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빙수, 계절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
"빙수야~ 팥빙수야~"
여름이 오면 신기하게도 이 노래가 귓가에 계속 맴돈다. 조금 반전일 수도 있지만, 사실 나는 팥빙수를 못 먹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팥을 싫어한다. 어렸을 적, 유치원에서 처음 먹어보는 팥의 맛에 충격을 받아, 그 이후로는 웬만하면 입에 대지 않는 것 같다. 팥이 근본이라는 붕어빵마저도 슈크림 맛으로 먹을 정도로 팥과 내외한다.
그래서 빙수를 먹는 순간이 오면, 내 마음은 늘 과일빙수 쪽으로 살짝 기울게 된다. 과일이 가득한 빙수는, 묵직한 달콤함을 안고 있는 팥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새하얀 눈밭 같은 얼음 위로 갖가지 과일과 토핑들이 올라가 있는 순간이 가장 좋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꽉 차는 기분이랄까.
계절마다 가게의 시그니처 빙수 메뉴의 과일이 바뀌는 것도 흥미롭다. 여름엔 망고나 복숭아, 겨울엔 딸기. 그래서 그런가, 내게는 과일빙수를 먹는 일이 계절을 먹는 것 같다.
여름철 최애 빙수는 단연 망고다. (복숭아는 단독으로 먹을 때가 더 좋다.) 시원하고 부드러운 우유 얼음 위로, 입에서 사르르 녹는 생망고가 올라간 빙수. 얼음과 함께 큼지막한 망고 한 조각 올려 먹으면 여름의 더위가 싹 날아간다.
중간중간 씹히는 치즈큐브나 시리얼도 각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한 숟가락에 담긴 모든 재료들이, 내 입 안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 같다. 내게 여름에 먹는 빙수는 더위와 갈증을 날려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겨울엔 추운 날씨 때문에 찬 디저트가 생각이 안 날 수 있지만, 나는 오히려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이나 빙수가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일명 얼죽아. 강경 얼죽아파인 나에게, 찬 디저트는 겨울에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낸다.
가끔 차가운 공기와 함께 빙수의 냉기 폭탄을 맞으면 머리가 띵하기도 하지만, 입 안 가득 시원함이 퍼지는 순간이 좋아서 계속 찾게 된다. 정신이 확 들기도 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내가 계절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듯, 빙수도 한 그릇 안에 각각의 계절이 가득 담겨있다. 시원 달달함을 한 입 가득 삼킬 때, 그 계절의 공기도 함께 먹는 기분이 든다. 처음엔 팥이 싫어서 먹기 시작했던 건데, 지금은 순간을 느끼는 제철 디저트처럼 즐기고 있다.
한 그릇 안에 담긴 예쁘게 손질된 과일과, 그 아래 부드러운 눈송이 같은 얼음의 조합이 계절을 가장 솔직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나는, 이런 사소한 것들에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내가 과일빙수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
나의 올해 여름은 망고와 함께했고, 다가오는 겨울은 딸기와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내년 여름에도 망고나 멜론, 복숭아 등등 여러 과일 빙수와 함께할 거라 생각하니, 흐르는 시간이 마냥 부담스럽거나 무섭지 않다. 기다려지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힘내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
빙수 한 그릇은 늘 같은 모습으로 내 앞에 놓이지만, 그 안에 담긴 과일이 달라질 때 내 시간도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이제는 슬슬 망고 빙수를 보내줘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과일빙수를 먹으며 나는 또 하나의 여름을 보내줄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