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재 Feb 04. 2022

DJ, 풍악을 울려줘요! 국악과 디제잉의 만남

월간 공진단 2월호 기고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발행하는 웹진 <월간 공진단> 2022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국악 받고, 일렉트로닉 더블로 가!


디제이 알록(Alok)과 송가인 (출처 송가인 인스타그램)


지난 연말, 가수 송가인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브라질 출신 디제이 알록(Alok)과 송가인이 나란히 손가락 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알록은 영국의 전자 음악 전문 잡지 「디제이 맥(DJ MAG)」이 매년 집계하는 인기 DJ 투표 'DJ MAG TOP 100 DJs'에서 해마다 자체 최고 순위를 경신하고 있는 인물이다. 2015년 44위로 처음 진입해 2021년에는 무려 4위까지 올랐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디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알록과 트로트 스타 송가인의 만남. 언뜻 생각해선 둘 사이의 연결 고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두 음악인의 공통분모는 뜻밖에도 한국의 전통 음악이다. 트로트 이전 국악을 전공한 송가인은 작년 하반기 많은 화제를 모은 JTBC의 국악 크로스오버 경연 프로그램 ❬풍류대장-힙한 소리꾼들의 전쟁❭(이하 풍류대장)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그동안 많은 경연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대중음악과 국악을 접목한 경연 프로그램은 처음이었다. 방송은 김종진, 이적, 박정현, 성시경, 송가인, 우영, 솔라 등 장르를 아우르는 특급 심사위원단과 뛰어난 실력의 참가자들로 화제를 모았다. 방송 후 유튜브에 올라오는 클립마다 조회 수가 수십만을 기록할 정도였다.


지구 반대편의 알록 역시 유튜브에서 ❬풍류대장❭을 봤다고 한다. 그에게 한국 문화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 이미 싸이의 '강남스타일' 신드롬을 경험했고, 케이팝의 인기 또한 체감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그에게도 ❬풍류대장❭ 속 음악과 무대는 생소했다. 서구 대중음악의 양식이 느껴지면서도 선법과 리듬, 악기의 쓰임새와 창법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소리꾼 김준수가 ❬풍류대장❭에서 선보인 '어사출두' 무대를 올리며 "굉장한 쇼"라며 적극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풍류대장❭ 김준수 '어사출두' ©JTBC


이후 알록은 곧장 서울로 날아왔다. 경연의 최종 무대에 등장한 그는 한국의 전통 음악과 팝 사운드가 조화를 이룬 국악 크로스오버에 흠뻑 빠져있다고 했다. 깜짝 출연으로도 모자라 장차 국악인과 합동 작업을 할 계획이라며 현장을 열광시켰다. 경연 참가자 중 협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가 있냐는 질문에는 재치 있게 답을 피했지만, 그는 이미 계획이 있다는 듯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디제이와 한국의 전통 음악이 만난다면 어떤 시너지가 나타날까. 아직 결과물은 알 수 없지만, 꽤 만만치 않은 곡이 나올 것만 같다.


주지하다시피 국악과 대중음악의 접목 시도는 오래전부터 이루어졌다. 해방 후 가요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국악의 입지가 줄어들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대중음악과의 퓨전이 부상했다. 그중에서도 로큰롤과의 결합이 두드러졌다. 김수철의 '기타산조',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떠올려보라. 최근 사례는 더욱더 많다. '잠비나이'를 필두로 '악단광칠', '이날치', '고래야', 이희문 등이 각자의 방식으로 국악과 대중음악을 연결했고, 저마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반면 상대적으로 전자 음악과의 교류는 드물었다. 대중음악의 패권이 힙합과 전자 음악으로 완벽히 넘어간 2010년대에도 국악 크로스오버는 주로 록(rock)에 집중됐다.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전자 음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국악의 문법과 좀 더 결을 같이 하는 건 록 음악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적인 록 밴드 구성에 국악기를 추가하거나, 밴드 악기 중 일부를 국악기로 대체하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추세가 달라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젊은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국악과 전자 음악의 조화를 꾀하며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날치의 2020년 히트곡 '범 내려온다' 역시 일렉트로닉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곡이다. 아직 이들 외에 대중에 인식된 사례는 없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세간의 레이더에 아직 포착되지 않은 물밑에선 흥미로운 교류와 실험을 통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이들이 있다.


국악 벗고, 소리 질러!


