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융 Oct 07. 2017

당신과 우주

배추와 별로부터 인간을 발견하다

칼리드가 얼마 전 심은 새싹들이 하나 둘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얀 팻말에는 Chinese cabbage라고 쓰여 있었다. 말레이시아 사바 주의 작은 마을에서 보는 중국의 배추였다. 저 씨앗도 나와 같이 먼 길을 왔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떻게 여기 온 걸까. 그래, 나는 흙을 만지며 일하고 싶어 했다. 평소 자연 순환 유기농법에 관심이 많던 내가 이 곳으로 오게 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조용한 산속에, 인적도 드물다 했으니, 딱 내가 필요로 하는 곳이었다. ‘많음’ 보다는 ‘간소한 것’이 필요했다. 이상하게 ‘많음’ 속에 머무르다 보면, 내 삶은 오히려 좁아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농장에 연락해서 일손이 필요한지 물어보았고, 한 달 동안 무일푼으로 일을 해주는 대신, 숙식을 제공받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농장에는 밭에서 일할 일손이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사바주 토착 원주민의 후손인 리가 농장주였고, 칼리드와 아왕은 그 농장에서 일을 하는 농부였다. 특히 칼리드는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말레이 계통의 이십 대 후반 청년 농부였는데, 장난기가 아주 많아 나와 빠른 시간에 친해지기도 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가끔 종자를 심거나, 농장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사실 관리라고 해봤자 간단한 청소를 하는 일이 주였는데, 그 마저도 많지 않아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농장 뒤편에 놓인 큰 나무 앞에 앉아 자연을 관찰하거나 혹은 명상을 하는 일로 보냈다. 때때로 바람이 흩날릴 때마다 나무는 그 잎사귀의 날갯짓을 타고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바람이 날릴 때마다 잎사귀가 나부끼던 그 노랫소리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배추 종자에 싹이 나기 시작한 이후로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이제는 떡잎을 하나씩 내기 시작했다. 게 중에는 떡잎 아래로 본잎이 나오기 시작한 아이들도 있었고, 그런가 하면 싹이 애초에 아예 솟아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같은 날 심은 씨앗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것은 길게 자라고 어느 것은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었다. 나는 의아했다.     


“나머지는 다 죽은 건가?”

내가 물었다.     


“모르지, 가끔은 싹 나는데 이 주 이상씩도 걸려.”

칼리드가 답했다.      


“같은 날 심었는데?"  


“사람이랑 똑같아, 다 다르지. 그러다가 나-중에 난 배추가 훨씬 튼튼할 때도 있고, 일찍 난 배추가 벌레 먹어서 빨리 죽을 때도 있고.”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이 더 지나고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결국에는 떡잎을 피워낸 종자들을 보았다. 단지 씨앗의 리듬이 달랐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배추라고 생각했던 종자들 중 하나에서 알 수 없는 식물의 싹이 자라나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이게 뭔가’ 추측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칼리드는 바람에 뭐가 날아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나는 알 수가 없었지만, 나는 그 상황마저도 참 우리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을 관망하고 있노라면 나는 물리학을 배우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물리학뿐만 아니라 인류학을 배우고 있는 것도 같다. 중국 배추 씨앗 안에서 인간을 발견하고, 저녁에 농장 마당에 누워 바라보는 별들 속에서 우주와 우리의 존재를 발견한다.     


 나한테는 청소를 하고 종자를 심고 명상을 하거나 관찰을 하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취미가 있었는데, 농장의 일이 끝나고 어두운 밤이 오면 농장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별들을 바라본다는 일은 언제나 신비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 사실 우리가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은 우리로부터 수천, 수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심지어 우리가 바라보는 별들 중 몇은 이미 죽어 없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 신비스러움이 더해지는 것만 같다. 아무리 잘 보려고 해도, 우리의 눈이 별에 도달할 수 있는 속도는 빛의 속도를 넘지 못하며, 우주는 빛의 속도로 가기에도 너무나 광활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별들의 과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우주를 보는 시선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 조그만 지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상대를 ‘지금’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지금은 이미 지나가버린 지금인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애써 봐도 상대의 과거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의 ‘지금’을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상대를 과거의 이야기들과 기준으로 판단한다. 상대를 오롯이 있는 그대로 보아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에 산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수많은 ‘지금’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다. 당장에 별들만 해도 그들은 이 광활한 우주 공간 속 수 없이 많은 공간으로부터, 수 없이 많은 ‘지금’을 가지고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각각의 별들은 각기 다른 밝음과 어둠, 생김새와 색깔, 나이를 가지고 있다. 몇몇은 밝고, 다른 몇몇은 좀 더 어둡다. 하지만 그들이 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다르지 않다. 마치 내가 낮에 본 배추의 종자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처럼 말이다. 별들, 배추 종자들, 인간. 이 모두가 닮게 느껴지는 건 나의 착각일까?      

 우리는 이 우주에서 태어났다. 배추 종자도 마찬가지이고, 별들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모두가 닮았다는 건 내 착각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우리는 같은 모체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들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떠다니는 티끌과 고향이 같으며, 같은 존재이며, 같은 핏줄을 지녔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생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화 The Great Beauty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는 가난을 단어만으로 알 수 없다. 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생명도 단어만으로 알 수 없다. 우리는 생명으로서, 땅으로부터 갓 피어나 꾸물대는 새싹 같은 존재로서 존재해야만 그 단어를 마침내 살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넌 어떻게 좋은 사람들만 만나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