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망설이는 그대에게
뉴질랜드에 처음 왔을 때의 설렘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비행기가 뉴질랜드에 도착해 공항으로 걸어나가는 순간에도' 내가 뉴질랜드에 오다니'를 연발하며 믿을 수 없었고 흥분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도움으로 비교적 해외에 자주 나갔었지만 뉴질랜드라는 나라에 도착했을 땐 이상하리만치 그동안의 것들과 달랐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나라. 우리가 선택한 나라. 여서였을까..
처음 이민을 결정한 건 남편의 생각이 컸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그 대학원을 그만두면서 까지 서둘러 나가려고 하는 모습에 처음엔 많이 반대했었다.
나도 해외로 나가 살아보고 싶단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은 그저 막연했고 한 번도 실행에 옮기려 한적도 없었다.
처음 "해외에 나가서 살아야겠어, 같이 가자 "는 남자친구의 말에 "그래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 언젠간"이라며 동의했지만 그 '언젠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나는 그때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연애가 길어질수록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는 새에 남자친구의 현재 상태에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예를 들면 차의 유무 직장의 유무 적금 집안 대학 같은.. 사실 나는 정말 그런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의 꿈을 그리고 재능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었는데,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모든 걸 따지고 그를 평가하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내가 이 사람과 정말로 평생을 함께 할 것이라면 다시 한번 믿어보자.
사람들은 남편이 늘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시 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봤을 땐 나는 그동안 사람들에게 더 귀 기울였고 선입견을 가지고 그를 봐왔다는 걸 알았다.
흔히 남들이 말하는 지잡대를 자퇴하고 인서울에 편입을 했고 3 군대의 회사에 입사와 퇴사를 반복 그리고 대학원 그리고 또다시 자퇴라는 코스에 20대를 보내면서 그는 한국의 관료주의와 실망스러운 교육시스템에 많이 절망했다고 했다. 그는 실망을 거듭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에게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것이었고 한국에선 찾을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가 했던 모든 선택엔 망설임은 없었고 실행은 늘 빨랐다.
편입도 입사도 그리고 자퇴와 퇴사의 연속도 그는 늘 머무른 적이 없었지만 또한 더 높이 더 큰 것들에 도전했었고 모두 이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배우고 일하고 있다고.. 산다는 건 원래 이런 거라고 당연한 듯 말했지만 그에게는 한 곳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것이 곧 정답은 아니었다.
나는 늘 주저하고 망설이는 인생을 살아온 것에 반해 그는 달랐고 그것이 '모든 걸 그와 함께 해야겠구나'로 결정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뉴질랜드에 왔다.
한국이 싫어서도, 도망도 아니었으며 그저 더 잘 살고 싶었고. 한 번뿐인 인생을 바보처럼 낭비하며 살기 싫었다.
해외의 낯선 삶은 어렵고도 외롭지만
자유롭고도 평온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잘 지내냐고?
남편은 1년 만에 학교를 졸업하고 뉴질랜드 회사에 취업하여 좋은 연봉으로 모든 직원들과 수평관계를 이루며 잘 전진해 나아가고 있다. 물론 모든 일이 우리 생각처럼 쉽게 이뤄지지도 않았다.
나는 얼마 전까지 영어공부를 하며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었고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는 취미생활을 하며 여유가 있는 척 위안을 삼으며 잘 적응해 나아가고 있다. 이곳엔 신데렐라 같은 결말을 없다.
우리는 여전히 모아둔 돈도 차도 집도 없지만 그 대신 더 이상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지도 삶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해외생활에 로망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해외 이민을 추천하는 것도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당신의 선택은 늘 옳을 테니 그저 망설이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선택도 보장된 길은 없다 하지만 지금보단 더 나을 것이라는 건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