피리는 디제이를 싣고, 팥(POTT)


팥(POTT) 'improvisation 2' ©재즈말


'팥'은 Piri On The Turntable의 줄임말로, 피리 연주자 시네(SHI_NE)와 DJ 재즈말(JAZZMAL)로 구성된 음악 듀오다. 2018년에 첫 앨범을 낸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대중성보단 실험성과 즉흥성, 자기표현에 역점을 뒀다고 한다. 이들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실로 실험적이다. 시네의 피리가 전통적 멜로디 라인을 그리면 재즈말의 힙합 디제잉이 소리 풍경을 쌓는다. 이들의 음악은 흔히 듣고 볼 수 있는 음악은 아니다. 생경한 구성의 이 듀오는 강력한 개성을 바탕으로 국립국악원 '공감시대-창작콜라보 플러스' 등 여러 무대에 오르며 입지를 다지는 중이다.


누가 소리를 내었는가, 궁예찬


21C 한국음악프로젝트 궁예찬 '옹헤야 어쩌라고'©국악방송


자신을 '국악계의 싸이'라고 소개하는 음악인도 있다. 피리 연주자 궁예찬이다. 그는 음악에 디제잉과 보컬 이펙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피리 연주자다. 턴테이블과 디제잉을 통한 전자 음향으로 배경을 채우고 피리와 태평소를 연주하며 멜로디를 그리는 식이다. 때로는 무대에 댄서와 함께 올라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2016년 '전주세계소리축제' 소리프론티어 대상, 2018년 '21C 한국음악 프로젝트' 대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대중의 주목을 얻기 위해선 평범해서는 안 된다며 특별하고 조금은 미쳐야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말로 자신의 음악을 설명했다. 일반적인 팝스타들의 활동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무토(MUTO)


❬문밖의 사람들 : 門外漢❭ 무토(MUTO) ©MUTO


2016년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 '무토'의 위용은 구성원만 봐도 짐작이 간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파펑크(PARPUNK) 박훈규와 그의 제자 홍찬혁,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 일렉트로닉 밴드 '이디오테잎'의 프로듀서이자 디제이 제제(ZEZE) 신범호가 무토의 멤버다. 한 명 한 명이 각 분야를 대표하는 강자들이다. 이들은 정형화된 것들을 거부한다.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합작', '복합 예술' 같은 외부의 규정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무토의 강점은 각자의 독창성을 발휘하면서 서로의 시너지를 끌어내는 데서 나온다. 박우재가 거문고를 켜고 제제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입히면 박훈규, 홍찬혁이 이에 걸맞은 미디어 아트 경험을 선사한다. 무토는 무대 위에 무엇이든 그려내기에 보는 이의 눈과 귀가 쉴 틈이 없다.


민요와 하우스의 만남, 최예림


최예림 '하우스거리' ©KDIGITAL MEDIA


경기민요 소리꾼 최예림이 지난해 말 정식으로 발표한 첫 싱글 '하우스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민요 가락에 현대적인 하우스 비트를 접목한 곡이다. 노래를 빼고 반주만 들으면 전형적인 하우스 트랙이고, 반주 없이 노래만 들으면 영락없는 민요다.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음악은 절묘하게 하모니를 이룬다. 그야말로 장르의 융합 사례다.




'월드뮤직'이라는 음악 용어가 있다. 오랫동안 장르적 개념으로 익숙하게 쓰인 말이다. 팝과 록, 힙합과 전자 음악 등 서구의 특정 장르로 구분할 수 없는 이국적 음악을 통칭할 때 쓰였다. 자메이카의 레게, 브라질의 삼바, 콩고의 민속 음악, 아르헨티나의 탱고 등이 모두 월드뮤직에 속하는 것이다. 이 기준에서는 한국의 케이팝도 월드뮤직에 속한다. 얼핏 생각해도 게으르고 이상한 분류 아닌가. 오늘날 월드뮤직이라는 용어는 지극히 서구 열강, 특히 영미의 관점이라는 지적 때문에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처럼 이제는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구분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중요시하는 시대다. 다시 말해 무엇이든 그 자체로 인정받고 언제 어디서든 발굴될 수 있다. 2010년대 중남미의 레게톤(Reggaetón)이 전 세계 음악 시장을 강타하고 지금까지도 팝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걸 보라. 국악이라고 그 기회가 없겠는가. 우리는 이미 '방탄소년단'의 'IDOL'로 국악 요소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로 국악 크로스오버 히트곡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했다. 최근 두드러지는 국악과 일렉트로닉 음악의 어울림이 장차 의외의 열풍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서태지와 아이들 – 난 알아요(199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