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양갱

by 소형


봉사하시는 방문 미용사분께 머리 자르는 알뿌리 같아진 할머니
할머니 입원중에 그린그림

시민대학이 공사를 하게 되어 소음 때문에 카페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는 날이다.

수업을 함께 듣는 선생님 한 분이 수업 중 함께 먹자고 싸오신 양갱을 꺼내 놓으신다. 어째서 하필 양갱이었을까? 꺼내두신 봉지 안에 학생 수만큼 수북한 양갱을 보며 할머니 생각을 한다.

할머니는 양갱을 좋아하신다. 슈퍼에서 군것질거리를 사 올 때면 봉지를 건너보시며 양갱은 없냐? 하며 기웃거리신다. 그런 할머니에게 두고두고 드시라고 양갱을 열 개씩 사다 드리면 ’이걸 이렇게 먹으면 살찌지! 하며 안절부절 불편해하신다. 할머니는 배가 많이 나온 뚱뚱이 할머니다. 살이 찌면 무릎도 아프고 건강에 안 좋으니 많이 드시지 말라는 아들과 다섯 딸들 성화에 그 좋은 식욕을 가지고도 드실 때마다 살 걱정을 하신다.


할머니는 까다로운 사람이다. 입맛도 까다롭고 성격도 까다롭다. 다리도 아프고 심장도 안 좋아서 자주 밖에 못 나가시는 할머니의 낙은 TV 보기와 맛있는 것 먹기인데 여름이 되면

"아휴 왜 이렇게 입안이 마르냐. 시원한 것 좀 없냐?"하시며 부채질을 하신다.

"할머니 주스 줄까? 주스?"하면 "아휴~ 주스는 달기만 하고.

" 그럼 물 줘? 할머니?" 하면 딴 데 보시며 "요즘에는 여름에 참외가 안 나온 데냐?" 하신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참외 사다 달라 하면 될 것을.

“난 흰 우유는 비려 못 먹어” 딸기 우유.

“짜장면에 시커먼 게 쏟아져 나오는, 그거 나는 싫더라” 간짜장.

“커피는 다른 건 냄새나. 왜 그 초록 모자 쓴 커피 그거 뭐더냐? 그것 좀 타와라.”맥심 모카골드


중학생 때부터 할머니와 살았는데 할머니가 밥 한번 해준 적 없고 만원 한 장 주신 적이 없다. 옛날 사람인 할머니는 아들 선호가 당연하게 물들어 있는 분인데 사촌 오빠 동생들이 줄줄이 전부 아들이다. 첫째가 딸인 우리 집에서 언니는 첫 딸이라며 이쁨 받았고 내 남동생은 아들이라고 대우받는데 중간에 끼인 나는 뱃속에서 요란스러워 아들인 줄 알았는데 낳고 보니 딸인 애매모호한 존재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 심지어 산아제한정책의 80년대 초였다. 할머니 눈에 내가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거 같다. 살갑게 대해주신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머니가 좋았다. 그냥 집안에 어른이 있어 좋았고 딸네 집에 사위와 살면서도 주눅 들지 않는 그 아이 같은 고집도 좋았다. 할머니가 좋았던 나는 옛날에는 음식이 귀해 감자도 숟가락으로 까서 삶았는데 감자는 그렇게 삶아야 맛있다는 할머니 말에 아직 말랑하던 내 어린 손이 피가 맺혀 빨개지도록 숟가락으로 감자 열 개를 까고 당원 넣고 삶아 할머니 계신 아파트 경로당에 가져다드리기도 하였다. 숟가락으로 깐 감자라서 일까? 확실히 그때 경로당의 할머니들에게 착한 손녀라고 칭찬받으며 먹은 감자는 너무나 맛있었다.


심장이 안 좋은 할머니는 약을 많이 드셨는데 밥을 맛있게 드시고 약을 드시며 "어우 써 어우 써! 맛난 밥 먹고 입맛 다 베리네 하신다." "밥 먹기 전에 약을 먹으면 되지~?" 하면 "그럼 속을 베리지." 내 생각에는 밥을 먹고 바로 약을 먹으나 약을 먹고 바로 밥을 먹으나 위에 들어가면 똑같을 거 같은데 독한 약이라 그렇지가 않은가 보다. 입이 쓰다고 과자를 드시며 "내가 이러니까 살이 찌는 거야" 하시는데 입맛 살리는 과자에 가는 손이 멈출 줄을 모른다. "아니야 할머니 많이 먹어서 찌는 거야" 하면"아이 쿠야! 내가 언제 이렇게 먹었냐" 하시며 봉지를 접어두고 입맛을 쩝쩝 다신다.

할머니는 심장이 안 좋아 먹던 그 많은 약의 독으로 신장 역시 나빠지셨다. 병원에 한 달가량 입원하실 때 나는 병원에서 숙식을 하며 할머니를 돌보았다. 신장이 안 좋으면 아삭한 생야채와 생 과일을 먹으면 안 돼서 통조림만 드셨는데 항상 오이 반개만 아삭아삭 씹어 먹었으면 좋겠네 하셨다.

그 왕성하던 식욕도 점차 줄어 구역질이 나오신다며 밥도 잘 안 드시고 빈속에 약을 드시니 위가 상했나 보다. 할머니 말처럼 밥을 먹고 약을 먹어야 하는데... 나중에는 위암이 생긴 할머니는 연세가 너무 많이 드셔 수술이 힘들다는 의사의 말에 결국 치료를 중단하였다. 할머니는 그제야 드시고 싶은 아삭한 것을 드실 수 있었다.

할머니 장례식, 상복에 꽁꽁 싸인 할머니는 그렇게 많이 못 드셨는데도 뚱뚱했다. 아마도 안 먹어서 빠질 살이 아니었던가 보다. 할머니를 보내 드리며 후회 없음에 놀랐다. 할머니 등에서 업혀 크다시피 한 사촌 형제는 할머니 미안해하며 엉엉 울었다. 나는 할머니 잘가 라고 속으로 속삭였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못 먹은 음식 많이 드시길....


달콤한 양갱을 얇게 썰어와 쌉싸름한 녹차와 함께 녹여 먹으며 할머니를 생각한다. 취향 확고하고 까다로웠던 만큼 할머니는 구체적으로 남아있다. 나는 참외를 먹으며, 딸기 우유를 먹으며, 간짜장을 먹으며, 맥심 모카골드를 먹으며 할머니를 생각한다. 죽는 날까지 아들 손자들만 찾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섭섭하지 않다. 나에게 해준 것은 별로 없지만 많은 것을 주셨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서 존재했다. 아무리 사랑을 드리고 드려도 미안해하지 않고 부담 없이 척척 받으셨다. 그래서 나 역시 생색내지 않고 마구 드릴 수가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자신을 사랑하는 수백의 사람보다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 수많은 사림들에게 사랑받는 연예인은 행복해 보이지만 자살하기도 하고 병든 가족을 돌보는 사람은 불행하고 힘들어 보이지만 씩씩하게 웃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돌봄으로서 그 이의 웃음에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게 되고 몰랐던 자신의 강함도 깨닫게 된다. 할머니 덕에 나는 더 좋은 사람일수 있었고 더 강한 사람 일 수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럴만한 사람이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받을 만한 가치라는 것도 없다. 사랑은 하는 사람을 가치 있게 만든다. 그러니 지금 같이 있는 여러분 많이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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