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딸기 케이크와 함께
—
코 끝에 찬 공기가 뽀뽀해 주며, 내 코도 빨갛게 물들어가는 계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오직 하나만을 기다린다. 딸기 시즌과 함께 찾아오는 딸기케이크. 내가 긴 여름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돌아오는 딸기 시즌에 대한 기대 덕분이었다.
딸기는 내 최애 과일이다. 사람들이 내게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나는 늘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확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게 바로 딸기다. 나의 딸기 사랑은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겨울 냄새를 온몸에 가득 머금고 제일 애정하는 카페로 향한다. 빨개진 손끝을 꼭 말아 쥐며 가장 먼저 진열장을 바라본다. 수많은 디저트들 사이에서 반짝이는 딸기케이크를 보고 있으면,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가슴이 절로 두근거린다.
눈같이 새하얀 크림 위에 예쁘게 자리 잡고 있는 새빨간 딸기. 늘 똑같은 비주얼인데도, 매년 처음 마주할 때면 설레는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내 겨울의 시작은, 딸기 케이크를 먹음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케이크를 한 입 먹는 순간, 내 입 안은 환호하기 바쁘다. 부드러운 생크림과 적당한 비율의 시트 사이로 상큼 달달한 딸기가 존재감을 드러내며 겨울의 시작을 알린다. 나의 디저트 짝꿍은 큰 이변이 없는 한, 대부분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날이나 조금 사치를 부리고 싶은 날엔, 과감하게 딸기라테를 선택한다. 그럼 딸기 파티 조합으로 더욱더 끝내주는 디저트 타임을 즐길 수 있다. (대신, 바로 찾아오는 혈당 스파이크는 막을 수 없다.)
내 생일은 기가 막히게도 딱 딸기 시즌 막바지에 걸쳐있다. 그래서 생일이 오면, 원 없이 많은 브랜드의 딸기케이크를 즐길 수 있다.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나 잔뜩 먹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어린 나는 3월에 있는 내 생일이 싫었다.
항상 새 학기와 생일이 겹치다 보니, 생일을 즐기긴커녕 적응하기 바빴다. 새 친구를 사귀어도 아직은 어색하고 친해지는 단계일 때가 많으니 생일 얘기는 절로 넘기게 됐다. 반에서 3월 자 생일 친구들을 모아 축하 파티를 해줘도, 그 시기엔 반 아이들이 다 같이 어색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머쓱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다소 외로운 시작을 보내게 되는 3월이, 어린 마음엔 속상했다.
지금은 속상하고 말고를 느낄 새도 없다. 그저 이 시기가 떠나기 전에 하나라도 더 먹어보고 싶을 뿐이다. 평소와 다를 거 없는 하루가 생일이라는 특별함 때문에 기대하게 되고, 결국엔 실망해서 우울해지는 감정을 이제는 느끼고 싶지 않다. 사소한 순간 하나하나에 얽혀 속상해하면, 나만 더 힘들어질 거라는 걸 아니까 말이다.
딸기케이크는 잘 찾으면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디저트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나는 겨울에 더 큰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 시즌이 아닌 계절에 발견했을 땐 꾹 참는다. 각자의 계절과 순간마다 어울리는 디저트가 있기 마련이니까. 상황과 때에 맞는 디저트로 나는 행복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다.
특별할 것 없는 내 일상 속에서, 이런 작은 달콤함들이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었다. 행복이 없다고 생각했던 하루에 행복이 있었고, 보잘것없다고 느낀 순간에 특별함이 묻어있었다. 이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떠올리다 보면, 한 해가 조금은 더 다정하게 기억된다. 꼭 디저트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아무런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스스로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찰나에 느낀 좋은 감정과 추억으로 평생을 살아갈 힘을 충분히 받을 수 있으니까.
—
나의 사계절은 늘 작은 디저트들과 함께 채워진다. 딸기케이크로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앞으로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또 다른 맛을 찾을 것이다. 내가 더 이상 내 하루를 자책하고 미워하지 않도록 끝없이 기록하며 기억할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순간을 소중하고 다정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이 글은 브런치북 <입 안에 남은 마음> 시리즈의 마지막 연재 글입니다. 금요일엔 에필로그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필로그까지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