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타르트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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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내 마음을 사로잡은 맛집을 찾지 못 한 디저트가 몇 개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찾기 어려운 건 아마도 에그타르트인 것 같다. 계란 노른자를 싫어하는 입맛 때문일까? 다른 디저트에는 후한 마음을 가지는 내가, 유독 에그타르트에는 깐깐한 기준을 세우게 된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겉은 바삭해야 하고, 속은 촉촉하면서 몽글해야 하는 까다로운 디저트. 조금만 균형이 무너져도 금방 계란 비린맛이 나거나 눅눅한 파이지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도 완벽하게 맛있는 에그타르트를 만나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에그타르트가 가진 ‘균형’이라는 매력에 자꾸만 끌린다. 에그타르트는 공평하고 알맞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겉은 바삭하고 버터리한 맛과 식감을, 속은 부드럽고 촉촉한 풍미를. 만약 둘 중 하나만 강하게 자기주장을 펼쳤더라면 쉽게 질렸을 텐데, 전혀 다른 두 성질이 어울리며 완벽한 균형을 잡아낸다.
내가 에그타르트에 끌리게 된 이유도 이 균형 때문인 것 같다. 겉과 속이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앞서지 않는, 딱 알맞은 상태. 이 맛이 좋아서 계속 찾게 된다.
문득 이런 균형은 사람 관계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에그타르트처럼 한쪽이 너무 강한 자기주장을 내면 쉽게 틀어져 금방 무너져버리게 된다. 누군가 너무 자신의 이야기만 하면 상대는 쉽게 지치고 피로해진다. 반대로 한쪽이 계속 참기만 하거나 양보만 해도 문제가 생긴다. 조금씩 쌓였던 게 한 번에 크게 터져버릴 수 있으니까.
이런 둘 사이에서의 적당한 균형을 잡고, 그것을 지키며 서로 배려해야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에그타르트의 균형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틀어지는 데에는 꼭 자기주장만이나 참는 것 만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니까.
에그타르트처럼 서로의 다름과 결을 인정하면서 좋은 조합으로 융화가 되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한 번은 하루에 여럿의 친구들이 나에게 각자의 불만과 힘듦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날은 무슨 날이었는지, 친구들이 차례로 각자의 힘듦을 털어놓았다. 그 친구들도 털어놓을 곳이 필요해 나를 찾아왔다는 걸 알면서도,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에겐 또 다른 짐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같은 생활을 하는 게 아니니까 서로 공통점도 없다 보니, 그렇게 나와 친구의 연락은 점점 감정 창고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모든 걸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해서, 정작 내가 힘든 건 말도 못 했다. 이렇게 쌓아두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나는 나 스스로 계란 비린맛 나는 필링을 자처하게 됐다.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이에서 무너지지 않는 선을 지켜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요즘따라 내 모든 체계가 무너지는 기분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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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맛있는 에그타르트를 찾는 게 아니라, 그런 균형 있는 모습을 닮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유독 이 디저트에만 깐깐한 맛의 기준을 세우고, 까다롭게 평가하면서 먹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에그타르트가 부럽다. 서로 다른 결을 지켜내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균형이, 요즘의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모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