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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유 Mar 04. 2021

누가 하는 브라인가.

ㅡ.소소(小笑)글

어제 한 여성 아나운서가 '노브라'로 생방송을 하는 과정을 담은 방송이 방영되며 인터넷이 종일 시끄러웠다. N사 포털 사이트에는 해당 기사마다 비난과 성희롱성 댓글이 수백 개에서 수천 개가 달렸다. 비율은 젊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들은 '브라'가 무엇인지, 그 의미와 상징이 무엇인지, 본질을 읽지 못하고 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여성의 몸은 옷으로 통제되어 왔다. 결혼만이 여성의 신분상승의 유일한 길이었던 시대, 여성은 남성의 성적욕망과 미적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남성의 시선이 규제해 놓은 옷을 착용해야 했다. 어느 곳에서는 가슴을, 다리를, 얼굴을 가려야 했고, 어느 시대에서는 허리를 조이고 엉덩이를 부풀려야 했다. 여성의 복장은 일종의 통제 시스템이었고, 이 시스템들은 공고하고 완강하게 자리 잡아 여성의 결혼여부와 정숙함 더 나아가 정조관념과 순결성 등을 평가하고 판가름하게 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족과 코르셋이 그 증거의 유물이며, 현재도 남아 있는 베일과 브라가 그 증거의 유산이다.

 

어떤 이들은 노브라 자체보다 '노브라를 선언하는' 행위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야만 입 안에 머금고만 있던 여러 목소리들이 나올 수 있다. 목소리들이 모여야 움직임이 될 것이다.나는 이것을 혁명이라 본다. 크든 작든 기존부터 내려온 맞지 않는 틀을 바꾸려는 의지는 그 어떤 것이든 혁명이다.

사실 여성들의 혁명은 오래 전부터 천천히 진행 중이었다. 옷에 대한 투쟁은 여성 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평등한 젠더 권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코코샤넬은 단순히 여성에게 바지를 입힌 것이 아니다. 정숙함과 조신함 그리고 수동성을 벗기고 남성과 동등한 기동성과 효율성을 입힌 것이다. 오늘날 중동에서는 살해위협을 받고 명예살인을 당하면서도 베일을 벗고자 하는 여성들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7년쯤 전부터 그 누가 시키거나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겨울에는 브라를 하지 않는다. 정작 브라 착용이 가장 고역일 때는 한여름이지만, 이번 노브라 방송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양상만 보아도 우리나라에서 여름철 노브라는 반 세기는 지나야 가능할 것 같다. 이는 단지 브라를 안 했다는 것만으로 과격한 페미니스트로 낙인을 찍는 수많은 혐오성 댓글들이 그 반증이다. 또한 여전히 많은 남성들과 사회가 옷차림을 통한 여성 몸에 대한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아 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여성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남성을 향한 도발과 공격이라 치부하여 혐오하고 두려워 하는 현상들을 보며 안타까웠다. 그러나 다른 SNS에서는 브라를 벗는 것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해주는 남성들의 목소리도 분명 많았다.

유럽은 노브라가 아무것도 아니다. 노브라를 한 여자들이 남자들처럼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거리를 걷는다. 그래도 그 누구도 여성의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사진 찍지 않는다. 여성의 가슴 역시 남성의 가슴처럼 자연스러운 거니까. 옷이란 개인의 취향과 필요에 의해 상황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우리 사회는 브라 외에도 여성의 옷차림에 대한 규제가 곳곳에 버젓이 존재한다. 얼마 전 유명 항공사의 여승무원은 안경을 착용할 수 없고 새치가 보여서도 안 되지만 남성 승무원에게는 이러한 규제 사항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 복장규범을 만든 사람은 여성에게 안경은 젊고 아름다우며 지적이고 세심한 이미지에는 부합하지 않거나 학구적으로 보이는 여성은 매력이 없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이러니, 그 엄격한 공중파 방송에서 여성 아나운서가 브라 착용을 하지 않았음을 선포하고 생방송을 진행한 것은 큰 의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이 긴 글을 몇 줄로 말하면 이거다. 브라 하기 싫으면 안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이다.




2020년 2월 17일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소소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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