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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융 Oct 10. 2017

장님이 되어가는 인간들

릭샤꾼 리.

 내가 떠나와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강단에 올라 설교하고 있는 저 사람이 아닌, ‘툭’ 치면 성경을 줄줄 외울 수 있는 저 사람이 아닌, 길거리에서 나뭇잎을 쓸고 있는 꽃무늬 치마를 입은 노년의 인간에게서 예상치 않은 진리의 소리를 들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가끔 닥쳐오는 그 경험들은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뺨을 맞는 것만큼이나 당황스럽고 또 거세다.





“나 저거 타고 싶어.”


말레이시아 페낭 길거리를 샤오와 함께 거닐던 중에 그녀가 한 말이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릭샤꾼 하나가 남 녀 두 사람을 태우고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페낭은 저녁인데도 찌듯이 더웠다. 저걸 타면 조금이라도 더위가 가실 것만 같았다. 게다가 우리가 가기로 한 공연이 시작되는 시간까지는 두 시간 여가 남아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내가 그러자 했다.


하지만 릭샤꾼들은 아무 곳이나 서있지 않았다. 릭샤꾼들이 몰려 있는 곳이 길 끝에 위치해 있었다. 샤오와 나는 더위에 벌게진 얼굴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갔다. 마침내 길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여러 릭샤꾼들이 저마다의 릭샤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했다.


중요한 것은, 페낭은 관광도시기 때문에 사정을 잘 모르는 여행자들이 오면 장사꾼들이 두배 혹은 세배의 가격을 후려(?) 친다는 것이다. 다년간의 여정으로 나는 이미 장사꾼들이 값을 부르면 그 반을 불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흥정을 하기보단 적당한 선에서 넘어가 주는 걸 좋아했다. 흥정이라는 게 사실 내 이익을 위한 거 같지만 그 자체가 어떤 소통과 장난 같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흥정이라는 행위 안에서 웃음을 주고받게 될 때가 많다.


하지만 모든 흥정이 그렇게 좋게 끝나는 건 아니다. 특히 관광도시들은 관광객들이 너무 많다 보니 장사꾼이나 관광객 서로가 서로를 어떤 존재가 아닌 수단으로만 여기고 말과 행동을 뱉는 경우가 많다.



나와 샤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상에 불만이 많은 듯 잔뜩 찡그린 얼굴로 가래침을 뱉고 있는 릭샤꾼이 보였다. 패스. 우리는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주변에 다른 릭샤꾼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인상이 좋아 보여 우리는 그의 앞으로 향했다. 인사를 했는데 릭샤꾼이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답이 없는 그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얼마나 내야 하냐고 물어봤더니 그가 조금의 정적 끝에 60링깃을 달라고 했다. 거짓말인 게 분명해 보였다. 우리가 30링깃으로 해달라고 말하니 그가 인상을 확 찌푸리더니 짜증을 있는 대로 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오케이 바이 하고는 뒤를 돌아서는데, 뭐라 뭐라 뒤에서 짜증스레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주위를 다시 둘러보고 있자, 주변에 있던 릭샤꾼이 우리 옆으로 호객행위를 하러 왔다. 우리가 가격을 물어봤는데, 그가 60링깃을 불렀다. 이번에도 거짓말인 게 뻔했다. 우리가 30링깃을 다시 부르니 그냥 가라고 했다. 이쯤 되니 진짜 60링깃이 맞는 가격인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40분 거리에 60링깃이라니, 만약 그게 제 가격이라면 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기 전에 다른 릭샤꾼에게 한 번 더 물어보기로 했다.



 앞을 보니 저기 릭샤꾼이 한 명 서 있었다. 늙은 인도인이었는데, 다른 릭샤꾼이 호객행위에 열을 올리는 반면, 그는 그냥 가만히 릭샤 앞에 서 있었다. 우리가 그의 앞으로 가니, 그제야 그가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그가 우리를 보고는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네 왔는데, 두 번의 실패에 조급했던 우리는 그의 얼굴도 보지 않고 대충 인사를 받았다. 우리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목적지를 말하고, 거기 가고 싶은데 적절한 가격이 어떻게 되냐고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 때쯤은 우리도 지쳐서 별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별 생각 않고 바로 25링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놀랐다. 앞의 두 사람이 이야기한 가격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아까 물어봤던 릭샤꾼을 째려보았지만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가격이 내려가니 그건 또 그것대로 불안했다. 우리가 외지인인 만큼 어디로 데려가도 잘 모를 것이다 생각하니 무서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눈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진짜 이 가격이 확실한 거냐고 물어보았고, 그가 정말 그렇다고 간단히 답했다.


우리가 돈을 건넸고, 그렇게 우리는 그의 릭샤에 타게 되었다. 그에게 호기심이 생긴 우리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의 이름이 리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열여섯 살 때부터 릭샤꾼 일을 하기 시작했고, 현재 그의 나이는 일흔여섯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육십 년의 시간 동안 그는 릭샤꾼으로 일을 해 온 것이다. 그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가 자신에게는 어디나 집이라고 했다. 어디에나 몸을 뉘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길에 릭샤를 세워놓고 릭샤 위에서 잠을 청하거나 길에 누워 잠을 자곤 했다. 그러면서 그가 말했다.


"신은 우리가 필요한걸 꼭 준다"

 

그에게는 먹을 것을 살 돈 마저 없을 때가 있었다고 했다. 릭샤꾼 일도 잘 되지 않았을 때, 한 외지인 처녀가 두 시간 여 그의 릭샤를 타고는 그의 한 달치 생활비를 주었던 일이 있었다고 했다. "신은 우리가 필요한 걸 꼭 준다" 그가 다시 한 번 말하며, 그녀가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름답다는 말은 외면에 대한 말이 아닌 듯 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이런 말을 던졌다.


많은 사람들이 눈이 멀어있다.


나는 그에게 그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았다. 바람을 가르는 릭샤 소리에 그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들 안에 뭔가 타고 있다.

뭔가 뜨거운 게 안에서 불타고 있는데,

근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엉뚱한 걸 보고 있다. ”


그때, 릭샤를 타고 지나가는 샤오와 나를 보고 길거리에 서 있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 눈빛들에 오염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 순간적으로 밀려왔다. 그가 다시 한번 말했다.


“사람들이 다 눈이 멀어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알지 못한다. 한 때는 알았지만 이제는 잊어버렸다.”


갑작스레 뺨을 맞은 듯이 멍한 기분으로, 나는 뒤를 돌아 지나가는 그 한 무리의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게 상대를 물체화 하는 저런 식의 추파가 아니라, 뭔가 따뜻한 것. 그들 사이에서 어떻게 보이기 위한 저런 꾸밈 안에 있는 따뜻한 사랑에 대한 갈구, 나아가 누군가와 일체一體가 되고 싶어 하는 바람이 아닐까.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가 얼마 후 우리를 목적지에 내려다 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어느새 꽤 시간이 지나 있었다. “고맙습니다.” 우리가 인사를 건넸다. 그 "고맙습니다" 라는 말속에 복합적인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나도 고맙습니다.” 그가 웃으며 인사를 받아 주었다. 그가 다시 릭샤에 올라 서려는 찰나, 내가 그를 붙잡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여행 경비 일부를 뚝 떼어 그에게 건넸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의 릭샤 위에 타고 있던 시간이 그만큼 값졌다.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했다. 고맙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왠지 부끄러워졌다. 내가 보답할 길이 돈이라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 왠지 부끄러웠다.


그가 뒤를 돌아 다시 릭샤에 올라탔다.

그가 빠르게 발을 놀리며 골목의 끝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뒷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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