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플레 팬케이크와 생일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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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고 나서 친구들과 이것만큼은 꼭 지키자고 한 약속이 있다. 서로의 생일 근처에는 아무리 바빠도 만나기. 내 생일 하루 전 날, 나는 친구와 만났다. 평소처럼 밥을 먹고, 네 컷 사진관에 들어가서 생일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제 남은 건 카페에 가서 밀린 수다 떨기. 생일 기념으로 만났을 땐 서로 맛있는 케이크가 있는 카페에 데려가고 싶어서 열심히 찾아보곤 한다. 그날은 조금 특별한 케이크였다.
유명한 맛집인 건지, 친구가 안내한 카페는 이미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다. 주말의 서울 유명 카페는 자리 전쟁이었다. 운이 좋았던 우리는 기다란 테이블 자리에 바로 앉을 수 있었다. 생일이라 그런가 유독 자리운이 잘 따라줬다. 주문을 하고 온 친구가 말했다.
"조리 시간이 조금 걸린대."
도대체 뭐길래 조리시간이 그렇게나 걸리는 걸까. 궁금증을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 앞 쪽에는 조리대가 있어서 디저트와 음료를 만드는 과정을 다 볼 수 있었다. 조리대에서 만들어지는 디저트를 보고 나는 알 수 있었다. 오늘의 케이크는 조각 케이크가 아니라, 수플레 팬케이크라는 걸.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둘이 앉아서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다 보니 진동벨이 울렸다. 서둘러 카운터로 가지러 간 나는, 수플레 팬케이크 비주얼에 반해버렸다.
한창 수플레 팬케이크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퐁신한 구름 같은 비주얼이 먹음직스러워, 처음 봤을 땐 신세계 그 자체였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쉽게도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었다. (계란 맛에 유독 민감한 편이라 그런지 계란 비린맛이 많이 났었다.) 그렇게 수플레 팬케이크라는 디저트를 잊고 살다가 다시 만난 것이다.
카운터에서 받아 자리로 오는 동안 접시 안에 담긴 수플레 팬케이크는 내 걸음에 맞춰 귀엽게 뽀잉뽀잉 흔들렸다. 친구와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사진 찍기 바빴다. 퐁신한 팬케이크 두덩이와 그 위에 올라간 크림. 옆에 나란히 놓인 바나나 브륄레까지. 보기만 해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이미 비주얼에 홀려서 기분은 최고조였다. 처음 먹었을 때처럼 비린 맛이 나더라도 좋을 지경이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입을 싹 정리해 줬다. 나이프로 조심조심 한 덩이를 반으로 가르는데, 칼이 부드럽게 팬케이크 안으로 스며들었다. 위에 올라가 있던 크림과, 같이 나온 시럽을 곁들어 한 입 먹자마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맛있을 때만 나오는 내 진실의 미간.
퐁신한 팬케이크와 달콤한 시럽과 크림의 조화가 입 안 가득 퍼졌다. 계란 특유의 비린맛도 전혀 안 났다. 아, 맛있다. 정말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구름을 떼어다가 케이크로 만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맛이었다.
생일이라는 설렘과, 같이 먹는 친구가 있어서 그런가. 별거 아닌 수플레 팬케이크가 유독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생일이면 과일이 콕콕 박힌 조각 케이크만 먹어야 한다는 내 편견을 깨부쉈다. 덕분에 매 생일마다 우울해지는 알 수 없는 내 기분이 나아졌다.
팬케이크를 먹으면서 친구랑 별 것도 아닌 걸로 까르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같이 나온 바나나 브륄레를 먹으려 하는데, 바나나가 포크에 찍히지 않고 자꾸만 미끄덩 도망가는 게 웃겨서 동영상도 찍어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도 아닌데 그 순간엔 그게 그렇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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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친구는 가끔 그날 먹었던 수플레 팬케이크가 생각난다고 한다. 나 말고 친구도 그날 먹은 게 종종 생각난다는 게 신기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생각나서 카페를 검색해 봤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카페가 사라졌다. 이제 정말 추억으로 남겨야 해서 더 애틋해지는 것 같다.
2년 전 내 생일 전 날은, 꽤나 특별하고 멋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