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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지 Jun 16. 2020

촬영장 가는 길

오늘도 뮤직 비디오를 찍으러 택시에 오른다

서울 촌년인 나는 강남만 벗어나도 (좋을 땐) 신나는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고 (싫을 땐) 불안하고 초조하다. 엔터 회사에 들어와선 뮤직 비디오를 찍으러 세트장 가는 길이 꼭 귀양길 같았다. 큰 잘못을 해서 고향을 벗어나 멀리 내쳐지는 기분. 사시사철 어둡고 축축한 세트장에 들어서면 최소 한나절은 햇빛을 거의 못 보다시피 하니 기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바닥을 치곤 했다.

그제 김포에 가는 길은 좀 달랐다. 창밖엔 촘촘한 벼가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일렁이고 있었다. 강아지를 어루만지는 다정한 손길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눈이 쫓아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엔 흐린 산이 있었고, 그 너머에는 더 흐려진 산이 있었다. 외롭던 교외의 푸른 풍경이 별안간 참 예쁘게 보였다. 촬영장에 도착할 때쯤엔 움직일 때마다 먼지처럼 풀썩거리던 마음이 푹신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수십 명이 기다리고 있는, 음악으로 가득 찬 촬영장으로 가는 그 길. 혼자였고, 가사도 없고 멜로디도 없지만 허전하지 않았다. 실은 혼자라 안전했고, 혼자라 평온했다. 혼자여서 오롯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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