 참 새롭네요. 글쓰기는 정말 소중한 것 같아요. 과거의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살아갔는지 이렇게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어느새 2020년이다. 올해 나는 26살이 되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그 숫자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사실은 조금 두렵다. 천진난만하게만 보였던 친구들은 점점 한 명씩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퇴사하고 싶다며 상사 욕을 늘어놓던 친구들의 말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맥주잔에 입만 홀짝댈 뿐이었다. 공감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이 어리게만 느껴졌다. 20대 초반에는 '절대로 회사원은 되지 않겠다'며 나만의 자유로운 인생을 꿈꿨다면, 지금은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문과생은 어디로 취업해야 하지? 결국은 영업 혹은 마케팅을 준비해야 할까? 너무 뻔한 인생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무언가에 열정을 쏟고 싶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야마모토와 아오야마 (출처 : 인사이트)

끔찍한 생활의 끝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아오야마도 분명 나와 같았을 것이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당장 해야 할 일들에 치이고 치이다 보니 어느새 직장인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현실을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오야마의 일상은 그 자체로 전쟁이다. 영업사원인 아오야마는 자신의 직장 상사인 영업부 부장에게 매일같이 깨진다. 영업부 분위기를 숨 막히게 만들고, 고지식하며 사원들에게 항상 못되게 구는 영업부 부장의 캐릭터는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판타지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못된 직장 상사의 면모를 다 갖추고 있어,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아오야마의 선배인 이가라시는 아오야마를 도와주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아오야마의 아이디어를 가로채 그를 궁지로 몰게 만든다. 아오야마의 친구는 적어도 회사 안에서는 존재하지 못했다. 직장 상사는 물론이며, 자신을 도와주는 줄 알았던 선배 이가라시마저도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직장인의 삶을 들여다보자. 하루의 반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곧 자신의 적으로 가득찬 전쟁터와 같은 아오야마의 삶. 결국 그는 이런 끔찍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 한다.


아오야마와 야마모토, 그리고 변화


 그런 아오야마를 도와주게 되는 건 바로 야마모토. 야마모토는 순수하다. 순수한 시골 청년의 모습인 야마모토는 경직된 아오야마를 변화시키려 노력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우리들 모두에게 '각자만의 야마모토가 과연 존재할까'하는 의문이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서로가 기쁨으로 마주할 때 각자의 존재 역량이 긍정으로 충만해진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를 기쁘게 대해줄 '야마모토'는 우리 주변에서 찾기 힘들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으로 대해도 부족할 힘든 세상이지만, 남에게 기쁨을 전해줄 정도로 여유롭지 못한 우리는 만날 때마다 하소연만 되풀이할 뿐이다.


 영화는 야마모토를 만나고 변화한 아오야마가 부장에게 '꼰대처럼 잘 사세요'라고 외치며 시원하게 한 방 먹이고 멋지게 퇴사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후련했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씁쓸했을 것이다. 자신은 아오야마와 같은 도전을 할 용기가 없기에, 아오야마의 멋진 도전은 부럽기만 하다. 현실에서의 대안은 될 수 없다며 스스로를 비관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신에게는 무엇이 중요한가요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들을 위로할 수 있다. 자신과 닮은 아오야마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다. 삶이 힘들지만 퇴사는 주저하던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다. 더불어 영화는 아오야마가 '잠시 잊었던' 소중한 가치들을 다시 되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오야마가 고향에 갔을 때, 부모님을 뵈었을 때, 부모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아오야마를 맞이하고 반가워했다. '성공' 외에는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았던 부장과 선배 이가라시의 면모와 극과 극의 대비를 이루게 된다. 이를 보며 현실의 사람들은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는 주위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 꼭 가족이 아니어도 괜찮다. 야마모토처럼 또래의 친구거나, 동네 이웃이나 동호회 동료 혹은 심지어 같이 지내는 강아지와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떠올려도 좋다. 영화는 바쁘기만 한 우리에게 '무엇이 소중한지' 계속해서 묻는다. 야마모토의 쌍둥이의 죽음은 야마모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고 결국 스스로 하여금 아오야마를 돕게끔 만든다. 결국 중요한 건 우리 자신이며, 우리를 소중히 대하는 모든 존재들이다. 그들의 소중함을 기쁨으로 맞이할 때, 그들도 기쁨의 감정을 느끼며, 이것이 모여 각자가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강한 원동력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출처 : 씨네 21


'퇴사'가 정답은 아니더라도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이야기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힘든 삶을 살아가지만 충분한 위로를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야마모토는 아오야마만을 챙기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용기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퇴사한 아오야마의 삶이 꼭 성공하지 못해도 된다.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퇴사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계속해서 물음을 요구할 뿐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내 인생이란 무엇인지.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영화를 통해 우리는 적어도 스스로를 돌아볼 잠깐의 공백의 기회를 가져볼 수 있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사이의 공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